미국인들 "정치 탓에 친구 잃어"..NYT "합중국 아닌 분열국"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기후변화·총기 등 국민 의견이 갈린 민감한 문제에서 잇따라 보수적인 판결을 내리면서 미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일(현지시간) 지적했다. NYT는 이런 분열상 때문에 미국을 ‘미 합중국(the United States)’이 아닌 ‘미 분열국(the Disunited States)’으로 부를 수 있을 정도라고 개탄했다. 한 나라에서 성향에 따라 보수와 진보 지역이 각기 정반대의 사회·환경·보건 정책을 추구하면서 분열된 국가로 표류하고 있다면서다.
미 연방대법원은 지난 열흘간 줄이어 보수 성향의 판결을 내려왔다. 지난달 24일 낙태권을 헌법상 권리로 봤던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례를 49년 만에 파기하고 낙태권을 각 주의 입법에 따르도록 했다. 연방대법원은 같은 달 30일 연방환경청이 미국 전체 주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한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해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을 뒤흔들었다. 앞서 그달 23일엔 공공장소에서 권총 휴대를 금지한 뉴욕주 법률이 총기 소유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2조에 위배된다며 무효로 했다. 지난 1월엔 민간 기업의 근로자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려던 바이든 행정부의 조처를 무효라고 판단했다.
NYT에 따르면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진보 성향이 강한 동북부와 서부 해안, 보수 성향이 두드러진 중부와 동남부끼리는 물론 같은 지역·주에서도 성향에 따라 서로 대립하고 있다. 진보 성향의 주 정부들은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반기를 들고 있다. 뉴욕주 의회는 1일 낙태권과 피임권을 주 헌법에 명문화하는 조항을 통과시켰으며,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를 금지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기후 문제에선 버지니아·메인 등이 탄소배출 규제방안을 공동 추진하고,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서부 주 정부들도 ‘제로 배출’ 자동차와 청정연료 기준 제정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
총기에선 델라웨어·로드아일랜드 등 11개 주가 지난주 일부 무기와 대용량 탄창 등을 금지하며 규제를 강화했지만 텍사스·뉴햄프셔는 오히려 통제를 완화했다. NYT는 분열이 심화하면서 자신의 성향에 맞는 지역으로 이주를 고민하는 미국인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미 연방대법원의 잇따른 보수적 판결은 종신직인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3명이 진보 성향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3명의 보수 대법관을 새로 임명했으며, 이 중 에이미 코니 배럿은 임기를 미처 넉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자리를 맡았다. 연방대법원의 잇따른 보수 판결을 놓고 “이제부터 ‘트럼프의 법원’이라 불러야 한다”(노먼 아이젠 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산이 계속 유지되도록 보장했다”(NBC 뉴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사회의 이념 대결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더욱 격화하고 있다. 시카고대 정치연구소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1000명 대상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 지지자의 74%와 공화당 지지자의 73%가 상대를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반대편에 강요하는 불량배”로 여긴다. 응답자의 절반이 “정치 성향을 모르는 사람과는 정치적 토론을 피한다”고 답했고, 25%는 “정치적 문제로 친구를 잃었다”고 밝혔다. 악시오스 등에 따르면 동성 결혼과 관련한 연방대법원의 판결 등이 남아 있어 분열이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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