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광에 담은 한국사회 초상.. 카메라에 담은 고향의 갯벌
강홍구 '신안 바다-뻘, 모래, 바람' 개인전
사진에서 실루엣은 진부한 요소다. 윤곽을 강조하면 빤한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실루엣의 어원부터 그렇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재정장관을 지낸 에띠앙 실루엣의 이름에서 땄다. 극단적인 긴축 정책을 폈던 실루엣은 예술에 대해서도 무지막지하게 말했다. “그림의 재료는 검은 물감이면 모자람이 없고, 형상 또한 윤곽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단조롭고 진부한 형식의 대명사가 된 실루엣을 자신의 작업에 끌어온 중진 사진작가들이 있다. 노순택(51)과 강홍구(66)다. 마침 두 작가의 개인전이 사이좋게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일대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먼저 학고재갤러리에서 하는 노순택 개인전(오는 17일까지) 얘기부터. ‘검은 깃털’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작업한 연작 19점이 나왔다. 모두 역광으로 찍은 사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역광은 사진에서 피해야 할 금기다. 윤곽만 남기고 피사체의 세부는 어둠에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왜 역광으로 찍었을까.
노 작가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역광으로 찍는다고 해서 세부가 완전히 어둠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가까이 가서 보면 세부가 보인다”며 “그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의 ‘깃털’은 흑백 역광으로 찍은 검은 사진 속에서도 완전히 묻히기를 거부하는 세부를 은유한다.
사진작가 노순택의 관심사는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사회의 오작동에 있다. 그는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지만, 분단을 겪은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누군가 공공의료를 중시한다고 하면 ‘빨갱이네, 친북이네’ 식으로 공격하며 이분법적으로 편 가르기를 하는 한국 사회의 초상을 역광사진이라는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 나온 작품 ‘좋은 살인’ 연작이 대표적이다. 어떤 작품은 사람의 머리를 차세대 전투기가 관통하는 듯한 끔찍한 장면처럼 보인다. 이는 관람객이 첨단 무기쇼를 관람하는 장면을 찍은 것이지만, 세부를 거세하는 역광이라는 장치가 그런 효과를 낸다. 전투기 앞부분을 찍은 어떤 사진은 실루엣만 남아 기하학적 추상 사진처럼 보인다. 이 연작은 공군사관학교 학생이 첨단 전투기 F15에 대해 ‘가끔 살인기계로 보인다’고 쓴 일기 내용이 빌미가 돼 ‘빨갱이’로 몰려 퇴교당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작가는 무기에 대한 성찰을 금지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이 연작에 담았다.
넝쿨이 무성하게 자란 ‘식물 괴물’을 찍은 사진도 있다. 가까이서 보면 전봇대의 흔적이 보인다. 이 사진은 김포공항 비행기 소음 때문에 주민이 모두 이주한 뒤 황폐해진 경기도 부천 오정면 오쇠리 마을의 전봇대를 찍은 것이다.
이처럼 역광사진은 사물의 세부를 가림으로써 전혀 엉뚱한 실체를 만들어버린다. 흑백논리의 한국 사회가 공공의료 찬성자를 빨갱이라는 반공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사진기자로 한동안 활동했다.
“정면만 보여줘야 하는 뉴스 사진과 달리 사태의 뒷면과 옆면, 혹은 아랫면과 이면을 보여주고 싶어 사진작가가 됐다”고 했다. 백화점식으로 찍기보다는 원하는 것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기자직은 그만뒀지만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용산 철거민 참사 현장, 제주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시위 현장, 광주 망월동 묘역 등 사건의 현장을 찾아가 살다시피 했다. 다양한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으로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는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
강홍구 개인전 ‘신안 바다-뻘, 모래, 바람’(7월 24일까지)은 학고재갤러리에서 나와 정독도서관 방향으로 수백m 걸어가면 만나는 원앤제이갤러리에서 한다. 신안은 작가의 고향이다. 2005년부터 서울에서 모시고 살던 노모가 가고 싶어 하는 고향을 정기적으로 방문한 게 신안을 주제로 사진을 찍은 계기가 됐다. 작가는 오십 줄에 찾은 고향과 기억 속 유년기의 고향 사이에 틈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 틈이 뭔지를 탐구하고자 고향의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앨범 속 옛 사진도 자연스럽게 들여다 봤다.
그런데 빛바랜 사진은 그 옛날 코에 닿았던 냄새, 피부에 닿았던 바람의 느낌까지 담고 있지는 못했다. 작가는 “사진이 가진 것은 기계적 기억이었다. 촉각적인 기억 즉, 개인화된 기억을 담아내지는 못했다. 그런 개인성이 살아나는 지점을 사진에서 구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고민에서 택한 방식은 옛 사진을 크게 프린트해 실루엣은 그대로 살려 두고 내부는 붓으로 새로 색칠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뒷산에서 내려다본 고향 어촌 마을의 풍경, 지금은 다리가 놓여 사라진 사옥도-증도 배편에 몸을 실은 사람들을 찍은 옛 사진이 그런 사례다. 윤곽만 살리고 전부 새로 색칠하는 바람에 전시장에 걸린 작품은 사진이 아니라 회화로 보인다.
어릴 적 놀던 무대인 갯벌을 찍은 사진을 캔버스에 프린트한 뒤 유년의 기억을 소환하듯 아이와 새, 물고기 등을 그린 그림을 오려 붙이기도 했다. 이때는 새와 물고기, 게 등을 비현실적으로 크게 그려 넣음으로써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은 판타지를 만들었다.
전시장에는 이런 ‘사진 회화’뿐 아니라 신안 주변의 바다와 뻘 등 풍광을 찍은 사진 그 자체를 내놓기도 했다. 그런 사진 자체도 회화적이어서 이것도 붓질했나 들여다보게 되지만 그냥 사진이다. 그래서 사진과 회화가, 작품과 관객이 숨바꼭질하는 기분을 맛보게 하는 전시다.
강홍구는 목포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다 28세에 홍익대 미대 회화과에 새로 진학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작가로 본격 활동하면서 기존 사진을 재구성하는 컴퓨터 작업을 한 것이 계기가 돼 1990년대 초반부터 직접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로 돌아섰다. 재개발로 폐허가 된 마을 등 자본주의 아래 변모해가는 도시의 초상을 주로 담아왔다. 디지털 사진에 회화적 터치를 가하는 방식은 2000년대 중반부터 시도했다. 이번 전시처럼 윤곽만 남기고 화면 전체를 새로 붓질하는 전면적인 사진회화 작업은 예술적 출발인 회화에 대한 고향회귀적 본능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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