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법원이 2개의 미국 만들었다..합중국 아닌 분열국"

임선영 2022. 7. 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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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 대법원이 낙태, 기후 변화, 총기 등 민감한 문제에서 잇따라 보수적인 판결을 내리면서 미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현재의 이런 상황에 대해 '미 합중국'(the United States)이 아닌, '미 분열국'(the Disunited States)으로 부를 수 있다고 평했다.

같은 미국이지만, 보수 성향 지역과 진보 성향 지역이 정반대인 사회·환경·보건 정책과 함께 분리된 국가로 표류하고 있다면서다. 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가 대법관 집 앞에서도 계속되자 급기야 대법원이 관할 주 등에 집회 금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미 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판결을 둘러싸고 항의하는 시위대. AFP=연합뉴스


美 대법원, 낙태·총기·기후 거침없는 보수 판결


미 대법원은 최근 열흘간 거침없이 보수 성향 판결을 내리고 있다. 우선 지난달 24일 헌법상 낙태 권리를 보장한 1973년 '로 대(對) 웨이드' 판례를 49년 만에 파기 결정해 파문을 일으켰다.

또 같은 달 30일엔 미 연방환경청이 미 전체 주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한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해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보다 앞선 23일엔 공공장소에서 권총 휴대를 금지한 뉴욕주 법률이 총기 소유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2조 위반이라며 이를 무효화 했다.

미 대법원은 공공장소에서 권총 소지를 금지한 뉴욕주 법안을 무효화했다. EPA=연합뉴스

대법원은 지난 1월 민간 기업 근로자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려던 바이든 정부의 조처를 무효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NYT에 따르면 대법원의 판결 이후 크게 진보 성향이 강한 북동부와 서부 해안, 보수 성향이 강한 중부와 남동부뿐 아니라, 같은 지역과 주 안에서도 성향에 따라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진보 성향 주정부는 대법원 결정에 반기를 들고 있다. 뉴욕주 의회는 지난 1일 낙태권과 피임권을 주 헌법에 명문화하는 조항을 통과시키는 한편, 공공장소 총기 소지를 금지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기후 문제에 있어선 버지니아주와 메인주 등이 탄소 배출 규제 방안을 공동 추진하고,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서부 주정부들도 '제로 배출' 자동차와 청정연료 기준 수립을 위해 힘을 합친다. 또 델라웨어주·로드아일랜드주 등 11개 주가 이번 주 일부 무기와 대용량 탄창 등을 금지한 반면, 텍사스주·뉴햄프셔주는 총기 규제를 풀고 있다. 양측의 분열이 심화하면서 자신의 성향과 맞는 지역으로 이주를 고민하는 미국인들도 적지 않다고 NYT는 전했다.


11월 중간선거 앞두고 격화...동성 결혼 판결 등 남아


미 대법원의 잇따른 보수 성향 판결은 대법원 대법관들의 기울어진 이념 구도에 기인한다.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3명이 진보 성향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3명의 보수 대법관을 임명했는데, 이중 특히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를 넉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알박기 인사'로 임명했다.

때문에 대법원의 잇따른 보수 판결을 놓고 "이제부터 '트럼프의 법원'이라 불러야 한다"(노먼 아이젠 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산이 계속 유지되도록 보장했다"(NBC 뉴스)는 평가가 나왔다.

시위가 이어지자 미 워싱턴DC에 있는 대법원 앞에 경찰이 세운 장벽. AP=연합뉴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보수 진영의 진보적 가치 뒤집기와 이를 저지하려는 진보의 이념 대결이 더욱 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 시카고대 정치연구소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1000명 대상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 74%, 공화당 지지자 73%가 서로를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반대편에 강요하는 불량배"로 생각하고 있다. 또 응답자의 절반이 "정치 성향을 모르는 사람과 정치적 토론을 피한다"고 답했고, 25%는 "정치적 문제로 친구를 잃었다"고 했다.

악시오스 등에 따르면 동성 결혼과 관련한 대법원의 판결 등이 남아 있어 미 사회의 분열은 앞으로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 대법관은 본인 사망이나 사직, 탄핵이 아니면 평생 신분을 보장받는 종신 임기제다. 또 민주당이 다수인 미 하원과 달리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 반분하고 있어 사법권 견제가 어려운 상황이다.

예일대 역사학자 데이비드 블라이트는 NYT에 "우린 이런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 것인지 이제 막 보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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