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불빛으로 머리칼 자른다" 산유국도 이 지경, 유가대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급등한 유가에 개발도상국은 물론, 선진국들까지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아프리카 최대의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에선 최근 미용사들이 휴대전화 불빛에 의존해 손님을 응대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발전기를 돌리려면 휘발유를 구매해야 하지만, 급등한 유가에 그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근의 가나에는 지난달 28일 휘발유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발생해 수십 명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가나는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 중 하나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정치적으로도 안정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분노한 시위대가 폭력적으로 변하며 현지 경찰은 진압을 위해 물대포와 최루탄, 고무탄 등을 동원해야 했다.
남아시아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서민의 발인 지프니(지프를 개조해 만든 소형 버스)를 모는 디오네 다욜라(49)는 높아진 연료 가격에 하루 15달러(약 1만9500원) 수준이었던 소득이 4달러로 내려앉았다. 그는 NYT와 인터뷰에서 “두 아들은 하루에 15시간을 지프니에서 보내고 있으며, 아내는 거리에서 음식을 팔며 가족이 하루에 쓰는 것보단 많은 돈을 벌길 희망할 뿐”이라고 말했다.
남미 에콰도르에서도 치솟는 연료비에 원주민 주도의 시위가 발생했다가 18일 만인 지난달 30일 종료됐다. 경유와 휘발유의 가격을 갤런(3.8L)당 15센트(약 194원)씩 내리고 저소득층 대상 유류비 지원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있고 나서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미국 코넬대 교수는 “에너지 가격과 식량 가격의 동반 인상은 거의 모든 나라의 빈곤층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며 “장기간 지속되면 지구촌 곳곳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달 에너지 가격 인상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있는 약 9000만 명의 인구가 전기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고통을 겪는 건 개도국만이 아니다.
실제로 치솟는 유가는 오는 11월 미국의 중간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5달러(약 6500원)를 돌파하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의회에 연방 유류세를 향후 3개월간 면제하는 내용의 입법을 요구했다. 또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던 유럽 국가들도 에너지 수급에 고심하는 상황이다. 독일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단계적으로 줄여나갈 예정이던 석탄발전소 발전을 일시적으로 다시 늘릴 방침이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높고 불안정한 에너지 가격은 몇 년간 이어질 것”이라며 “현재 상황에선 연료 가격이 내려가는 시나리오는 세계적 경기 침체 외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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