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큼은 지켜주겠다던 약속'이 살린 자는 나였다 [시를 읽는 아침]

주영헌 2022. 7. 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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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당장 내 상처도 쓰리고 아프지만, 서로의 눈에 보인 상처가 너무나도 크게 보였기 때문에, 견뎌낼 수도 있었을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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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의 시 '그 약속이 나를 지켰다'

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와 산문은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에 동시에 소개됩니다. <기자말>

[주영헌 기자]

그 약속이 나를 지켰다 / 박노해

널 지켜줄게
그 말 한 마디 지키느라
크게 다치고 말았다
비틀거리며 걸어온 내 인생

세월이 흐르고서 나는 안다
젊은 날의 무모한 약속,
그 순정한 사랑의 언약이
날 지켜주었음을

나는 끝내
너를 지켜주지도 못하고
깨어지고 쓰러지고 패배한
이 치명상의 사랑밖에 없는데

어둠 속을 홀로 걸을 때나
시련의 계절을 지날 때도
널 지켜줄게
붉은 목숨 바친
그 푸른 약속이
날 지켜주었음을

- <너의 하늘을 보아>, 느린걸음, 2022년, 11쪽

사랑을 시작할 때,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 결실을 보아 결혼할 때에도 서로에게 약속합니다. 그 약속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지켜주겠다'는 말입니다. '지켜주겠다'는 말속에는 어떤 비바람 속에서도 너만큼은 휩쓸려가지 않도록 꼭 잡아 주겠다는, 세상이 둘로 쪼개져도 우리 사랑만큼은 결코 쪼개지지 않을 것이라는 맹세가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이 맹세 중에 지켜지는 맹세,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사랑이 변한 것입니까, 세상이 변한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이 변한 것입니까.

저는 이 사랑의 맹세를 잘 지켜내고 있습니다. 결혼식장에서 아내의 손을 잡고 걸은 지도 2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잘한 것을 손꼽으라면, 내 사랑을 오늘까지 잘 지켜내고 있다는 것일 것입니다. 물론 아픔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위기는 있습니다. 첫 아이를 의료사고로 잃었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까닭은 이제 첫째가 된 둘째가 태어난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 이후, 저 상처가 있어 우리는 서로를 더 잘 보듬었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 내 상처도 쓰리고 아프지만, 서로의 눈에 보인 상처가 너무나도 크게 보였기 때문에, 견뎌낼 수도 있었을 것이고요. 시시때때로 위기는 찾아왔지만, 저 위기만큼의 순간은 없었기에 견뎌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시집
ⓒ 느린걸음
 
살 만큼 살아보니 알겠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견디는 것이라는 것을. 삶 속에는 무수한 견딤이 있었습니다. 큰 견딤과 작은 견딤, 오래 견딤과 짧은 견딤, 나를 위한 견딤과 타자를 위한 견딤. 만약 나에게 다가온 견딤이 오직 '나를 위한 견딤'이었다면, 오늘까지 잘 견뎌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견딜 수 있었던 까닭, '사랑' 덕분입니다.

시에서 화자는 말합니다. '널 지켜줄게 / 그 말 한 마디 지키느라 / 크게 다치고 말았다'고요. 저 '다침'은 어떤 의미를 안고 있을까요. 저는 먼저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다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아프고 쓰려도 너를 지키기 위한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힘낼 때를 생각해보면, 재미있게도 나를 위한 때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할 때였습니다.

그런데요, 이렇게 다친 후 나는 상처 입은 감정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 더 세월이 흐르고 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너를 지켜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나를 지켜낼 수 있었다는 것을. 왜냐하면, 사랑한다는 것은 두 몸을 버리고 한 몸이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세월이 흐르고서 나는 안다 / 젊은 날의 무모한 약속, / 그 순정한 사랑의 언약이 / 날 지켜주었음을'이라는 문장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박노해 시인은...

전라남도 함평태생으로 1983년 <시와 경제>에 '시다의 꿈'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시인은 1991년 군부독재 정권 하에서 사노맹 사건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이후 무기수로 감형되었으며 7년 6개월 만에 석방된 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습니다. 『노동의 새벽』, 『참된 시작』 등 다수의 시집과  『오늘은 다르게』 등 다수의 사진·산문집을 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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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시와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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