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타 죽은 모과나무를 절 기둥으로, 그렇게 400여년
[이상헌 기자]
며칠 전 지리산 자락 화엄사 일대를 둘러보고 왔다. 장마가 시작되면 꼬박 한 달을 움직일 수 없기에 서둘러 떠난 길이다. 화엄사에는 여러 문화재가 있지만 모과 나무 기둥이 이름난 구층암을 둘러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더불어 범종과 법고를 두드리는 불교 의식을 보기 위해서였다. 큰 맘 먹고 가는 여행길이라 섬진강을 굽어볼 수 있는 사성암과 화개장터, 하동야생차박물관까지가 이번 1박 2일의 여행에 잡은 코스다.
▲ 화엄사 경내. 국보 4점과 보물 5점이 있는 천년 고찰 화엄사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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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불교인이 아니더라도 너무나 익숙한 스님(원효, 의상, 도선, 자장, 대각 등등)들이 수행을 했던 사찰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 인근의 하동 쌍계사와 함께 벚꽃 구경을 나온 인파로 북적이고 청명한 가을에는 단풍구경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으로 오르는 등산객이 수시로 찾는다. 입구에서 길을 따라 오르면 금강문과 덕장전이 좌우에 위치하고 다시 천왕문과 보제루, 종각이 나온다.
▲ 구층암 요사채의 모과 나무 기둥. 불타 죽은 모과나무를 기둥을 삼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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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전쟁 때 암자가 불타면서 화를 당한 모과나무를 기둥으로 승화시킨 것이며 얼추 400년이 넘는 세월이다보니 그 자태가 신묘하기 그지없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심재가 갈변하지 않고 회백색 자태에 골과 주름이 도드라진다. 일반적으로 모과나무는 주름이 많은 데다가 골이 깊게 패여서 목재로서의 가치는 별로 없다고 한다.
골진 회백색 모과나무가 요사채를 받친다
세간 사람들이 모과나무를 보면 세 번을 놀란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못 생겨서, 두 번째는 달콤한 향기에 반하지만 맛이 형편 없어서 어리둥절해 진다고 말이다. 그래서 모과 열매는 방향제로 쓰거나 술을 담가 먹는 것일 터이다. 요모조모 뜯어보고 있는 사이에 구층암 덕제 스님이 나오셔서 천불보전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설명을 해 주신다. 처음 보는 과객에게도 친절을 베풀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 화엄사 운고각의 법고 의식. 새벽과 저녁 때에 행해지는 불교 의식으로서 뭇 생명의 평안을 위해서 두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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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중생의 번뇌를 물리치고 어리석음을 깨우쳐 해탈에 이르게 한다는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법고와 목어, 범종과 운판을 두드리는 까닭은 세상 만물과 중생을 일깨우고 뭇 짐승들의 고통을 달래주기 위해서다.
어두워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각이다. 경내를 내려오다가 좌측에 보면 남악사(지리산 산제를 지내는 곳)와 지장암이 있다. 이 암자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올벚나무가 있는데 제일 먼저 벚꽃을 피운다고 한다. 길을 따라 오르다가 바위 틈을 지나면 색다른 풍광을 느껴볼 수 있다.
빗살 무늬 계단을 따라 오르면 섬진강이 한눈에
▲ 사성암. 화엄사에서 14km 떨어진 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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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성암에서 바라본 섬진강. 절벽을 따라 세워진 사성암 약사전과 빗살무늬 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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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면 저멀리 구례시와 지리산의 영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성암을 특징 짓는 약사전이 웅장한 맛을 선사하나, 글쓴이의 눈에는 바로 옆으로 난 빗살무늬로 흐르는 계단이 선계로 이르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 하동야생차박물관. 차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장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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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을 따라 차밭이 펼쳐지므로 다도인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이다. 하동은 신라 흥덕왕(828년) 때부터 차를 재배하던 곳이었다. 삼국사기에는 당나라에서 선진 문물을 접하고 돌아온 대렴이 차 씨앗을 지리산 일대에 심었다고 전한다. 흥덕왕 이전 선덕여왕(632~647) 재위 시절에도 차가 있었으나 대렴 때에 이르러서야 성행하였다는 기록이다.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의 삼거리를 한꺼번에 다 하다보니 시간이 빠듯하다. 쌍계사는 둘러보는둥 마는둥 하여 집으로 차를 달린다. 구경 한 번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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