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옥죄는 올가미 같은 규제 풀어야" 대한상의 100대 과제 건의
이번정부에서 꼭 풀어야 할 핵심과제 건의
6대 분야 100개 과제 건의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대한상공회의소가 정부의 본격적인 규제혁신 추진을 앞두고 '기업이 바라는 규제혁신과제 100건'을 정부에 건의했다.
대한상의는 3일 '기업이 바라는 규제혁신과제'를 정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건의서에는 상의가 그동안 민간 규제샌드박스 지원센터와 상의 소통플랫폼을 통해 발굴한 규제혁신과제를 비롯해 회원기업과 72개 지방상의를 통해 접수한 과제들이 포함됐다.
이번 건의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경제 규제혁신TF'의 핵심분야를 고려해 신산업, 현장애로, 환경, 입지, 보건·의료, 경영일반 6대 분야에 대해 100개 과제를 선정했으며, 정부가 과감한 규제혁신을 예고한 만큼 기업이 바라는 규제혁신 과제에 대한 속도감 있는 검토와 개선을 요청했다.
대한상의는 "규제는 기업들에게 ‘없으면 좋은’ 정도가 아닌 '당장 목을 옥죄고 있는 올가미'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며 "규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절박한 상황을 정부에 전달하고,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규제혁신을 추진해달라는 의미"라고 이번 건의배경을 설명했다.
6대 분야 100개 과제 신산업·현장애로·환경
상의는 가능한 모든 분야의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전방위적 규제혁신을 위해 이번 정부가 추진해야할 규제혁신 과제를 6대 분야로 분류해 건의했다.
먼저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신산업 분야의 규제혁신을 주문했다. 건의서에는 AI·로봇, 드론, 친환경신기술, 수소경제, 공유경제, 모빌리티 등 신산업·신기술 관련 규제혁신 과제 26건이 포함됐다. 이 중에는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승인받은 과제 중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거나 안정성이 어느 정도 검증된 과제 등 선제적인 후속 법령정비가 필요한 과제들도 담겼다.
신산업 규제는 낡은 법제도가 그대로 남아있고, 관련규제가 여러 부처에 얽혀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자율주행로봇은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을 필두로 활성화돼 세계 시장규모 2조원을 돌파했지만 국내에선 자유롭게 달릴 수 없다. 60년대에 제정된 도로교통법상 ‘차마’로 분류돼 보도·횡단보도에 진입할 수 없고, 공원녹지법상 공원출입도 제한되며, 개인정보보호법상 AI학습, 충돌방지를 위한 로봇 카메라 영상촬영도 제한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전파를 활용한 전기차 무선충전기술도 전파법, 전기생활용품안전법, 자동차관리법상 관련기준이 없어 상용화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두 가지 기술 모두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시범사업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상의는 기업들이 혁신산업에 뛰어들지 못해서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면 범부처 차원의 노력으로 새로운 기술·서비스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규제루프홀(Loophole; 규제사각)'을 메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CCU등 투자애로·규제 해결돼야
두 번째로, 기업들이 현장에서 겪는 규제애로 해결을 건의했다. 투자계획이 있어도 각종 규제, 제도 미비, 인허가 지연 등으로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과제 12건을 담았으며, 이산화탄소 포집·활용 기술(CCU), 가연성 고압가스 저장시설, 유증기 액화기술 등에 대한 투자애로 해결이 포함됐다.
대표과제로는 이산화탄소 포집·활용 기술(CCU) 사업화를 꼽았다. CCU(Carbon Capture Utilization)는 공장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활용하는 기술이다. 포집된 이산화탄소와 산업부산물과의 화학반응을 통해 시멘트 원료를 생성하는 등의 기술이 개발됐지만, 기존 산업분류 체계에 따라 폐기물재활용업으로 분류돼 인허가 취득 및 사업화에 제한을 받고 있다. 또한 해당기술에 활용되는 재료인 산업부산물 일부는 현행법상 재활용 자체가 불가능해 예외적용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건의서에는 기후·환경변화에 대응해 도입되었으나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거나, 친환경 기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환경관련 규제혁신 과제 10건도 포함됐다. 구체적으로는 연구개발물질 등록 간소화 등을 통해 기업부담 규제를 완화하고, 폐플라스틱 열분해유제품 규격 마련 등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현재 연구개발물질 1개를 수입할 경우 3개 법령(화학물질관리법, 화학물질등록평가법,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각기 다른 관리기관에 별도의 행정서류를 제출해야 되는데, 이를 일원화하는 등 기업 행정부담을 줄이고, 친환경기술인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활용한 재활용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제품 특성에 맞는 별도의 제조규격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산업단지 입주 등 입지 관련규제 11건을 개선해 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신산업 분야 투자 활성화를 위해 산업단지 입주요건 등을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산업단지개발 시행사인 기업이 기존 개발목적을 변경하여 자회사를 통해 이차전지소재 등 신사업 분야 투자를 하고자 할 경우 토지처분 등에 제약이 따른다. 산업입지법에 따르면 사업시행자는 공장설립 완료신고 후 5년이 지나야 토지·시설을 처분할 수 있고, 임대요건도 공동 제품생산 및 연구개발을 위한 협력기업으로 한정되어 있어 신속한 투자가 필요한 신사업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다.
보건·의료 분야 관련 규제 5건도 개선해 줄 것을 요청했다. 비대면 진료, 약 배달, 의료데이터 활용 등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첨예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았지만 혁신적인 의료플랫폼을 사업화한 기업들과 의료혜택을 누릴 수 없는 국민들을 고려하여 규제혁신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대표적으로 비대면 진료는 G7 국가 전체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2개국이 허용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비대면 진료는 원칙적으로 금지된 상황이다. 코로나19에 따른 한시적인 허용으로 약 550만건의 진료가 진행됐지만 국가위기 경보단계가 낮아지면 다시 불가능해진다. ICT 기술을 바탕으로 AI, 스마트 의료기기 등을 활용한 비대면 진료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규제혁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 외에도 세제, 고용노동, 공정거래, 산업안전 등 기업경영 전반에 걸쳐있는 규제혁신과제 36건이 건의서에 담겼다. 구체적으로 배당소득이중과세 해소, 근로시간제도 개선, U턴기업지원제도 개선, 사업장 안전 중복규제 해소 등 기업경영에 제약을 주는 규제를 전반적으로 점검·개선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배당소득에 대한 이중과세는 대표적인 세제 관련 규제 중 하나로 현재 국내기업이 자회사로부터 배당을 받을 경우, 자회사 지분율이 100%일 경우에만 배당금 전액을 과세면제해주며 나머지는 지분율에 따라 30~50%만 면제된다. 이에 법인세법 개정을 통해 영국처럼 자회사 지분율에 관계없이 배당금을 전액 과세면제 해줘야 사내 유보소득을 모회사에 배당하고 기업투자를 촉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하위법령 개정으로 개선 가능한 과제 신속해결 주문
대한상의는 특히 "국회의 협력이 필요한 법 제·개정 사항과 달리 시행령·시행규칙 등 하위법령 개정으로 개선 가능한 과제는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라며 즉시 개선 가능한 과제를 별도로 구분해 가시적인 규제혁신 성과를 내 줄 것을 주문했다.
대표적으로 국가전략기술 인정범위 확대를 건의했다. 현재 국가전략기술은 반도체, 2차전지, 백신에 제한돼 있으나, 최신기술 트렌드를 반영해 'D.N.A(Data, Network, AI)' 등의 분야로 대상을 확대하고 세제지원을 강화해 관련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된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 반도체에 연산기능을 더한 지능형반도체를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인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로 인정해 줄 것도 건의했다.
그 외에도 '자동차 무선 업데이트(OTA)',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 상쇄배출권 확대',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제품 규격 현실화' 등의 과제를 즉시 개선할 수 있는 과제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상의는 전국 72개 상공회의소에 지역기업의 현장애로를 상시적으로 발굴·건의 할 수 있는 '규제혁신 핫라인'을 개설·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한상의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각 지역상의에 규제혁신 전담직원을 두고 정기적으로 기업의 현장애로와 건의과제를 발굴, 정부에 건의하는 채널로 활용한다는 설명이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대한상의는 전국상의 규제혁신 핫라인 등 다양한 회원과의 소통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규제를 발굴하고 개선방안에 대한 목소리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기업별 건의와 규제혁신과제 해결을 중심으로 접근하되, 장기적으로는 개별 규제를 하나하나 고치는 방식에서 벗어나 불합리하거나 작동하지 않는 다수의 규제법을 찾아내 과감히 폐지하고 통폐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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