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 책상밑으로 여성다리 40분 훔쳐봤다면..건조물 침입? [그법알]
[그법알 사건번호 52] PC방 책상 밑으로 맞은 편 여성 다리 훔쳐본 죄는
20대 남성 김모씨는 지난해 2월 24일 대전의 한 PC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컴퓨터를 이용하는 여성의 몸을 훔쳐볼 마음을 먹고요. PC방에 여성 2명이 앉아있는 것을 발견한 그는 맞은 편 자리에 앉은 뒤, 테이블 밑으로 얼굴을 숙여 여성들의 다리 부위를 약 40분 동안 훔쳐봤습니다.
이러한 김씨의 행위에 대해 검찰은 건조물, 즉 PC방 침입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김씨의 훔쳐보기 만으론 피해자인 여성의 의사에 반한 신체 접촉은 없었기에 강제추행 혐의는 적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 10여분 전에는 대전의 한 잡화점에서 한 여성 옆으로 다가가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 음란한 행위를 한 혐의(공연음란)로도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김씨는 앞서 2017년 7월과 12월 각각 공연음란죄와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죄로 200만원의 벌금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력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질문
여러분이 판사라면 여성의 다리를 훔쳐볼 목적으로 PC방에 들어간 사람에게 ‘건조물 침입 혐의’를 적용하실건가요?
관련 법률은
형법 제319조는 사람의 살고 있거나(주거) 관리하는 건물(건조물) 등에 침입한 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해두고 있습니다.
법원 판단은
1‧2심 법원은 김씨에게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속옷까지 내리고 음란한 행위를 한 혐의(공연음란)와 여성의 신체를 훔쳐볼 목적으로 PC방에 들어간 행위(건조물 침입) 둘 다 유죄가 선고된 결과죠.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다시 판단해보라’는 뜻으로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영업장소에 영업주의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으로 들어갔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건조물침입죄에서 규정하는 침입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설령 PC방 주인이 김씨가 여성들을 훔쳐볼 목적으로 PC방에 들어온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라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만으로는 출입 당시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 모습(태양)에 비춰 사실상의 평온 상태를 해치는 방법으로 영업장소에 들어갔다고 평가할 수 없으므로 침입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는 약 25년동안 유효했던 ‘초원복국 사건’의 주거(건조물)침입 판례가 지난 3월 바뀐 결과입니다. 14대 대통령 선거를 1주일 앞둔 1992년 12월 11일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부산시장·부산지검장·부산경찰청장·부산교육감 등 지역 기관장들을 음식점인 초원복국에 불러 “지역 감정을 부추겨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자”는 제안했고 나흘 후 정주영 후보의 통일국민당이 대화 내용을 폭로했죠.
하지만 여론은 복집의 대화를 ‘불법 도청’한게 더 문제라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김영삼 후보 역시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그리고 불법 도청에 관여했던 통일국민당 관계자 3명은 1997년 법원은 “식당 주인이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하려는 자들에게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주거침입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25년 뒤인 지난 3월 24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음식점에서 몰래 녹음기나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해 들어갔더라도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례를 바꿨습니다. 음식점 영업주가 도청에 동의했는지보다 음식점에 들어온 것이 영업주의 평안함(평온 상태)을 위협했는지가 주거침입죄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잣대라는 취지입니다.
이 때문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대형서점에서 여러 차례 물건을 훔쳐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에게 건조물침입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도 최근 나온 바 있습니다. 이 판단 역시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서점에 통상적인 출입방법으로 들어간 사실을 알 수 있고 달리 건물 관리자의 사실상 평온상태가 침해됐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는 취지입니다. ‘평온상태’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건조물 혹은 주거침입죄란 누군가가 누리고 있는 주거의 평안함, 즉 ‘평온 상태’라는 법익을 실제로 침해했는지가 쟁점이 돼야한다는 취지입니다.
■ 그법알
「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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