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 문 닫아도 음주사망 넘쳤다.."변연계의 복수 시작"
5155명.
2020년 기준 알코올성 간 질환이나 위염 등 음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수(통계청 사망원인통계)다. 같은 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망자는 950명이었다. 제1급 감염병(당시 기준)보다 술이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간 셈이다. 코로나19로 영업시간이 제한되고 술집 문이 닫혔지만, 알코올 섭취로 인한 사망자 수는 10년 전(4535명)보다도 늘었다.
코로나19 대유행 동안, 한국인들의 음주 빈도는 줄었지만, 음주량은 오히려 늘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21 주류시장 트렌드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월평균 음주 빈도는 8.5일로, 전년(9일)에 비해 소폭 줄었지만, 음주 시 하루 평균 음주량은 같은 기간 6.7잔에서 7잔으로 늘었다.
‘변연계의 복수’ 시작됐다
이 교수는 “홈술·혼술 문화로 기존에 알코올을 많이 섭취하지 않던 20~30대의 음주가 늘었고, 거리두기가 풀리며 (회식과 같은) ‘사회적 음주’가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그는 “한국 음주 문화를 주도하던 중년 남성들의 폭음 문화와 다른, 다양한 술의 맛과 향을 즐기는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면서도 “음주 문화 변화 없이는 ‘다양한 술을 많이 빨리’ 먹는 식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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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에 관대한 한국 문화
그는 “우리나라는 음주와 관련된 사회적 규범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관대한 나라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세계보건기구(WHO)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167개국 중 146개국은 공공교육시설에서, 139개국은 공공의료시설에서 음주를 제한하고 있다. 공원에서 음주를 제한한 국가도 71개국이나 된다. 한국은 현행법상 어느 장소에서도 음주를 제한·금지하고 있지 않다.
이는 알코올 중독 인지와 치료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진단받은 사람 중 계속 치료를 받는 비율이 조현병은 약 60%, 우울증은 40~50% 수준이다. 하지만 알코올 사용 장애는 8%에 불과하다”며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인식이 다른 질병에 비해 아주 낮다”고 했다.
알코올 중독은 어떻게 구별할까. 이 교수는 “주취자는 100% 알코올 중독자다. 특히 그중에서도 행동 조절이 더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은 취하면 쓰러져 잔다. 주취자들은 의식이 꺼졌는데도 몸이 살아 있다. 정신이 먼저 취한 것”이라며 “사고 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술을 먹고 지각을 하거나 다쳐서 병원에 가는 것 역시 알코올 중독의 증상 중 하나라고 했다. 이 교수는 “술을 중독적으로 많이 먹으면 행동이나 기능,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그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중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알코올 중독 유병률은 20대에서 가장 높지만, 정작 치료를 받는 건 40~50대가 많다고 한다. 이 교수는 “알코올에 중독된 지 20~30년이 지나 치료를 받게 되는 것”이라며 “간 경화 등 심각한 건강 문제가 생겨야 처음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치료가 잘 안 된다. 암으로 따지면 암 4기에 첫 치료를 받는 셈”이라고 했다.
‘술=소통’ 인식 바뀌어야
그는 “음주 운전이나 주취자에 대한 처벌 강화만큼 중요한 게 이들에 대한 치료”라며 상습적으로 만취해 소란을 피우거나 운전을 하는 경우 이후 다시 사고를 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새로운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알코올 중독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술을 마시는 건 개인의 행복추구권에 따른 자유지만, 사람들에겐 다른 사람의 음주로 피해를 보지 않을 권리도 있다”며 공공장소 음주 금지뿐 아니라 주류 판매 제한, 알코올 중독 치료 인식 개선, 음주 대신 즐길 거리의 다양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술과 소통을 동일시하는 사회 지도층의 인식 역시 바뀌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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