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다이어리]자칫 혐오부를까 쉬쉬..원숭이두창 확산에 美도 고심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첼시에는 아침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뉴욕 내에 원숭이두창 백신을 접종 하는 첫 클리닉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사람들이 몰린 탓이다. 뉴욕시 차원의 사전 예고는커녕, 애플리케이션조차 먹통일 만큼 홍보는 전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식을 접한 이들이 우르르 첼시로 몰리며 뉴욕시가 준비한 백신 1000회분은 금방 동났다.
맨해튼 헬스키친에 거주하는 데이비드 포크씨는 당시 우연히 클리닉을 찾았다가 30분도 채 안돼 수백명이 몰리고 긴 줄이 늘어서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백신 접종 대기 줄이 아니라)선물이라도 나눠주는 건 줄 알았다"면서 "나 만큼 직원들도 충격을 받은 걸로 보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 보건당국은 조만간 6000회분을 확보해 신규 예약을 받는다는 계획이다.
세계적으로 원숭이두창 확산세가 심상치 않자, 미국도 본격 대응에 나섰다.
3일 미 현지 언론들을 종합하면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코로나19 당시와 마찬가지로 긴급상황실(EOC)을 가동했고, 정부는 기존 물량의 5배(총 5만6000회)에 달하는 백신을 즉각 공급하기로 했다. CDC는 당초 원숭이두창에 노출된 것으로 당국이 확인한 대상자에게만 백신 접종을 권고했으나, 앞으로는 당국 확인 없는 접촉자에게도 접종을 권고하기로 했다.
이는 미국 내 주간 확진자 숫자가 최근 일주일새 두 배가량 치솟은 데 따른 대응이다. CDC에 따르면 지난 1일까지 한 주간 미국에서 확인된 원숭이두창 감염자는 460명이다. 주 별로는 캘리포니아주가 95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뉴욕주가 90명이었다. 일리노이주(53명), 플로리다주(51명)도 50명을 넘어섰다.
특히 전국 원숭이두창 발병 사례의 20% 이상이 뉴욕주 뉴욕시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코로나19 확산 당시 매일 수천명이 확진 판정을 받고 수백명이 죽어나가며 진앙지로 부상했던 뉴욕이 이제 원숭이두창 주요 확산지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매년 6월 말 열리는 '프라이드먼스(성소수자 자긍심의 달)' 퍼레이드를 앞두고 뉴욕 첼시 지역에서 가장 먼저 원숭이두창 백신 접종이 시작된 점, 당국 차원의 공개적인 홍보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 모두 눈길을 끈다. 이는 원숭이두창 감염 사례의 다수가 남성 간의 성적관계와 관련됐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감염자 99%는 남성이고 대다수가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사람에서 확인되고 있다.
가장 먼저 백신 접종이 시작된 맨해튼 첼시는 인근 그리니치빌리지 일대와 함께 세계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중심지로 꼽힌다. 매년 6월 프라이드먼스마다 대규모 퍼레이드가 열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이 지역을 중심으로 성소수자 집단에 대한 안내 필요성도 그만큼 컸던 셈이다.
하지만 자칫 동성애 혐오를 조장할 수 있는 만큼 보건당국도, 성소수자 단체도 원숭이두창 예방을 위한 홍보 방안을 두고 고심이 싶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종의 낙인찍기라는 반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보건당국이 이러한 점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일례로 유타주 솔트레이크카운티의 사례를 보도했다. 카운티에서 남성과 성적 관계를 맺는 남성이 원숭이두창 감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알리려고 했으나, 이 경우 동성애자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감염 사실을 숨길 수 있다는 우려가 지적됐다는 내용이다.
성소수자 밀집지역인 첼시 지역에서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도 뉴욕시가 제대로 된 홍보에 나서지 못한 까닭 또한 이와 비슷한 이유로 해석된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물론, 각 주정부 관계자들 역시 원숭이두창과 관련한 발언을 할 때 남성 간 성적관계와 관련됐다는 표현에 각별히 주의하고 있는 모습들이 확인된다. 뉴욕시 보건당국은 백신이 동난 직후 "이러한 수요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모든 뉴요커들이 건강과 건강관리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인지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라고 돌려 표현했다.
원숭이두창도 지역사회 전파를 차단하는 것이 과제다. 이미 '확산 진앙지'로 불리는 유럽에서는 그간 젊은 남성 중심이었던 감염자가 어린이, 청소년 등으로 급격히 확산하는 사실이 확인된다. WHO 감염예방위원회는 “원숭이두창은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감염자와 밀접한 접촉을 한 누구든지 감염의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성애자는 안전하다는 오인도 위험하다.
이 가운데 확진자에 대한 낙인 찍기가 오히려 방역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미국 내에서도 쏟아진다. 특정 집단을 감염원으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감염 의심자들이 숨어버릴 경우 조기 방역자체가 쉽지 않다. 또한 코로나19 확산 이후 미국 내에서 아시아인들을 겨냥한 혐오범죄가 증가했듯, 또 다른 혐오범죄를 부추길 가능성도 크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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