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낙태권 전쟁', 한국에 미칠 나비효과

2022. 7. 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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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옹호론자들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팻말에는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미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할 권리를 보장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AP연합뉴스


1969년 텍사스주 댈러스의 노마 맥코바라는 여성이 강간을 당해 임신했다고 주장하며 낙태 수술을 요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7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는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고 낙태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텍사스주는 임신부의 생명이 위독하지 않고 성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보고서가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했다.

맥코비는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을 사용해 텍사스주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그녀의 가명과 당시 피고인이었던 지방검사 헨리 웨이드(Henry Wade)의 이름을 따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사건으로 불렸다.

긴 소송 끝에 대법원은 1973년 1월 22일 낙태 금지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낙태 처벌법이 미국 수정헌법 14조 ‘적법절차 조항에 의한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다고 봤다.

이로써 임신한 여성은 출산 직전 3개월 전까지 어떤 이유로든 낙태할 권리를 갖게 됐다.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각 주와 연방 법률들은 모두 폐지됐다.

그러나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점진적으로 축소되는 양상을 보였다. 미 행정부는 임신 중절 클리닉의 지원 예산을 깎고 통제를 강화했다. 미시시피주에서는 낙태 반대론자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낙태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주(州)도 늘어났다. 오하이오주는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되면 낙태를 금지하는 ‘태아 심장박동법’을 채택했다. 낙태 수술을 한 의사는 최대 6~12개월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보장 판례 폐기 결정 다음 날인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대법원 앞에서 낙태 반대 시위대(왼쪽)가 낙태 옹호론자들과 언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전날 여성의 낙태를 합법화한 지난 1973년의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이러한 상황 속 지난 24일 미국 연방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하면서 전 세계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 전역에서 낙태권 폐지 판결에 대한 찬반 시위가 일어났다. 약 50년간 연방 차원에서 보장됐던 낙태 권리가 크게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 각국의 대통령과 언론, 전문가들 또한 우려와 실망을 드러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낙태는 모든 여성의 기본 권리로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고 썼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며 판결에 대응하기 위한 행정명령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인구기금(UNFPA)는 성명을 내고 낙태를 제한하거나 금지할 경우 임신부의 건강과 생명이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은 “헌법에 따른 판결이며 오래전에 줘야 할 권리를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두고 진보와 보수의 대립 구도로 갈등이 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낙태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부터 법으로 낙태 행위를 처벌했다. 1912년 일본 형법을 조선에 적용해 시행된 ‘조선형사령’에 따르면 낙태한 여성에게는 1년 이하의 징역, 낙태를 시술한 의사·산파에게는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 선고됐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낙태죄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낙태는 여전히 개인적 선택을 넘어선 사회적 범죄로 여겨졌다. 이에 낙태죄를 존속시키되 특별법을 만들어 특수한 경우에만 낙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로부터 20년 후 박정희 정권 때 특별법이 제정됐다.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 8조(현재 14조)에 따라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나 강간에 의한 임신, 혈족 또는 인척간의 임신, 엄마의 건강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해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결국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를 전면 금지한 처벌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낙태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만 낙태를 전면 허용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2020년 말까지 국회에 관련 법 개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국회의 논의가 3년 넘게 흐지부지되면서 입법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7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의 직무유기”라며 입법을 미룰 수 없는 상황임을 언급했다.

한편 여야와 여성계, 종교계, 의료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만큼 국회 입법은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의 낙태권 전쟁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배규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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