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선 '고독 장관' 등장..외로움 덮친 한국, 그마저도 혼자 푼다
스스로 선택한 외로움은 사색의 기회와 자유, 해방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경제적으로 어쩔 수 없이 고립돼 느끼는 외로움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런 상태가 길어지면 심리적으로 우울증이 오고 신체적으로도 질병이 생길 수 있어 결코 가볍게 봐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87.7% “우리 사회는 외롭다”
한국인들의 외로움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2일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87.7%가 ‘사회 전반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4월27일부터 사흘간 전국 만 19~59세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한국인들은 모두 자신이 속한 연령대가 특히 외롭다고 했다. 외로움이 노인 등 특정 세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 주는 대목이다. 특히 20·30대와 1인 가구는 10명 중 6명 이상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경제적 여유 부족(37.7%)’이 주된 원인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성과 본인이 사회적으로 하층에 속한다는 사람 중에 경제적인 이유로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이어 ▶딱히 만날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34.4%) ▶주변에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어서(33.3%)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과 비교돼서(30.4%)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듯한 느낌이어서(29.7%)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28.9%) 등의 답이 나왔다.
인스타가 외로움 키운다?
흥미로운 점은 젊은 세대일수록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응답은 20대 38.2%, 30대 32.2%, 40대 25%, 50대 23.6% 순이었다. 조사를 진행한 트렌드모니터는 “젊은 세대의 경우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려진 타인의 게시물로 인해 직·간접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20·30대는 코로나19로 집에서 머무는 기간이 늘며 외로움을 느낀다는 답이 일이 40대 이상보다 많았다. 또 부정적인 감정 표현이 더 잦아지고 강해졌다는 응답이 30% 안팎으로 40대(23.2%)와 50대(21.6%)보다 높게 나타났다.
송인한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동안의 관계 단절, 경제 침체 속 경쟁과 불평등 심화, 각자도생의 위기의식 등 많은 요인이 고독과 소외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특히 한국은 사회적 신뢰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낮은 편”이라며 “개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공동체의 소속감과 안전감을 느끼기 어려워 소외감이 더욱 커진다”고 덧붙였다.
외로움도 혼자서 해결
한국인들은 일상에서의 외로움을 ‘개인 활동’으로 풀고 있었다. 외로움 해소법은 TV 시청이 44.7%로 가장 많았고 취침(35.5%) 음악감상(35.3%) 맛있는 음식 먹기(34.4%) 영화감상(31.9%) 산책(30.6%) 등이 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사회 전반적인 관계망이 느슨해지고 약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연령을 막론하고 10명 중 약 7명이 코로나19 상황이 끝나면 사람들을 만나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고 싶다고 답했다. 디지털에 익숙한 20대(58.8%)와 30대(60.8%)조차도 온라인 소통보다 오프라인 만남이 그립다고 했다.
〈외로움 해소 방법 (중복응답)〉
하지만 정작 대면 만남에는 심적인 장애를 느끼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외로움 상태가 장기간 지속하고 비대면 문화가 확산한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조사 결과 ▶사람들을 만난다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20대 45%, 30대 40.8%, 40대 38.8%, 50대 26%) ▶직접 대면 소통하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다(20대 42.4%, 30대 45.2%, 40대 38.8%, 50대 24%) ▶카페 등에서 대면 주문하는 것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20대 24%, 30대 22.4%, 40대 20%, 50대 14%) 등으로 나타났다.
영국·일본 ‘외로움·고독 장관’ 등장
전문가들은 외로움 문제를 사회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영국은 2018년 1월,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직을 신설하고 사회체육부 장관 겸직으로 임명했다. 외로움을 줄이는 일이 의료비는 물론 교통사고와 범죄, 극단적인 선택을 줄이는 것과 직결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코로나19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2월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하고 총리관저 내각관방에 고독·고립 대책실을 출범시켰다. 국가의 책임 아래 고독에 방치된 사람들을 본격 지원하겠다는 의지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8.3%가 외로움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고독사예방법’을 제정해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보건복지부가 실태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송인한 교수는 “외로움은 사회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사회적 전염성을 지니기 때문에, 어느 한 면으로만 보지 말고 포괄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며 “외로움 문제에 근본적으로 대응하려면 범부처 차원의 방안을 구체적으로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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