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임종 마주한 예비 간호사 "제 슬픔이 위로 될까요" [온기편지]

김용현 2022. 7. 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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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직전 남편 곁에서 할머니가 우실 때,
간호사인 저도 꾸역꾸역 눈물을 삼켰어요"
세상 곳곳에 전해진 1만3867통의 익명 손편지, 그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온기편지]는 비영리단체 ‘온기우편함’에 도착한 익명의 고민편지 중 공개동의한 편지와 온기우체부의 답장, 앞서 그 길을 걸었던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까지 전해주는 코너입니다.

삽화=전진이 기자

2일 온기우편함에 병원에서 첫 실습을 마친 뒤 고민을 한가득 안고 돌아온 간호대 학생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간호대생인 온기(가명)님은 최근 2주 동안 환자 대다수가 노년층인 요양병원으로 실습을 다녀왔습니다. 어르신들이 많은 병원이라 근무 마지막 주에 임종하는 분을 네 분이나 보고 몸이 굳어버리는 경험을 했다고 해요.

“한 인간의 죽음을 가까이서 보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감정을 추스르는 게 벅찼던 것 같아요. 사고가 정지된 것처럼 머리가 멍해지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면서 몸이 굳어버렸어요.”

온기님이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어제까지 대화를 나눴던 환자분이 그다음 날 자리에 없을 때입니다.

“하루를 못 넘기시고 돌아가셨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임종 직전의 할아버지를 지켜보시던 보호자 할머니께서 얼굴을 감싸며 울고 계신 모습을 보았을 때, 이 모습을 보며 전 눈물을 꾸역꾸역 삼켰습니다.”

그동안 온기님은 슬플 때는 마음껏 눈물을 흘리자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해요. 하지만 이제는 예비 간호사로서 누군가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나의 슬픔이, 눈물이, 상대에게 무슨 위로가 될까. 섣부른 위로가 동정이 되면 어쩌지?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위로란 무엇이 있을까?”

온기님은 실습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 앉아서야 창문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날의 하늘은 유독 더 아름다웠다고 해요. 온기님은 누군가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 날의 하늘은 참 눈부셨어요.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보내주신 위로였을까요?”

#1 온기우체부의 답장

안녕하세요 온기님. 우선 소중한 마음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온기님의 고민 편지를 읽는 내내 ‘역시나 삶은 살만하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대학생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진중하고 또 예쁜 마음을 편지 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한층 더 예민할 병원 첫 실습이 얼마나 긴장되고 또 힘들었을까요? 그 낯선 상황 속에서도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온기님의 모습이 인상 깊으면서도 참 간호인의 예쁜 새싹이구나 싶어 흐뭇했습니다.

임종하는 분들을 지켜봐야 하는 온기님의 마음이 참 어려웠을 것 같아요. 간호사로서의 태도에 관한 고민도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저도 죽음을 직면한 적이 많지 않아요. 간혹 마주하더라도 두려워서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하고요. 아무리 여러 번 죽음을 보더라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직업상 이 무뎌질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을 마주해야만 하는 온기님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제가 감히 상상할 수 없겠죠. 그래도 제 진심을 전해볼게요.

삽화=이재민 디자이너


예전에 새벽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병원 응급실에 간 적이 있어요. 몸도 아프고, 보호자도 없고, 몸 눕힐 곳도 없어 의자에 앉아 울고만 있었어요. 그때 어떤 간호사분이 와서 보호자가 없냐고 챙겨주고, 침대도 마련해주고, 오가며 몇 마디 따뜻한 말도 건네줬습니다. 그날 치료해준 의사 선생님은 생각이 잘 안 나고, 그 간호사분이 그렇게 고맙더라고요.

간호사만이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의학적 행동과 말이 분명 있겠지만,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위로는 한 인간이 한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위로가 아닐까요. 그렇기에 지금 온기님이 가진 그 따뜻하고 예쁜 마음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극한의 상황에 몰려있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넨다는 건, 받는 사람이 원래 마음과 다르게 예민하게 반응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눈물을 삼켜가며 진심에서 우러나와 건네는 온기님의 묵묵한 위로는 세상이 너무 힘든 사람들에게 분명 힘이 돼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온기님, 앞으로도 따뜻한 그 마음 잃지 않는 온기님이 되시기를 바랄게요. 앞으로 간호사로 일하실 온기님의 모습이 기대돼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2 그리고 선배 간호사의 조언

안녕하세요. 저는 39년 차 간호사입니다.

온기님이 보낸 편지를 읽고 “아, 우리 간호사의 앞날은 희망이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런 따스한 심성을 지녔기에 간호대학을 선택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간호대 학생이기에 다른 사람과 달리 어린 나이에도 죽음을 목격하고, 힘든 치료과정이나 죽음을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까지도 헤아려야 하겠지요.

삽화=이재민 디자이너


그래요. 이 마음이면 됩니다.

간호사는 인간이 태어나 병들고 늙어 죽기까지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간호사는 직업인이기 전에 하늘로부터 소명을 받은 자라고 생각하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하기에 힘든 치료과정과 죽음을 경험하는 가족에게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위로란 무엇이 있을까’라는 온기님의 고민에 대한 특별한 답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함께 있어 주는 것,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 손을 잡아주는 것, 그리고 “많이 힘드시지요” 이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이제 곧 병원 현장을 떠나게 되는 선배 간호사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온기님이 간호사가 돼서도 이 글을 썼던 그 마음 그대로이길 기도하겠습니다.

털어놓기 어려운 마음 속 고민이 있다면 온기우편함(ongibox.co.kr)에 익명으로 편지를 보내주세요. 진심이 담긴 손편지 답장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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