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최초 기소"라던 검찰 보도자료, 그 '속사정'
[김종훈 기자]
▲ 지난 6월 16일 창원지검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발생 대흥알앤티 경영책임자 구속 촉구 탄원서 제출 기자회견' 모습. |
ⓒ 금속노조 |
"저희들은 분명히 밝혔어요.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처벌을 원한다.' 그런데 검찰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니, 완전히 반대 결과가 나왔더라고요. 한마디로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낸 대흥알앤티는 무혐의 처분되고,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한 두성산업은 중대재해법 위반 첫 기소 대상이 된 거죠."
경남 김해시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대흥알앤티'에서 일하다가 올해 초 독성물질에 감염돼 일반인보다 25배 이상 간수치가 높아져 산재피해 노동자가 된 A씨. 그가 6월 30일 저녁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속한 회사에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검찰을 지적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기소된 두성산업과 무혐의 처분된 대흥알앤티가 결과면에서 다른 게 하나도 없는데 (대흥알앤티는) 노동자들 의견을 청취해 마치 중대재해를 사전에 예방한 것처럼 포장됐다"면서 "이렇게 면죄부를 주면 다른 곳에서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또 면죄부를 줄 것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지난 6월 27일 창원지검 형사4부(부장 이승형)는 경영책임자로서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등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지난 2월 노동자 16명에게 직업성 질병을 발생시킨 혐의(중대재해법의 중대산업재해치상)로 두성산업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반면 A씨를 포함해 13명에게 독성 감염 등 직업성 질병을 유발한 경남 김해의 대흥알앤티 대표에 대해서는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가 없다'며 무혐의 처리했다. 1984년 설립된 대흥알앤티는 노동자 700여 명 규모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 기업이다. 창원지검은 대흥알앤티 대표에 대해 '작업장에 성능이 저하된 국소배기장치를 방치했다'는 이유를 들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창원지검은 보도자료를 통해 "두성산업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요구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마련하지 아니한 사실이 인정되어 경영책임자인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 등으로 불구속기소했다"면서 대흥알앤티에 대해서는 "안전보건에 관한 종사자 의견청취 절차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춘 것으로 확인돼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에 대하여는 무혐의 처분했다"라고 밝혔다.
앞서 2월과 3월 경남 창원 두성산업과 경남 김해 대흥알앤티에서 각각 16명과 13명 등 노동자 29명이 급성 독성 간질환을 일으켰다. 두 업체 모두 유해화학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을 함유한 세척제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지난 4월과 6월 두성산업 대표와 대흥알앤티 대표를 각각 고발했다.
중대재해법은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하면 중대산업재해로 규정한다. 특히 중대재해법에는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과 보건 확보 의무로 명시돼 있다.
아래는 대흥알앤티 소속 산재 피해 노동자 A씨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 지난 6월 27일 창원지검 보도자료 |
ⓒ 창원지검 |
- 중대재해 발생 5개월이 지났는데 여전히 일을 못하는 노동자도 있다고 들었다.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
"그 친구는 지금도 치료받고 있다. 후유증(모낭염)이 피부까지 일어나서, 병원을 다니며 쉬어야만 하는 상태다. 그래도 저를 포함해 나머지 인원들은 현재 복귀해서 일하고 있다."
- 다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독성물질에 노출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이 놀랐을 거 같다. 심경이 어땠나?
"당시에 굉장히 피곤했다.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일어날 수 없는 상태가 반복됐다. 그런 상황에서 올 초에 함께 일하는 동료 두 명이 독성물질에 감염됐다는 소식을 접했고 나도 검사를 통해 마찬가지로 독성물질에 감염됐다는 걸 알게 됐다. 병원에서 간수치를 확인해보니 1000까지 나오더라. 피곤했던 이유다."
- 간수치 1000이 어느 정도 수치인가.
"보통 정상 수치가 40정도라고 하더라. 그런데 나는 1000까지 올라간 상황이 된 거다. 일단 보이는 수치가 대단히 높으니 가족들도 걱정이 매우 컸다. 그래도 다행인 게 황달 수치가 높지 않아서 3개월 정도 회사 못 가고 약 계속 먹으며 치료에만 집중하니 몸이 회복을 하더라. 지금은 (간수치가) 많이 내려가 다시 돌아와 일하고 있다."
- 독성물질에는 어떻게 감염된 것인가?
"감염된 인원 다수가 쇼트처리(표면처리) 공정에서 세척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원자재가 들어오면 그것을 저희가 첫 공정 과정에서 세척 업무를 한다. 돌아가면서 모두 세척 공정을 한다고 보면 된다. 작업간에는 1급 방진 마스크 쓰고 일한다. 29명 두 개조로 나눠 일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13명 중독자 중에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관리급 인원 두 사람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유해 물질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는 의미다. 또 다른 의미로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돼 있어도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아 (없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대흥은 '준비가 됐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중대재해법 위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 대부분 복귀했다고 하던데 다들 상태가 어떤가.
"간수치가 1200, 1500, 1600까지도 나온 사람도 있다. 다들 상황이 심각했었다. 휴식 취하고 꾸준히 약 먹고 한 탓에 회복한 거다. 지금은 먹고살아야 하니 불안한 마음이 있어도 일하고 있다."
- 현재 작업장 상태는 개선됐나?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노동부에서도 와서 조사도 하고 하니, 독성물질에 대해서 확인을 하면 정상 수치가 나온다고 하더라.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혹여 나중에 또 새로운 독성물질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고. 지금이야 여러 곳에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니 (처리 물질) 좋은 거 쓰다가 나중에 또 시간이 지나면 나쁜 거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병원에서 이야기 들어보니 한 번 간수치가 올라가면 다시 그 자리까지 오르는 건 매우 쉽다고 하더라, 내려가긴 또 어렵고. 그런 것들이 걱정인 거다."
"산재 발생해도... '준비했다'는 이유로 면죄부 줄 것 뻔해"
- 하지만 검찰에서는 중대재해 최초 기소라고 발표하면서도 같은 결과를 낸 두 개 업체에 대해 한쪽은 기소, 다른 쪽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것도 '안전보건에 관한 종사자 의견청취 절차' 등을 이유로.
"정말로 '이건 아니다' 싶었다. 두성산업과 대흥알앤티, 두 기업 모두 '중대재해'라는 결과가 다른 게 하나도 없는데 (대흥알앤티는) '종사자들의 의견 청취'를 이유로 무혐의가 된 거 아니냐. 두성산업은 노동부 의견대로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그대로 간 것이고. 이러니 저를 포함해 많은 노동자들이 (대흥알앤티가) '뒷배가 있나, 파워가 두성보다 훨씬 센 건가'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 거다.
저희들은 재해 발생 직후부터 분명히 밝혔다.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처벌을 원한다고. 그런데도 검찰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니 완전히 반대 결과가 나왔다.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낸 대흥알앤티는 종사자들 의견을 청취했다며 무혐의 처분되고,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한 두성산업은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첫 기소가 된 거다."
- 검찰에서는 '중대재해법 첫 번째 기소'라는 보도자료를 내놨다. 많이 보도됐다.
"더 놀란 이유다. 첫 번째 중대재해법 기소가 이뤄졌다고, 평소와 달리 언론이 먼저 알고 보도하더라. 그런데 그 속사정은 이렇게 달랐던 거다. 진짜 걱정은, 검찰에서 제시한 무혐의 이유대로라면 또 다른 곳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얼마든지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결과가 나빠도 대충 준비만 해놓으면 된다는 거 아니냐.
아무리 저희 노동자들이 힘이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같은 결과를 놓고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솔직히 이번에 검찰의 중대재해법 기소를 통해 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그게 쉽지가 않아 보인다."
- 그래서 더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인가?
"그렇다.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기소를 했다면 작업 환경이 좀 더 안전하게 달라졌을 텐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해봤자 얼마나 달라지겠나. 기껏해야 벌금 조금 내고 말 것이다. 변하는 게 없을 거다. 걱정된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지난 6월 27일 성명을 통해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중대재해처벌벌 시행 전부터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사실상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사업장 내 하청 노동자의 사망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유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해놓고 집행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번 검찰 측의 판단으로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과거로 회귀할 중요한 토대가 마련됐다. 과거로 회귀는 시간문제"라고 이번 검찰 발표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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