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윤 대통령이 한다는 '도어스테핑', 영국선 뜻이 좀 다르다
[박성우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헌정사 최초로 대통령으로서 출퇴근을 하자 언론에서 낯선 용어가 자주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이다. 지난 5월 12일부터 언론은 윤 대통령이 출근길에서 가지는 약식 기자회견을 일컬어 도어스테핑이라는 용어로 쓰고 있다. 하지만 해당 용어는 정작 본고장인 영국에서는 조금 다른 뜻으로 쓰이고 있다.
'도어스테핑'이 약식 기자회견? 영국 사전에는
다음은 여러 언론사에서 도어스테핑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이란 말이 있다. 언론계에서 주로 쓰는데, 주요 인사가 문을 드나들 때를 기다렸다 간단한 문답을 주고받는 걸 일컫는다." - <중앙일보>
"도어스테핑은 주요 인사가 문을 드나들 때 취재진과 간단한 문답을 약식으로 주고받는 것을 뜻합니다." - JTBC
"중요 인사가 청사를 드나들 때 취재진과 문답을 나누는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은 국내 정치에선 다소 생소하다." - <한국일보>
한국 언론에 따르면, 이처럼 도어스테핑은 중요 인사의 약식 기자회견쯤으로 풀이되고 또 그런 의미로 쓰인다. 영미권에서도 그렇게 쓰이고 있을까.
▲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나온 '도어스테핑'의 뜻. (출처: https://www.oxfordlearnersdictionaries.com). |
ⓒ 옥스퍼드 화면갈무리 |
콜린스 영어사전과 마찬가지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어떨까.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누리집 역시 도어스테핑의 예문으로 '기자는 누군가에게 도어스테핑을 할 때, 설령 그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지라도, 그의 집에 가서 그와 이야기하려고 시도한다'고 기재돼 있다. 약식 기자회견이라고 하기엔 다소 기습적이고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 영국의 공영방송사인 BBC는 아예 누리집의 안전 가이드에 도어스테핑을 따로 다루고 있다. 사진은 BBC 누리집의 안전 가이드 중 도어스테핑 항목. |
ⓒ BBC 화면갈무리 |
그렇다면 언론에서의 실제 사용방식은 어떨까. 영국 언론 <가디언(Guardian)>은 아이를 출산한 트랜스젠더 남성이 고등법원에서의 사생활 보호 판결에서 패소한 소식을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서 도어스테핑은 "(패소한 트랜스젠더 남성의) 변호사들은 그가 온라인 괴롭힘, 언론의 도어스테핑 그리고 다른 비참한 행동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라는 문장에 등장했다.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영국의 공영방송사인 BBC의 경우, 아예 누리집의 안전 가이드에 도어스테핑을 따로 다룬다. 이 가이드에 따르면 BBC는 도어스테핑을 "집, 직장 또는 청사 외부와 같은 공공 공간에서 취재원과 대면함으로써 사전 준비나 동의 없이 취재원에게서 인터뷰 또는 인터뷰 화면을 얻으려는 시도를 일컫는 용어"라고 정의한다.
이어 도어스테핑은 "취재원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 친구, 동료들로부터도 공격적이거나 심지어 폭력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며 "가능한 경우, 그러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인터뷰를 확보하는 BBC 편집 지침을 준수하라"고 쓰여 있다. 또한 가이드에 따르면 "모든 도어스테핑은 상급 관리자(senior manager)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상사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고 되도록이면 지양하는 인터뷰 방식, 이게 바로 도어스테핑인 것이다.
의미도 다르고 생소한 '도어스테핑', 대신할 단어는 없을까
살펴본대로 사전의 정의 및 예문, 실제 영국 언론에서의 쓰임 및 지침에 따르면 도어스테핑은 약식 기자회견이라기보다는 한국식 기자용어로 치자면 '뻗치기' 혹은 매복·기습했다가 질문하는 방식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어쩌다가 다소 부정적인 취재방식의 의미를 지닌 도어스테핑이, 약식 기자회견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기자들이 총리 관저에서 대기하다 갖는 약식 기자회견을 '매달린다'는 뜻의 '부라사가루'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부라사가리(ぶら下がり)'라고 칭한다고 한다. 지난 2001년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가 출퇴근 때마다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준 이래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한국 언론 역시 '도어스테핑'과 같이 생소한 영어 단어를, 그것도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굳이 언론에서 쓸 필요가 있을까. 첫 출퇴근 대통령 시대를 맞이해 일본처럼 우리말로 된 용어를 하나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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