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5.18 '헬기 사격' 부인했지만.."허삼수는 '헬기 작전' 말했다"
[구영식 기자]
▲ 국회 문공위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온 이광표 전 문공부 장관. 허삼수 전 청와대 비서관. 이수정 전 문화공보부공보국장. 허화평 전 청와대 보자관(왼쪽부터)이 80년 언론통폐합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1988.11.23 |
ⓒ 연합뉴스 |
정호용 전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사령관은 지난해 2월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진상조사위)에 제출한 진정서에서 당시 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이 "도청탈환작전이 27일로 정해진 것 같은데 이를 3~4일 앞당기는 것이 좋겠다"라며 특히 "헬기를 작전에 활용하면 희생은 많이 나지 않게 된다"라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증언했다.
특히 그동안 전두환 전 대통령(2021년 11월 사망) 등 신군부 세력이 '헬기 사격'을 부인해온 가운데 신군부 핵심인사로부터 '헬기 동원' 증언이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1980년 5·18 당시 전남도청의 모습 |
ⓒ 5.18 기념재단 |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정호용 전 사령관의 진정서에 따르면, 지난 1980년 5월 23일 허삼수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이 정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정 전 사령관은 "광주에서 도청탈환작전을 (5월) 27일 하기로 (하는) 논의가 있었던 때" 허삼수 처장이 전화를 걸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며 당시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먼저 허삼수 처장이 "도청탈환작전이 27일로 정해진 것 같은데 이를 3~4일 앞당기는 것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라고 도청탈환작전을 앞당기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정 전 사령관에게 물었다. 이에 정 전 사령관은 "현지 부대에서 결정한 것을 따라야 한다"라고 답변한 뒤 "당신은 서울에서 (보안사) 인사처장인데 왜 이 문제를 거론하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허삼수 처장은 "오래 끌수록 안 좋으니 작전을 앞당겼으면 하는 의견을 여쭈어보는 것이다"라고 말했고, 정 전 사령관은 "작전문제는 현지 지휘관들이 결정한 대로 진행되도록 놔두어야 한다, 작전을 앞당기면 쌍방간에 희생이 많이 나게 된다"라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러한 반대 의사 표명과 관련, 정 전 사령관은 진정서에서 "본인이 광주 현지작전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쌍방의 희생을 줄여야 하고 특히 광주 시민의 희생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작전 변경을 반대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특전사 보안반장직을 수행했던 김충립 5.18진상조사위 전문위원은 6월 2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도청탈환작전을 5월 27일에서 25일 정도로 앞당기려고 한 것인데 이는 국보위 창설과 관련돼 있다"라며 "5월 27일에는 국보위 창설을 결의했고, 5월 31일에는 국보위를 창설하는데, 광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도청탈환작전을 앞당기려고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가 전일빌딩 앞에서 선회하는 모습. 현재도 광주 금남로에 위치한 전일빌딩에는 헬기 사격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탄흔이 남아 있다. |
ⓒ 나경택 촬영, 5.18기념재단 제공 |
정 전 사령관이 "작전을 앞당기면 쌍방간에 희생이 많이 나게 된다"라고 하자, 허삼수 처장이 '중대한 발언'을 한다. "헬기를 작전에 활용하면 희생이 많이 나지 않게 된다"라고 말한 것이다.
허삼수 처장의 '헬기 동원' 언급에 정 전 사령관은 "그렇지 않다"라고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시위대에 지휘자도 없이 여러 날 되면 오합지졸이 되고, 술 먹고 떨어져 잘 때 작전을 해야 희생을 줄일 수 있으니 현지 계획대로 (5월 27일에) 하는 게 좋겠다"라고 말했다.
정 전 사령관은 진정서에서 "허삼수 대령이 헬기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라며 "그동안 헬기를 운용한 작전이 있었다는 의미이고, 도청탈환작전시 헬기를 사용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통화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재판에서 '1980년 5월 21, 27일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 측은 "헬기 사격은 없었다"라고 부인해왔다.
그런 가운데 신군부의 핵심인사인 허삼수 전 처장이 도청탈환작전 나흘 전에 '헬기 동원'을 언급했다고, 또 다른 신군부 핵심인사인 정 전 사령관이 증언한 것은 헬기 사격이 역사적 사실임 확인시켜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쓰리허' 허삼수 전 처장은 누구?
허삼수 전 처장은 육사를 졸업한 이후 오랫동안 육군 방첩부대에서 방첩, 정보, 대공수사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육사 17기 동기인 허화평(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안현태(대통령 경호실장) 등과 함께 군대 사조직인 '하나회'에 가담했고, 하나회 내 육사 17기 멤버들의 리더였다.
지난 1979년 보안사 인사처장에 발탁돼 당시 김재규 등을 체포·검거하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직접 체포하는 등 10.26 사태와 12.12 군사반란 당시 주요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전두환 사령관이 이끄는 합동수사본부 총무국장과 중앙정보부장(전두환) 특별보좌관을 겸임했다.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원회 간사를 맡아 삼청교육을 주도했고, 5공화국이 출범한 이후에는 청와대 사정수석에 발탁됐다. 5공화국 초기 허문도(청와대 정무1비서관)·허화평(청와대 정무1수석)과 함께 '쓰리허'로 불리며 전두환 대통령의 핵심 측근 그룹을 형성했다. 민주정의당(민정당) 국책평가위원과 14대 민주자유당(민자당) 국회의원, 한국청소년연맹 총재, 국제장애인협의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김영삼 정권이 하나회 해체 등 군부인사 숙청에 나서자 민자당을 탈당했다.
지난 1996년 1월 내란모의와 반란모의 참여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다음해(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이 확정됐다. 지난 1996년 4월 총선에 옥중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지난 1997년 12월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 이후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관련기사]
[단독] 드디어 입 연 정호용 "노태우가 날 5.18 책임자로 몰아 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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