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 삶과 죽음, 폭력 앞에 선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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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을 쓴 소설가 김훈의 시선은 이제 가까운 이웃을 향한다.
수녀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나이든 수녀들의 모습에서도, 공원 그늘 옆에서 장기를 두는 노인들의 삶 이야기에서도 담담하고 쓸쓸한 인생의 말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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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을 쓴 소설가 김훈의 시선은 이제 가까운 이웃을 향한다. 손끝 하나, 숨결 한 모금까지 섬세하게 짚어가는 특유의 필체는 주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찬찬히, 때로는 뜨겁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작가는 이 책에서 다양한 이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지만 그 끝엔 '죽음'이 있다. 한 사람이 태어나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과정에는 각자의 고유한 개별성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구조적 모순이 짙게 깔려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죽음의 형태는 고독사다. 첫 에피소드인 '명태와 고래'의 이춘개는 평범한 뱃사람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북쪽 땅에 도달한 이후로 간첩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십수 년간 징역살이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국가는 한 개인에게 무차별적인 폭행과 고문, 인격 모독을 일삼는다. 출감 후 살던 곳으로 돌아온 그는 가족과 자아를 모두 잃은 채 홀로 목숨을 끊는다.
'손'에서 철호에게 성폭력을 당한 후 목숨을 끊은 연옥의 죽음에도 쓸쓸함이 서려있다. 작가는 그의 이야기를 가해자 부모의 눈과 사건 기록 일지를 통해 최대한 먼 발치서 관찰한다. 그는 어린 여자아이를 구조했던 한 소방사의 이야기를 보고 이를 그려냈다고 한다. 소방사와 연옥, 주인공은 '손'을 매개로 연결된다.
수녀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나이든 수녀들의 모습에서도, 공원 그늘 옆에서 장기를 두는 노인들의 삶 이야기에서도 담담하고 쓸쓸한 인생의 말미가 느껴진다. 노량진 고시원을 맴돌며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가는 공무원 준비생들의 이야기도 지나칠 정도로 쓰디쓴 현실을 그리고 있다.
국가 폭력과 성폭력, 청년 실업, 노인 고독사… 작가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와 함께 사회가 해결해야 할 실마리를 남긴다. 일감이 끊겨 간편식 죽과 술로 끼니를 연명하다 홀로 죽음을 맞이한 60대 정수기 방문 점검원, 빼곡한 구직 노트를 곁에 둔 채 단칸방에서 죽음을 택한 30대 청년의 이야기는 모두 얼마 전까지 뉴스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 책에서 오래된 구전 동화처럼 쓰여진 국가 폭력의 역사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8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이창복씨는 이번 달에서야 국가배상금 반환 의무를 면제 받았다. 그가 겪은 각종 고문의 기억과 가족들이 겪은 생활고, 남은 빚은 그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았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 삼청교육대 강제입소 피해자 등 이들 모두가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이다.
공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한 공간에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넘어, 나와 다른 삶의 존재를 알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 모든 죽음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어쩌면 인간의 죽음이란 대개 쓸쓸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더욱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단편 '저만치 혼자서'에 대한 글쓴이의 말은 여운은 남긴다. "죽음의 문턱 앞에 모여서 서로 기대면서 두려워하고 또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표정을 겨우 썼다. 모자라는 글이지만 나는 이 글을 쓸 때 편안했고, 가엾은 존재들 속에 살아 있는 생명의 힘을 생각하고 있었다."
저만치 혼자서 | 김훈 | 문학동네 | 264쪽 | 1만5000원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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