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환율 상승,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시아경제 정재형 경제금융 에디터] 지난 30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기준 4거래일만에 1300원을 돌파하고 1303.7원까지 올라 연고점을 경신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추가로 기준금리를 크게 올릴 전망이어서 원달러 환율은 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환율 상승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우리 기업들의 수출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때문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전반에는 긍정적인 영향이 크다. 그러나 최근에는 물가 상승 우려가 큰 상황이기 때문에,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는 쪽으로 얘기되는 듯하다. 물론 소비자물가가 오르면서 많은 이들의 고통을 겪을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율 상승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고 싶다. 한국신용평가가 지난 4월말 발간한 '달러 강세, 수혜 업종과 피해업종은?' 보고서에 따르면, 상당수 업종에서 환율 상승 영향이 제한적이거나 긍정적이었다. 부정적인 업종은 항공기 리스, 항공유 구매 등으로 외화 부채가 많은 항공운송 업종 뿐이었다. 산업별 환율 노출도와 업종별 가격결정구조, 이종통화 환율, 외화자산/부채 규모 등 요인을 분석한 결과다.
수출비중이 큰 조선,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산업은 환율 상승이 수익에 긍정적 요인이다. 순수입 업종인 발전, 정유업은 비용이 상승하지만 이를 판매가격에 전가할 수 있기 때문에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특히 수입 원자재가 생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거나 낮은 게임과 바이오 산업은 환율 상승의 수혜주다. 북미 수출 비중이 높은 게임 산업과 기술수출 계약을 맺은 바이오 기업들은 환율 상승으로 원화 기준 수익이 늘어난다. 넷마블, 위메이드, 펄어비스, 스마일게이트 등 게임업체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에이비엘바이오 등 바이오업체들이 그렇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트라우마로 환율 상승은 위기와 결부돼 인식되기도 한다. 외화 유동성 위기와 자본 유출이 환율 상승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2013년 미국이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기로 하면서 벌어진 '버냉키 쇼크(신흥국 외환위기)' 때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올해 1분기말 기준 순대외금융자산이 6960억달러(약 900조원)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 금융자산에 투자한 것에서 외국인들이 국내 금융자산에 투자한 것을 뺀 수치다. 2014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순대외금융자산이 마이너스였다. 2014~2015년쯤에 플러스로 전환됐고 이후 순대외금융자산이 급증해 올해 1분기에 900조원 정도까지 높아진 것이다. 최근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이 크게 늘었고, 금융회사들도 지속적으로 해외 금융투자를 늘린 영향이다.
순대외금융자산이 늘면서 해외에서 배당과 이자를 통해 벌어들이는 금액도 상당히 높아졌다. 올해 1~4월 투자소득수지(배당+이자소득수지)는 17억1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2억2000달러)보다 40% 늘었다. 2021년에도 연간 투자소득수지는 200억달러로 전년(142억달러)대비 41%증가했다. 이는 2013년 53억달러의 약 4배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순대외금융자산 6960억달러가 일본(3조4000억달러, 2020년말 기준)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우리나라도 일본과 비슷하게 '경상수지 흑자→순대외자산 증가→투자소득수지 확대' 구조로 갈 수 있다. 일본 엔화는 경제 위기 때마다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다. 우리가 그 위치에까지 다다르기는 어렵겠지만, 7000억달러에 달하는 순대외금융자산이면 4477억달러의 외환보유액과 함께 대외건전성에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너무 빨라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넘어서 내외 금리차가 확대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하지만 환율은 내외 금리차 뿐 아니라 국제금융시장과 국내외 경제 상황, 대외신인도 등의 영향도 받는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시장안정 노력과 수단도 충분하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상황은 나쁘지 않다. 환율이 일시적으로 오를 수 있지만 1997년, 2008년 위기 때처럼 추세적으로 바뀌는 건 아닌 것 같다. 경제주체들이 환율 상승에 대해 너무 불안감을 가짐으로써 자기실현적 기대가 형성되는 것을 경계해야 할 때다.
정재형 경제금융 매니징에디터 jj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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