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아침 7시, 내 거실로 찾아온 미국 독자들
코로나가 유행하던 근 3년 동안 강의는 대개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하기 싫었지만 별수가 없었다. 모니터 화면에 얼굴만 빼꼼 내민 독자들과는 서먹서먹했다. 청중이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여 주고, 간간이 웃거나 추임새를 넣어줘야 강사가 신이 나는 법이다. 근데 비대면은 다들 듣고 있는 건지조차 감이 오질 않았다. 중간에 쓱 사라지기도 하고, 아예 처음부터 비디오를 틀지 않는 분도 있었다. 벽에다 대고 혼자 얘기하는 기분이랄까. 그러다 보니 무의식중에 톤이 높아져 목이 쉬곤 했다. 강의가 끝나면 몇 배로 힘들어 허기가 질 정도였다.
게다가 디지털 기기에 능숙하지 않아 불안했다. 안 그래도 강의를 하다가 사고가 몇 번 터졌다. 갑자기 오디오가 안 되는 바람에 중간에 다른 미디어로 갈아타야 했다. 내 얼굴 화면이 이상하게 멈춘 채 목소리만 이어지기도 했다. 모니터에 대고 자꾸만 뭐라고 말을 거니, 맥 컴퓨터 속에 살고 있는 쉬리가 갑자기 끼어들어 참견했다. 독자들은 채팅창에 계속 글을 올리는데 PPT 화면을 넘기느라 정작 나는 읽지 못했다. 대면 강의를 할 때는 다들 빵 터지던 대목이었는데 온라인에선 아무런 반응 없이 지나갈 때가 많았다. 한마디로 소통이 먹통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코로나가 가라앉으면 비대면 강의 같은 것은 하지 말아야지 싶었다. 그런데 최근 몇 가지 신기한 경험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야말로 랜선으로 이어진 비대면의 수혜를 톡톡히 맛본 것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국에 살고 있는 한 독자가 소식을 전해 왔다. 현지의 20명 안팎 멤버들이 내 책 ‘걷기의 말들’을 읽고 나서 독서 토론을 하기로 했다는 거다. 비록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미국에 거주하는 여성들이 모인다니 관심이 갔다. 게다가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온라인으로 만난 사이라 동부와 서부를 다 아우른다고 했다. 그럼 책은? 당연히 전자북으로 읽는단다.
그리하여 미국 서부 분들은 오후 3시, 동부 분들은 오후 6시, 한국에 사는 나는 아침 7시에 접속하기로 약속했다. 원래 그 시간에는 체육관에 나가 배드민턴 레슨을 받아야 하지만 과감하게 접었다. 이역만리에 나가 사는 여성들이 작가를 만나고 싶어 기다린다는데 그깟 하루쯤 희생 못할까. 화상으로만 만날 수밖에 없는 독자들이 독후감을 들려주는 자리는 작가로서 그 어느 때보다 감동의 도가니였다. 출판사의 중재 없이,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작가와 독자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세상에 살고 있다니! 내가 책을 만들던 편집자 시절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언젠가 내가 뉴욕으로 날아가면 다들 그쪽으로 모이겠다는 북토크 일정까지 즉석에서 만들어졌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일파만파 오미크론이 유행하면서 나 역시 피해 가지 못하고 양성 반응이 나왔다. 별다른 증상이나 고통은 없었지만 꼼짝없이 일주일간 자가격리를 해야만 했다. 강의가 두 건이나 잡혀 있는데 이거 큰일 나지 않았는가. 아니, 전혀 큰일이 아니었다. 둘 다 비대면이었기에 나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서 강의를 진행했다. 사람과 접촉하면 안 되고, 운동을 하러 나가진 못해도, 독자들을 만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렇게 어색하고 서먹하더니 이제는 비대면 강의도 자연스러워졌다. 독자들 또한 직장에서 야근을 하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거리를 걷다가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싫다고, 불편하다고 안 하고 버텼으면 어쩔 뻔했나!
3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 구석구석 독자를 만나러 돌아다닌다고 자랑했는데 이제는 좀 더 야무진 꿈을 키워 본다. 미국 유럽 동남아 가리지 말고, 전 세계에 퍼져 사는 독자들을 만나 보겠다고. 비행기값이나 숙박비가 들지 않는다. 서점이나 도서관 같은 장소도 필요 없다. 비대면 세상에서는 그저, 작가의 관심과 독자의 열망만 있으면 된다.
마녀체력 '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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