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과학자들의 사회적 나눔

2022. 7. 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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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직 법무법인 케이씨엘 변호사·KIST미래재단 이사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과정에 얽힌 스토리를 듣다 보면 크게 감동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던 1966년 당시 정부는 KIST 설립을 앞두고 해외 한국인 우수 연구자들에게 간절한 메시지를 담은 초청장을 발송했다. 당시 국내 교수 봉급의 2~3배를 제시했다. 심지어 당시 박 대통령보다 많은 보수를 제시했지만, 그들이 해외에서 받고 있던 보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나라도 백성도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제시된 조건이 별 볼 일 없었지만, 해외에서 활약하던 한국인 연구자 500여 명이 고국의 부름에 응답했다. 그 가운데 선정된 18명의 ‘유치 과학자’들의 고귀한 뜻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으로 이끄는 밀알이 됐다.

「 KIST 직원, 10년간 연봉 1% 기부
재단 만들어 치매·자폐 연구 지원

KIST에 가면 흰 꽃이 쌀밥처럼 보인다는 이팝나무가 곳곳에 심어 있다. 과학기술을 육성해 가난한 국민의 배를 채워주려 했던 과학기술자들의 염원을 담은 것이라 한다. 선배들의 순수한 결의와 헌신의 정신은 KIST의 전통으로 자리매김해 지금도 후배 과학자들의 가슴에 이어져 오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2012년부터 KIST 직원들은 연봉의 1%를 기부하는 캠페인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모인 15억원가량의 기금을 바탕으로 마침내 ‘KIST 미래재단’이 지난 3월 창립총회를 열고 닻을 올렸다. 설립 이래 과학기술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끌어 온 KIST가 이제는 과학기술을 통한 나눔에 동참하며 그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주도한 KIST미래재단은 6월 말 공익재단 공식 등록을 계기로 공적 본분을 다할 것이고, 진정한 과학기술 나눔의 의미를 실천하는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등 체계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할 계획이다.

평생을 판사 출신 법조인으로 살아온 필자는 과학기술에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인데 KIST미래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 문득 법조인과 과학자의 길을 생각해본다. 한자로 법(法)은 ‘삼수 변(氵)’에 ‘갈 거(去)’ 자로 이뤄져 있다. 글자 그대로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즉 세상의 상식에 부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科)는 ‘벼 화(禾)’에 ‘말 두(斗)’가 합해졌다. 아마도 모두의 생명줄인 곡식을 풍족하게 얻기를 기원했던 소망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이질적인 분야를 다루는 법조인과 과학자는 교류할 기회가 많지 않지만, 삶과 자연의 이치를 다루는 직업이란 점에서 궁극적인 지향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2006년 ‘한국자폐인사랑협회’를 설립해 지금까지 회장직을 수행해오고 있고, 여러 공익단체와 장학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관여해 온 경험이 있다.

그런 필자가 뜻밖에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의 과학기술 연구소인 KIST의 특별한 나눔 및 사회공헌 비전에 힘을 보탤 수 있게 된 것은 법과 과학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얼핏 모양은 다르지만 결이 비슷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회 발전을 위한 법조인의 임무가 법과 원칙의 수호라면 과학자의 사명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과학기술을 연구개발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KIST미래재단은 인류 공동의 난제인 치매와 자폐 등 어려운 분야에 희망을 주는 도전적 연구 수행에 인적·물적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글로벌 연구자 육성 사업, 다문화가정 등 소외계층을 위한 장학 및 멘토링 사업은 물론이고 한국의 발전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고 도움을 주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도 관심을 집중할 작정이다. 국경을 넘어 지구촌 모든 인류가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세상, 과학기술을 통해 KIST가 꿈꾸는 또 한 번의 원대한 목표와 결의에 더 많은 분이 동참하길 기대해 본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용직 법무법인 케이씨엘 변호사·KIST미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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