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형의 객석에서] 美 청년 신들린 연주..건반으로 냉전을 녹이다
1958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출전, 소련 청중 8분간 기립박수
'클라이번톤'이라 불리는 선명한 음색, 고음부 빛나
반 클라이번 콩쿠르, 2017년 선우예권 이어 올해 임윤찬 우승 쾌거
지난 6월 19일 오전 한국 클래식 음악계는 흥분에 휩싸였다. 미국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열린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과 발표가 현지시간 18일 오후 7시에 있었다. 지휘자 마린 올솝이 부른 우승자의 이름은 임윤찬이었다.
최종 결선 진출자 6명 중 유일한 동양인에 최연소였다. 결선에서 러시아(두 명),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미국 연주자들과 겨뤘다. 회를 거듭하며 우승후보로 손꼽힌 임윤찬이었지만 전 대회(2017) 우승자가 우리나라의 선우예권임이 마음에 걸렸다. 끝내 두 대회 연속 한국인 우승을 이뤄낸 임윤찬은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라흐마니노프와 베토벤의 유산을 깊게 연주하려 했다”고 밝혔다.
스포트라이트를 우승자에서 대회로 옮겨본다. 수많은 한국 음악팬들에게 이전보다 더 깊이 각인된 이름인 반 클라이번. 그는 어떤 피아니스트였을까.
반 클라이번의 본명은 하비 라반 ‘반’ 클라이번 주니어다. 1934년 7월 12일 루이지애나의 쉬레브포트(Shreveport)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처음 배웠다. 어머니 릴디아 비는 리스트의 제자였던 아서 프리드하임의 제자였다. 아버지 하비 라반 클라이번은 매그놀리아 정유회사에 다녔고 텍사스 주의 킬고어로 가족이 이주했다.
반 클라이번은 천재 소년으로 유명했다. 1947년 12세 때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을 3주간 외워서 텍사스주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 휴스턴 심포니와 협연했다. 이듬해에는 내셔널 뮤직 페스티벌상을 받아서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섰다. 17세 때 뉴욕의 줄리아드 음대에 입학해 로지나 레빈에게 배웠다. 레빈 교수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출신으로 당시 구 소련에서 러시아 피아노 악파를 계승한 인물이다.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 영화음악가 존 윌리엄스, 피아니스트 존 브라우닝, 개릭 올슨, 백건우, 한동일 등 제자를 배출했다.
미국 피아니스트였지만 어머니를 통해 프란츠 리스트의 전통을, 스승을 통해 러시아 피아노 악파의 전통을 계승한 반 클라이번은 텍사스 주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스무 살이 되면서 저명한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1위에 오른다.
줄리아드 시절에 영화음악 작고가 존 윌리엄스와의 일화가 유명하다. 원래는 피아노과로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한 윌리엄스는 반 클라이번의 연주를 본 다음에 깨달은 바가 있어 작곡과로 진로를 바꿨다. 반 클라이번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존 윌리엄스를 숱한 명곡을 남긴 작곡가가 아닌 피아니스트로 기억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1950년대 후반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한국 전쟁도 휴전이 된 이후 그야말로 싸늘한 냉전의 상태였다. 1956년 헝가리에서 소련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서독은 공산당을 비합법화하면서 징병제를 부활시켰다. 1957년에는 소련에서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렸다. 미국에선 우주 개발에 뒤졌다고 성토가 이어졌다. 1958년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미국에 기술적 승리에 이어 문화적 승리를 거두려는 소련 당국의 프로젝트였다.
은사인 로지나 레빈 여사가 소련에서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이 반 클라이번이었다고 한다. 반 클라이번의 장기는 러시아 음악이었다. 1939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를 듣고 감동해서 콘서트 피아니스트를 꿈꿨다. 텍사스 콩쿠르에서도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을 연주해서 입상했다, 레벤트리트 콩쿠르 우승 뒤에 다른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도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연주해 성공을 거뒀다.
콩쿠르가 열린 모스크바에서 반 클라이번의 기량은 엄청났다. 4월 13일 피날레에서 반 클라이번이 연주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소련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8분 동안이나 받았다.
수상자 발표 전 심사위원들은 소련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시초프) 서기장에게 미국 연주가에게 1등을 줘도 되는지 물었다. 흐루쇼프는 “그가 최고인가? 그럼 그에게 상을 주게!”라고 허락했다. 시상식에서도 미소로 적국의 영웅을 대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레프 블라센코(소련), 류 쉬쿤(중국)이 공동2위, 나움 슈타르크만(소련)이 3위였다. 정치적인 고려로 순위가 바뀌었다면 대회 권위는 땅에 떨어졌으리라. 심사위원이었던 거장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가 반 클라이번에게 만점을 주고 다른 연주자들은 0점을 줬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냉전 시대 적지에서 우승하고 금의환향한 피아니스트는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직접 공항에 마중 나갔고 화려한 카퍼레이드가 열렸다. 그 16년 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는 정명훈이 2위를 하고 돌아왔을 때 카퍼레이드는 이때 멋진 장면의 영향이 컸다.
그는 ‘러시아를 정복한 텍사스인’이란 제목으로 타임지 커버 주인공이 됐다. 뉴욕에서 반 클라이번은 군중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더욱 흥분되는 이유는 여러분이 클래식 음악을 존중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믿습니다. 그 구조, 보이지 않는 건축, 앞으로 젊은이들이 정신을 키워가고 가치를 찾는데 도움을 줄 거라고 믿습니다.”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은 대체로 손이 크거나 몸집이 크거나 둘 다 큰 사람들이 연주를 했다. 스케일이 아주 크다. 차이콥스키, 스크랴빈, 라흐마니노프 모두 양손의 두툼한 화음과 음정의 비약이 눈부시다. 클라이번은 몸집이 컸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풀 사이즈 그랜드 피아노가 작게 느껴졌다. 손을 뻗치면 한 뼘이 33센티미터였다니 진짜 큰 손이다. 1옥타브 반은 넉넉하게 짚을 수 있었다. ‘클라이번 톤’이라고 불리는 선명한 음색은 독특하면서 밝다. 특히 고음부가 빛난다. 선명하고 그늘지지 않으면서 개방적인 소리의 소유자로 그가 연주하면 모두 클라이번 화(化) 되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우승한 해인 1958년 피아노 교사들의 국립협동조합이 주최한 만찬에서 1만 달러의 상금을 수여하는 피아노 콩쿠르가 논의됐다. 그레이스 워드 랭포드와 지역 피아노 교사들, 자원봉사자들을 주축으로 한 제1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가 1962년 9월 24일 포트워스의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에서 열렸다. 4년마다 열리는 콩쿠르는 그렇게 시작됐다. 반 클라이번은 사망할 때까지 반 클라이번 재단의 감독과 명예감독을 지냈다. 재정적인 지원만 하고 심사위원은 사양했다. 수상자들을 격려하거나 함께 식사를 했을 뿐이었다. 라두 루푸, 크리스티안 차하리아스, 니콜라이 페트로프, 배리 더글라스, 알렉세이 술타노프 등 최고의 피아니스트들을 배출한 대표적인 피아노 콩쿠르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는 2005년 양희원(조이스 양), 2009년 손열음이 각각 2위에 오른 데 이어 선우예권과 임윤찬이 연속 우승이라는 역대급 성적을 올렸다.
반 클라이번은 2013년 세상을 떠났다. 1978년 아버지 사망 이후 그는 사실상 무대에서 은퇴하고 은둔자로 지냈다. 지나치게 이른 성공과 대중의 폭발적 관심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1987년 레이건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의 정상회담 때 백악관에서 연주회를 갖는 등 이따금 모습을 드러냈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에게 자유 메달을 수여했고, 2010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국가예술 메달을 주는 등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그의 업적을 기렸다. ‘호로비츠, 발렌티노 리버라치, 엘비스 프레슬리를 합친 피아니스트’라는 AP통신의 표현대로 그는 기교와 대중성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반 클라이번, 그는 떠났지만 콩쿠르의 멋진 경연과 입상자들의 활약으로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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