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북한 영화의 대부' 정준채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봉준호 박찬욱 등 한국 영화감독들이 세계 유명 영화상을 휩쓰는 시대가 됐다.
"(정준채는) 1949년 소련의 북조선 지원을 필름에 담은 기록영화 '친선의 노래'를 제작했고 이 영화로 1950년 제5차 체코슬로바키아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축전에서 기록영화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는 남북한을 통틀어 최초의 국제영화상 수상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철훈 지음, 선인, 564쪽, 4만8000원
봉준호 박찬욱 등 한국 영화감독들이 세계 유명 영화상을 휩쓰는 시대가 됐다. 한국인 중에서 국제영화제에서 제일 처음 수상한 이는 누구일까. 언론인 출신 시인이자 소설가로 ‘오빠 이상 누이 옥희’ ‘백석을 찾아서’ ‘내가 만난 손창섭’ 등 다수의 평전을 쓴 정철훈은 ‘정준채’라는 낯선 이름을 불러낸다.
“(정준채는) 1949년 소련의 북조선 지원을 필름에 담은 기록영화 ‘친선의 노래’를 제작했고 이 영화로 1950년 제5차 체코슬로바키아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축전에서 기록영화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는 남북한을 통틀어 최초의 국제영화상 수상이다.”
정철훈이 쓴 ‘정준채 평전’은 우리 영화사에서 잊힌 인물을 되살려낸다. 광주 명문가 출신의 정준채는 일본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귀국한 뒤 2년 남짓 남한에서 활동했다. 29세 젊은 나이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 서기장으로 선출된 그는 1946년 기록영화 촬영차 입북했다가 눌러앉았다.
정준채가 연출한 ‘1950년 5·1절’(1950년)은 북한 최초의 기록영화 부문 컬러영화이고, 최승희 주연의 무용극 ‘사도성의 이야기’(1956년)는 북한 최초의 극예술영화 부문 컬러영화다. 북한 영화의 대부였던 정준채는 1960년 이후 북한의 모든 문헌에서 사라졌다. 이런 배경에는 김일성 정권에 대한 입장이 달랐던 예술가 형제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정준채의 생애는 윤심덕과 함께 현해탄에서 동반 투신한 김우진(고모부),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받고 카자흐스탄에 정착했던 천재 음악가 정추(동생), 세계적인 발레리노 백성규(친구), 무용가 최승희 등과도 얽혀 있다. 500쪽이 훌쩍 넘는 이 책은 한국 영화 초기사를 풍성하게 보여준다. 특히 정준채가 보낸 수십 통의 편지 속에서 드러나는 북한 영화 초창기 장면들은 귀한 자료다.
김남중 선임기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마 합법화’ 태국서…3살 여아 ‘대마쿠키’ 먹고 병원행
- 넷플릭스 1위 작품에 욱일기…서경덕 “OTT서 퇴출해야”
- 새끼고양이 죽여 사체 매단 30대 검거…묵비권 행사
- EXID 하니, ‘열살 연상’ 정신과 의사 양재웅과 열애
- 김건희 ‘팔 흔들흔들’…박지원 “하도 뭐라 해 주눅든듯”
- 유나양 가족 아우디는 월 90만원 리스… 기어는 ‘P’
- “30초간 눈 안보여” 워터밤 ‘물총테러’ 분노한 걸그룹
- 현금다발에 목적지 변경… ‘보이스피싱’ 직감한 택시
- 최악 가뭄 이탈리아, 미용실서 머리 두 번 감기면 과태료
- 마요네즈 많다고…美 샌드위치 가게 점원, 총격에 숨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