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과지 우자불급야'..리더십의 완성은 이 지점

2022. 6. 3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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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교수의 '뉴노멀 시대, 직장인 리더십 키우기'

“이 친구 어때? 저 친구는?”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의 평판을 묻는 질문이 쏟아진다. “능력도 좋고 똑똑하기는 한데, 좀 싸가지가 없는 편”이라는 평가를 받는 A, “일하는 게 좀 투박하고 덜렁대기는 하는데, 싸가지 있는 친구”라는 평을 받는 B. A는 능력이 있다는 얘기고 B는 부족하다는 것인데 어느 쪽이 좋은 평가일까. 아니 당신은 누구와 일하고 싶은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그의 저서 ‘외교(Diplomacy)’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지적이지 않은 사람(Unintellectual)’으로 묘사했다. 자신이 만나본 공화당 리더 중에서 국제정치에 대한 지식이 가장 낮은 사람이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지적이지 않은 사람이 캘리포니아를 어떻게 8년 동안 다스렸고 이제는 워싱턴을 7년 가까이 다스리고 있는지” 역사가들이 풀어야 할 퍼즐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아마도 국제정치에 그토록 지적이지 않은 레이건 대통령이 냉전을 끝내는 거대한 업적을 일궈냈다는 역설적 해석일 것이다. “리더는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훌륭한 일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레이건 대통령의 말이다.

전문성과 싸가지. 리더십을 구성하는 첫 요소가 전문성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전문성을 갖추면 프로라는 소리를 들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가 훌륭한 리더로도 불릴 수 있을까. 어느 조직에나 중요하다고 하는 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긴급히 추진돼야 할 업무고, 또 하나는 모두가 하기 싫어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진정한 리더라면 후자에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인공지능(AI) 시대. 모르는 게 있으면 손가락을 두들겨 몇 초 안에 답을 얻을 수 있다. 과거에는 많이 아는 사람을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 부르며 높이 평가했다. 주판 급수가 취직을 결정하고 암기와 지식이 능력인 시대였다. 그런데 이제는 지하철에서도 누구나 백과사전을 들고 쳐다본다. 백과사전뿐인가. AI 앞에서 인간이 자랑하던 능력은 초라해질 뿐이다.

2030년에는 지금 존재하는 직업의 반 이상이 AI에 의해 대체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 지 오래다. 당신의 업무가 사라진다면 그때부터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 당신의 경쟁력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AI가 ‘아직은’ 하지 못하는 것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사랑, 희생, 슬픔, 분노, 실수, 시기, 욕망, 집착, 그리고 후회.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것들이지만 이들이 인류 역사를 이끌어왔다. 여기서 우정과 믿음, 의리가 나오고 공감과 나눔, 배려가 나온다. 비로소 네트워킹과 협력이 가능해지고 팀워크도 만들어진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챙기는 것은 마음 열기에 달린, 누구나 할 수 있는 인간만의 능력이다.

과거 리더십센터 소장을 맡고 있을 때 리더십을 어떻게 우리말로 번역할까 고민해봤다. 단어 뜻 그대로 옮기자면 지도력이 가장 가까운 단어지만 리더십에 내포된 의미를 모두 전달하기에는 무리다. 통솔력이나 장악력도 마찬가지고 지휘력도 리더십에 담긴 의미를 풀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남들 앞에 서서 이끌거나 압도하는 것이 반드시 리더십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력 개발 관련 일을 하면서 만난 기업 인사담당자나 CEO들은 한결같이 “대학에서 제발 좀 가르쳐서 내보내달라”고 한 것이 있다. 일단 회사에 들어오면 전공이 뭐든, 성적이 어떻든 처음부터 업무를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싸가지는 가르치기 힘들다는 것이다. 조직이 커지고 업무가 복잡해질수록 함께 부대껴야 하는 시간도 늘어나니, 인성을 키워달라는 주문이었다. 싸가지 학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싸가지론이라는 과목도 없는데 어떻게 가르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온라인가나다’에 따르면 싸가지는 ‘싹수’라는 말의 사투리다. 어떤 일이나 사람이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를 뜻한다.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잘되기에는 이미 글렀다는 의미로 쓰인다. 싹수와 비슷한 의미로 떡잎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한다.

“그 친구 괜찮아” “일 잘해” “훌륭하지”라는 말은 ‘능력+싸가지’를 의미한다. 둘 다 갖췄다는 의미다. 반면 싸가지 없다는 말은 예의나 매너가 부족하다는 지적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싸가지 없다는 의미가 꼭 능력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오히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일을 해내는 능력(Get Things Done)’은 전문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ckleton)은 리더십을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한다. 영국 해군 상선대 소속으로 1901년 첫 남극탐험에 나선 뒤 1922년까지 네 차례 남극탐험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한 인물이다. 결국 네 번째 원정을 떠났다가 사우스조지아 섬에서 사망하고 만다. 실패한 탐험가. 그런데 그의 실패에는 항상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의 리더십 얘기는 배가 난파돼 세 번째 탐험이 실패한 순간부터 시작된다. 남극의 한파를 이겨내며 끝도 모를 행진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 질이 좋은 슬리핑백과 일반 슬리핑백, 호텔로 말하자면 특실과 일반실을 나눠야 하는 상황이다. 몇 날 며칠이 될지 모르는데 누가 따뜻한 슬리핑백을 원하지 않으랴. 더구나 군 조직과 같은 탐험대에서 간부와 일반 선원 간에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했다.

하지만 섀클턴은 추첨으로 슬리핑백을 나누기로 한다. 모두가 추첨 결과에 이상한 기미를 알아차린다. 질이 좋은 슬리핑백은 모두 일반 선원에게, 그리고 간부에게는 보통 슬리핑백이 주어진 것이다. 대원들이 하나가 되면서 실패한 리더의 리더십이 성공을 거두는 계기가 마련되는 순간이었다.

딱히 티는 나지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나설 때 진정한 리더십이 완성된다. 군대에 가거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점점 어른이 돼가는 이유는 내키지 않는 일, 자기 맘대로라면 결코 안 할 일을 하나둘 해보는 경험을 쌓기 때문이다.

리더십을 구성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싸가지다. 인성이라는 의미지만 일상에서는 왠지 ‘싸가지’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쓴다. 능력과 상관없이 싸가지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 의미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얘기해야 할 때일수록 겸손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고개 돌리거나 남에게 미루지 말고 나서는 것. 상황에 따라 능력의 과시와 겸손을 조화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가리켜 중용(中庸)에서는 ‘지자과지 우자불급야(知者過之 愚者不及也)’라 이른다. 능력만 앞세우는 자들은 지나쳐버리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아예 못 미치고 마는 바로 그 포인트. 비로소 리더십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궂은일은 하지 않고 과실만 쏙쏙 따먹는 사람은 아무도 리더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윗사람보다 MZ세대 신참들이 더 무섭다는 요즘 직장생활. 꼰대라는 말 듣기 싫어 후배들에게 잔소리도 안 하고 이런저런 일을 시키지도 않는 상사를 대신해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챙기는 사람. 선배에게 자기가 하겠노라고 나서는 사람. 굳이 칭찬하지 않아도 툭 치는 어깨 위로 신뢰가 쌓인다. 아무도 안 보는 것 같지만 그는 그렇게 하루하루 리더로 발돋움한다.

[김용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5호 (2022.06.29~2022.07.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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