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9세 여성 7.1% "낙태 경험"..이중 8%는 불법 약물 사용
지난해 진행한 인공임신중절(낙태) 실태 조사에서 낙태 경험을 한 여성의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이후 첫 실태조사다.
15~49세 여성 7.1%가 "낙태 경험"
3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발표한 2021년 인공임신중절(낙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15~49세 여성 8500명 중 7.1%(606명)가 낙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이후 3년 만에 이뤄진 이번 조사는 임신·출산 평균 연령 상승을 반영해 기존 조사(만 15~44세)보다 대상 연령을 확대해 온라인 설문으로 진행했다. 이전 기준인 만 15~44세로 좁혀 보면, 낙태를 경험한 여성은 조사 대상의 5.2% 수준이다. 2018년 조사 당시 7.6%보다 낮아진 수치다.
보사연에 따르면, 만 15~44세 여성 1000명당 낙태 건수를 나타내는 '인공임신중절률'은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다. 2020년 낙태 추정 건수는 3만2063건으로, 인공임신중절률은 3.3‰(천분율)이다. 여성 인구 1000명당으로 환산하면 3.3건의 낙태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4년 전(1000명당 6.9건)보다 절반 이상 떨어졌다.
2018년 이후 수치는 소폭 증가했다.(2.3‰(2018)→2.7‰(2019)→3.3‰(2020)) 이를 두고 보사연은 당장 낙태를 하는 비율이 늘어났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변수정 박사(보사연 인구정책연구실 연구위원)는 "2018년 이후 2019년, 2020년을 넘어가면서 소폭 증가한 것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코로나19 등의 사회적인 분위기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정확한 배경과 영향은 2021년 자료 등 지속적인 추이를 봐야 하는 만큼 현시점에선 감소 추세에서 소폭 변동이 있다는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번 조사가 헌재 판결 이후 대체 입법 시한이었던 2020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낙태죄가 폐지된 2021년 이후의 상황이 반영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피임 인지율 및 실천율 증가, 평균 낙태 횟수 감소, 만 15~44세 여성 집단의 인구수 감소 등을 낙태 감소세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번 조사에서 낙태 당시 평균 연령은 만 28.5세로 나타났다. 혼인 상태는 절반 이상(50.8%)이 미혼 상태였다. 낙태를 고려하게 된 주된 이유로는 '학업·직장 등 사회 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35.5%) '고용 불안정 등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34.0%) '자녀 계획 때문에'(29.0%)가 가장 높게 나왔다.
3년째 낙태 ‘무법(無法)’…낙태 여성 약 8%가 불법 약물 사용
이번 조사는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첫 실태 조사다. 변수정 박사는 "낙태 규모는 전반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의 17.2%는 낙태를 하면서 위기 임신 상황에 놓여있다"고 했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현상과 맞물려 생각해 본다면, 여전히 낙태를 선택하는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3년 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정부와 국회가 논쟁적 이슈에 손을 놓으면서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았다. 헌재는 당시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리면서, 보완 입법 시한을 2020년 12월 31일로 뒀다. 하지만 ‘임신 14주까지 낙태 전면 허용, 15~24주 조건부 허용, 25주부터 처벌’하는 정부의 개정안은 지금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입법 공백의 상황에서 2021년 1월 1일 0시부터 낙태한 여성과 이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법의 효력이 상실됐다.
범죄는 아닌 상황이 됐지만, 여전히 낙태는 음지에서 이뤄진다. 이번 조사에서 낙태 당시 여성들이 가장 절실했던 정보는 낙태에 드는 비용, 의료기관, 방법·부작용·후유증 등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정보를 가장 많이 습득하는 경로는 인터넷 게시물이나 온라인(46.9%)이 가장 많았다. 또 현재 국내에선 낙태약(미프진)을 사용할 수 없지만 낙태 경험자의 7.7%는 약물을 사용했다고 응답했다. 나머지는 낙태 수술을 받았다. 약물을 사용해 낙태한 이들의 경우 2018년 조사보다 확연히 낙태 비용이 증가했다. 만 15~44세 기준으로 '10만 원 미만'은 줄었고 (36.3%→30.0%), '50만 원 이상'(9.6%→20.0%)은 크게 늘었다. 대부분 낙태약과 동일 성분의 약을 내과에서 편법으로 처방 받거나 해외에서 불법 유통되는 것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정확한 정보들로 신체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침해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영준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장은 "안전한 낙태 환경 조성을 위해 정책적인 요구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입법 공백기에 여성건강권 보호를 위해 낙태 관련 의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다"면서 "의료 행위라 정부 차원에서 홍보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정보 접근성 측면에서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8월 3만원가량의 낙태 관련 상담 수가를 신설했다. 낙태 관련 믿을 만한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낙태 전후 주의사항, 부작용 등 주요 정보를 전문 의료진으로부터 들을 수 있게끔 하자는 취지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이 연방 차원의 낙태권 보장을 폐기하는 결정이 나왔다. 미국 개별 주(州)에서 소송전이 잇따르고, 국내에서는 미국의 결정이 낙태 관련 입법 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최 과장은 "미국과 우리나라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은 수정헌법에서 낙태를 기본권으로 다루느냐의 다툼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낙태가 기본권임을 전제로 하면서도 생명권 보호와의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나가라는 결정"이라고 첨언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9일(현지시간) 미국의 낙태권 폐기 결정에 대해 "낙태를 제한하면 여성과 소녀들을 위험한 낙태로 몰아가 여러 합병증, 심지어 죽음까지 초래할 것"이라며 "수많은 여성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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