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임의 산출식..경제 불확실성 증폭하는 최저임금 결정

김기찬 2022. 6. 30. 14:3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8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9620원으로 결정됐다. 박준식 위원장(왼쪽)과 근로자 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인사한 뒤 돌아서고 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위원회(위원장 박준식)는 29일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으로 시급 9620원을 심의 의결했다. 올해(9160원)보다 5%(460원) 인상됐다. 노사가 모두 불만이다.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경영계는 "한계상황으로 몰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간에 온도 차가 있지만,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임금 감소를 주장한다.

한데 올해는 인상액에 대해서만 불만을 표출하는 게 아니다. 더 큰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건 따로 있다. 결정 기준이다. 특히 경영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최저임금위 사용자 위원)는 "문재인 정부 때 결정 기준이 공익위원에 의해 오락가락했다"며 "타당한 산출식이면 받아들이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임의적이고 즉흥적인 항목이 산출식에 삽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익위원이 최저임금 산출식을 마음대로 주무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전 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중위임금을 팽개치고 느닷없이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것도 8시간 풀타임 정규직의 평균임금을 채택했다. 상위 15% 안팎에 해당하는 고임금을 기준점으로 삼은 것이다. 최저임금이 아니라 최대임금을 노린 꼴이다. 여기에 협상에 참여한 노동계에 고마운 마음을 담은 '노동계 배려분'이란 희한한 기준까지 만들어 산입했다. 그렇게 10.9%를 올렸다.

지난해에는 경제성장률이 4% 달할 것이라는 예측치를 동원해 최저임금(올해 적용)을 5.1% 올렸다.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짊어져야 했다.

이 때문에 경영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는 과정에선 공익위원이 자성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여지없이 무너졌다. 따지고 보면 지난해 잘못된 예측으로 5.1% 인상한 것이 경제성장률 전망은 틀렸지만, 결과적으로 올해 물가상승분을 선(先)반영한 모양새가 됐다. 그런데도 공익위원은 올해 물가상승분이란 기준을 새로 들고 나와 반영했다. 물가상승분을 이중 반영하는 오류를 낳은 셈이다. 여기에 지난해 결정 기준으로 내세웠던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또 들이밀었다. 점을 치듯 예측치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꼴이다.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근로자 위원)은 공익위원이 낸 산출식에 따라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데 대해 "2년 연속 이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고무줄 기준은 최저임금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국가 기관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오명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측 가능성이 없으면 현장 수용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업에 지불능력이 없어 생기는 최저임금 미만율(급여가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근로자 비율)이 일부 업종에선 40%를 넘어서는 등 계속 올라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헛도는 법정 임금이 노동시장을 옥죈다는 얘기다.

더욱이 정부가 경제정책방향에서 밝힌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와 같은 정책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임금은 시장에서, 취약계층의 소득은 국가가 보전하며 복지의 영역으로 흡수하겠다는 정부의 경제정책 구상을 흐트러뜨리는 상황이 연출됐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자는 "인상률을 정해놓고 끼워 맞추기식 기준을 동원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며 "국가가 정하는 임금이란 점을 고려하면 기준이 명확해야 시장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