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서 "보편적 가치" 외친 尹..中 언급 없이 中 아픈 곳 찔렀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서 ‘보편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나토와의 협력 및 한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극히 당위적인 내용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중국이 못내 아파할 수밖에 없는 핵심적 코드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윤 대통령이 이번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서 중국을 직접 거명해 문제 삼지 않으면서도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연대에 동참할 뜻을 명확히 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북한의 무모한 핵‧미사일 개발 의지보다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의지가 더 강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유와 평화는 국제사회와의 연대에 의해 보장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취임사에서 한 것(“평화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제사회와의 연대에 의해 보장된다”)과 꼭 같은 표현을 써 이런 원칙이 곧 신념이라는 점을 드러냈다.
나토 연설에서 한 발언은 북핵 위협 대응에 이어지는 것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같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의 책임성을 염두에 둔 듯한 내용도 언급했다. “새로운 경쟁과 갈등 구도가 형성되는 가운데 우리가 지켜온 보편적 가치가 부정되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면서다.
이와 관련,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초기부터 ‘가치 외교’를 외교 기조로 삼으며 보편적 가치라는 대원칙을 내세워 중국의 규범 교란 행위에 대응하겠다는 방향을 정했다. 보편 타당성을 바탕으로 한 ‘중국 때리기’인 셈인데, 윤 대통령의 나토 연설 역시 맥락이 다르지 않다.
특히 윤 대통령은 처음으로 중국이 가하는 ‘구조적 위협’을 명시한 나토의 신전략개념도 언급했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단일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 안보 위협에 직면했다. 나토의 신전략 개념에 반영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나토 차원의 관심도 이런 문제의식을 보여준다”면서다. 또 “대한민국이 역량을 갖춘 국가로서 더 큰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도 다짐했다.
실제 나토는 새로 채택한 전략개념에서 “우리는 지역을 넘나드는 도전에 맞서고 안보 이익을 공유하기 위해 인도‧태평양의 파트너들과 대화와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도전해오는 주체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을 지목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관계자는 “우리가 이번 방문을 통해 달성하려 한 가치와 규범에 기반한 연대는 단순히 자유민주주의 등에 대한 공감대 수준을 넘어선다”며 “나토는 신전략개념을 들고 나왔고, 초청국으로 참여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네 나라는 새로운 인‧태 전략을 구상 중이다. 그 중심에는 중국에 대한 고민과 여러 딜레마가 섞여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공감대 형성을 넘어 규범 파괴 행위로 인한 실질적 위협과 피해에 함께 대응하는 게 핵심인 셈이다.
현재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 진영과 중국 사이의 가장 뜨거운 경쟁 분야인 반도체 기술과 공급망 등 신흥 안보와 관련해서도 윤 대통령은 “(나토와)긴밀한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마드리드에 오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개념 중 하나가 신흥 안보 협력 강화”라며 “안보 문제가 포괄 안보 문제로 확대되고 있고, 신흥 안보에서 한국이 가진 초격차 기술을 활용해 나토, 유럽연합(EU) 회원국과 협력할 성공적인 첫 단추를 끼웠다”고 자평했다.
윤 정부는 이미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동맹을 첨단기술 동맹으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번 나토 정상회의 참여를 통해 협력의 대상을 서방 자유주의 국가들로 확대한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기술, 차세대 배터리 기술 등에서 한국형 모델의 우수함이 강조됐다며 “우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양자회담에 응했던 거의 모든 나라들이 한국과의 협력을 타진하고 후속회담을 제의했다”고 전했다.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4년 9개월 만에 열린 29일 한‧미‧일 정상회의도 북핵 공조를 넘어서는 함의가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미‧일 안보 협력이 오늘로써 복원됐다”고 선언했고, 백악관은 “역사적 회담”이라고 표현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회의에서 북한의 7차 핵실험시 ‘3국 공동훈련’ 필요성을 제의하는 등 한발 앞서 나가기도 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의 주된 목적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대한 대응이지만, 3국이 이번 정상회의에 이렇게까지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 건 단순히 북한만 타깃이 아니라 중국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3국 안보 협력을 복원해 동북아에서 중국의 세력 확장에 맞서는 핵심 기제로 활용하자는 구상을 바이든 행정부는 초기부터 해왔다. 윤 대통령도 회의 모두발언에서 “한‧미‧일 협력이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안보 협력의 영역을 북핵 대응으로만 국한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중국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면서도 “한‧미‧일 정상회의를 포함해 동맹국의 모든 연설에는 각국의 책임 있는 역할과 국제사회의 보편타당한 가치와 규범, 합의를 존중하는 가운데 국제관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한편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는 나토의 신전략개념을 비판하며 한국을 향해서도 ‘장기적 이익의 관점’에서 미‧중과의 관계를 정립하라고 뼈있는 당부를 했다.
그는 30일 한국정치학회 등이 고려대에서 주최한 한‧중 수교 30주년 학술행사에서 “나토는 중국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와 도발적 언행을 중단하고 아시아와 전 세계를 더럽히지 말라고 권고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편집증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했다.
싱 대사는 중국이 협력과 상생의 관계를 지향한다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은 중국의 전략적 협력 파트너이자 미국 동맹이라는 점에서 미‧중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건설적, 장기적 이익의 관점에서 출발해 바람직한 한‧미 및 한‧중 관계를 정립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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