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면전에 대고 "당신 잘못".. 해고자만 누리는 '특권'
[이훈 기자]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세종호텔은 별이 4개인 일명 '특급호텔'이다. 명동역 10번 출구로 나와서 30초면 도착 가능한 초역세권에 있고, 가성비가 좋은 호텔로도 유명하다. 이름에서 많이들 추측하듯 세종대학교, 세종사이버대학교와 같은 재단인 대양학원이 운영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세종호텔은 영어시험을 기준으로 셰프와 주방 보조 등을 해고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회사 측은 식음료파트 직원들 포함 3년간 쌓인 인사고과 성적과 영어시험, 재산 보유내역 등을 회사에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직원들의 증언과 언론보도 등으로 이는 사실로 밝혀졌다.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세종호텔 지부 노동조합원들은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기준이라면서 해당 과정을 모두 거부했고, 이후 15명 조합원이 해고됐다(관련 기사: 직장폐쇄 앞둔 노동자들의 간담회... 진지한 현장 녹인 한 마디 http://omn.kr/1wf7r). 이들 중 호텔 내 이탈리안 식당에서 쭉 일해온 15년차 호텔리어 이주형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목요문화제에 이주형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다. 호텔 정문 앞에서 매일 열리는 목요문화제에 이주형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다. |
ⓒ 세종호텔 노동조합 |
2007년 6월, 주형씨는 24살의 나이로 세종호텔에 입사했다. 당시 주형씨는 대학교에서 관광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한 달의 실습을 해야만 졸업이 가능했다. 우연히 들어오게 된 세종호텔에서 실습을 하게 됐는데 사업장은 이탈리아 식당 '베르디'였다. 실습생은 주문이나 서빙을 받을 수 없었다. 주형씨 역시 기물을 닦는 일부터 시작했다.
한 달은 쏜살같이 달려갔고 곧 학교로 복귀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그런데 재치있고 일도 잘하는 주형씨를 직원들은 놓치기 아까웠다. 그래서 주형씨에게 술도 사주고 밥도 사주면서 "학교 가기 싫지? 싫잖아~ 재직증명서 써줄 테니까 그걸로 학점마저 채우고 여기서 쭉 일하자"라고 꾀기 시작했다.
주형씨는 당시에 다른 꿈이 있었기에 여러 번 거절했으나,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결국은 자신을 원하는 곳에 남기로 했다. 그렇게 2007년 9월, 주형씨는 정식으로 입사한다. 입사하던 때는 상상도 못했지만, 그렇게 주형씨를 데려간 베르디 지배인은 주형씨를 절대로 놔주지 않았다. 주형씨는 15년의 호텔 생활동안 단 한 번도 이동하지 않고 쭉 이탈리안 식당 베르디에서 일하게 된다.
과도한 업무량, 터질 거 같은 머리
베르디는 이탈리안 식당이라서 파스타, 스테이크, 샐러드, 피자 등의 음식을 팔았다. 서빙과 주문, 계산 등이 주요한 업무였던 주형씨는 모든 메뉴의 재료와 간단한 조리법을 모두 알아야 했다. 파스타의 면이 어떤 종류인지, 버섯은 어떤 버섯이 들어가는지, 고기가 안 들어가는 메뉴는 무엇인지, 샐러드 소스는 어떤 재료로 만드는 건지 모두 외워서 고객에게 설명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주형씨가 있던 팀은 룸서비스, 베이커리, 바(bar), 커피숍까지 모두 담당했다. 룸서비스 주문을 받을 때는 달걀은 몇 분이나 삶길 바라는지, 못 먹는 재료는 없는지 모두 체크해야 했다. 맥주, 위스키, 와인 등 약 1000가지의 주류가 전부 몇 년 산인지 어디 품종인지 어떤 음식과 잘 어울리는지 모두 외워야 했다. 칵테일도 들어가는 술이 어떤 종류인지 도수는 얼마나 높은지 외워서 설명했다. 베이커리에서 파는 수십가지의 빵도 모두 외워서 고객에서 재료, 만드는 방법을 설명해야 했다. 수십 종류의 커피도 마찬가지였다. 머리가 터질 거 같았다.
주형씨가 복잡한 일을 전부 해내면서 고객 응대도 잘하는 걸 회사는 놓치지 않았다. 선배들이 희망퇴직으로 나가게 될 때마다 그 업무를 주형씨에게 자연스럽게 떠넘겼다. 주형씨가 3년차가 됐을 때, 출고 담당자가 회사를 나가게 되면서 출고하는 법을 배웠다. 창고를 보면서 어떤 비품이 얼마큼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체크하는 일이었다. 대충 몇 박스, 몇 통이라고 적으면 될 거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설탕은 몇 그램 남았는지 남은 생맥주가 몇 잔이나 나올지 칵테일에 들어가는 술은 종류별로 몇 온스가 남았는지 세세하게 체크했다. 한번 할 때마다 일주일은 야근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주형씨가 4년차가 됐을 때는 구매 담당자가 회사를 나가면서 주형씨가 구매도 맡게 됐다.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지, 양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해서 적절한 양으로 주문을 넣는 일이었다. 주형씨가 5년차일 때는 기물 담당자가 나가면서 주형씨가 기물 관리까지도 맡게 됐다. 컵, 젓가락, 숟가락, 나이프, 포크, 접시가 모두 수량이 얼마나 되는지, 더 필요한 건 없는지 확인하고 구매 담당자에게 넘기는 일이었다. 물론 구매 담당자도 주형씨였기 때문에 주형씨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징도 치고 꽹과리까지 쳐야 하는 판국이었다.
그렇게 일을 할 줄 아는 선배들은 하나둘 떠났고 그 자리엔 계약직 신입들이 들어왔다. 혹은 아예 인원이 채워지지 않았다. 신입들은 일을 할 줄 모르는 게 당연하기에,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 또한 교육할 수 있는 사람이 주형씨뿐이었다.
가끔 주임이나 부지배인이 새로 들어오기도 했지만 베르디에서 일한 건 주형씨가 훨씬 오래됐기에 그들도 주형씨에게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직급이 높은 사람도 교육하고 신입도 교육하는 까다로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형씨는 너스레도 떨고 농담도 하면서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상사에게 알려줄 땐 너무 '가르치려 드는' 느낌이 들지 않게 섬세했고 신입이 실수했을 때도 혼내거나 화내지 않고 차근차근 알려줬다.
출고, 구매, 기물관리, 교육은 기존에 1인 1역할로 총 4명이 맡았던 역할이었다. 하지만 주형씨는 혼자서 다 해내야 했다. 사람이 없으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별 수 없었다. 정신없이 일하던 시간 속에서 회사는 점점 사람을 줄였고, 약 30명이었던 베르디 직원은 2명까지 줄게 된다.
▲ 구호를 외치는 이주형 조합원 세종호텔 정리해고 촉구를 위한 50리길 행진에서 이주형 조합원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세종호텔 노동조합 |
2011년 복수노조법이 시행되자, 새로운 노조가 생겼다. 세종연합노동조합(연합노조)라는 이름의, 이른바 '사측노조'였다. 많은 조합원들이 세종노조를 탈퇴하고 연합노조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흐름 속에서 남들이 넘어가길래 주형씨도 연합노조로 같이 넘어갔다. 그런데 막상 연합노조에 가보니, 노동조합에 대해 잘 모르는 주형씨가 보기에도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
친한 직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고민 끝에 주형씨까지 3명이 연합노조원들을 세종노조로 넘어가게 조직하기로 했다. 그리고 친한 지배인 한 명에게 부탁했다. 지배인이 앞장서는 형태로 세종노조로 넘어가면 눈총을 받는 게 지배인일 테니 부담도 조금 덜 할 거 같았다. 그렇게 조직을 시작했다. 중간에 회사에 소문도 났지만, 조직해봤자 5명 이하일 거라고 생각했던 회사는 주형씨를 딱히 건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주형씨는 연합노조의 절반 이상인 약 60명을 조직해냈다. 그들은 한날 한시에 다같이 탈퇴하고 세종노조에 가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세종노조 가입을 하기로 한 날, 앞장서기로 한 지배인이 "정말 미안한데 나 못 하겠어"라고 했다. 충격이었다. 새롭게 앞장설 사람을 찾아야 했지만, 주형씨는 도저히 회사의 화살을 다 맞으라고 한 명을 앞세울 수가 없었다. 그나마 지배인이 받으면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 짠 전략이었는데, 다른 이에게 갑자기 떠넘길 수는 없었다. 당황스럽고 화도 났다. 주형씨는 결국 미리 받아뒀던 60명의 탈퇴서, 가입서를 전부 찢어버렸다. 그리고 함께 조직했던 2명까지 셋이서만 세종노조로 옮겼다.
그때부터 주형씨를 향한 괴롭힘이 시작됐다. 아직 할 때도 안 된 엄청난 업무량의 출고, 구매 업무가 갑자기 떨어졌다. 연합노조 측은 틈만 나면 주형씨를 잡아두고 "세종노조 탈퇴 좀 해라"고 회유했다. 일부러 퇴근 직전에 사무실로 불러서 1시간, 2시간씩 세종노조에 남아있으면 계속 힘들 거라고, 자기도 이러고 싶지 않다고, 연합노조 가입까진 말 안 할 테니 세종노조 탈퇴만 하라고 했다.
결국 주형씨는 세종노조에 탈퇴서를 냈다. "그래도 노조비는 계속 낼게요. 이거라도 계속 하고 싶어요"라고 비밀리에 말하며 노조비로 마음을 보탰다. 이후 주형씨는 무노조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주형씨의 완강하고 단호한 거절 때문에 연합노조도 쉽게 가입서를 내밀진 못했다.
2021년이 되자, 회사는 희망퇴직을 3차까지 받으며 사람들을 압박했다. 많은 사람이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나갔다. 그런데 그 와중에 회사는 정리해고까지 단행하겠다고 말했다. 화난 주형씨는 또 다시 사람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세종노조로 넘어가서 함께 싸우자고, 우리가 다수가 되면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탁월한 조직력은 시간이 지났어도 녹슬지 않았고 세종노조를 과반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회사에 새로운 노조가 생겨났고 어떤 노조에도 소속돼 있지 않았던 관리자들이 가입하는 일이 벌어졌다. 회사는 "어떤 노조든 다른 2개의 노조원을 합친 것보다 숫자가 많아야 교섭창구로 인정합니다"라는 태도를 취했다. 회사의 '꼼수'라고 판단해 분노한 주형씨는 또다시 조직에 나섰다. 결국 주형씨는 총 21명을 조직해냈고 세종노조는 2개의 '사측노조'를 합친 것보다 조합원들이 많아졌다.
▲ 세종호텔 앞 목요문화제에서 발언 중인 이주형 조합원 |
ⓒ 세종호텔 노동조합 |
호텔은 결국 조합원들을 모두 해고시켰다. 하지만 주형씨는 미련없이 당당하다. 주형씨는 "내가 가진 비굴함은 호텔에서 나올 때 전부 두고 왔어. 지금은 당당함만 남았어"라고 말한다.
해고자에게 단 하나의 특권이 있다면, 그것은 나 자신으로서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 상사, 사장, 회장을 만나더라도 고개 똑바로 들고 '당신은 잘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회사를 망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형씨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동지들에게 말한다.
"당당하게, 자신 있게, 세게 회사랑 붙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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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세종호텔 노동조합 인스타그램에도 놀러오세요! @sejonghotel_u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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