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뽕'먹인 뒤 성폭행 의심.. '소변 증거' 확보부터

이해림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2. 6. 30. 08:59 수정 2022. 6. 3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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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정약 GHB, 1~4시간이면 소변으로 배출
피해 의심되면 즉시 해바라기센터 연락.. 소변 검사를
피해 입증 쉽지 않은 경우도.. 개인 안전 지켜야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 피해가 의심될 경우 최대한 빨리 해바라기 센터를 방문해 증거를 채취해야 한다./사진=조선일보DB
대한민국은 ‘마약 청정국’이란 말도 옛말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하면 ‘약물에 의한 성범죄 의뢰 사건’이 2017년 1274건에서 2021년 2538건으로 늘었다. 이에 맞설 사회적 채비는 더디기만 하다. 약물을 사용한 성범죄 실태가 어떠한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피해자를 위한 지침도 미비하긴 마찬가지다. 약물을 사용한 성범죄 피해가 의심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는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

◇GHB·GBL 이용 성범죄, 빠른 소변 검사로 물증 잡아야
소위 ‘물뽕’이라 불리는 감마하이드록시낙산(GHB)은 진정·수면 효과가 있는 항정신성약물이다. 무색무취인데다 음료에 타면 맛으로 구분하기도 어려워, 자신도 모르는 새 먹고 정신을 잃을 수 있다. 깨어나도 정신을 잃은 동안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복용 후 1~4시간이면 체내에서 분해돼 소변으로 배출된다. 성범죄에 악용되는 이유다. 몸 속에 들어가면 GHB로 전환되는 감마부티로락톤(GBL)이 대신 사용되기도 한다.

GHB·GBL를 이용한 성범죄는 피해 입증이 어렵다. 약물을 사용한 성폭력 피해를 입증하려면 소변이나 혈액 검사에서 약물이 검출돼야 한다. 정황만 가지고는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려워서다. 의사로서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피해를 입증하기 힘들다 보니 지금껏 성범죄에 사용된 GHB가 검출된 것은 1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원치 않은 성적 접촉이 일어난 이후에 의식을 잃었다면, 해바라기 센터에서는 일단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증거를 채취한다. 의심이 드는 즉시 센터를 방문해야 한다. 서울대병원 서울해바라기센터 진서희 의료지원팀장은 “피해 사건 발생에서 증거물 채취까지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검출률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채취한 소변은 증거 채택 어려워
법정에 제출된 증거물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어떠한 변형·조작·손실도 없이 ‘현장에서 채취한 상태 그대로’임이 인정돼야 한다. 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증거물 보관의 연속성(Chain of custody)’이다. 증거물은 수집→보관→감정을 거쳐 법정에 제출된다.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증거물의 상태가 이전 단계에서와 동일하단 보장이 필요하다. 증거물이 잠시의 빈틈도 없이 담당자의 관리 아래 있었는지 확인해서다.

‘해바라기센터 의료진’이 채취한 증거물은 ‘담당 경찰관’을 거쳐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전달됨으로써 연속성을 인정받는다. 그 때문에 해바라기센터 연계 병원이 아닌 곳에서 소변 검사를 받거나, 피해자가 자체적으로 받아온 소변은 증거물로서의 법적 효력이 떨어진다. 피해 사실이 의심된다면 파출소·경찰서부터 찾아야 한다. 경찰에 신고하면 바로 해바라기센터에 연계된다. 해바라기센터는 전국에 26곳이 있으며, 연중무휴 24시간 운영하니 센터에 직접 전화하는 방법도 있다. 포털사이트에 ‘서울경찰청 성폭력피해자 등 통합지원센터’를 검색하면, 서울경찰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전국 해바라기센터 전화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

◇증거 채취·감정·수사는 피해 사실 공유 최소화하며 진행돼
피해 사실은 증거 채취와 수사에 반드시 필요한 내용만 최소 인원에 한해 공유된다.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다. 해바라기센터에는 상담사, 여성 경찰, 의료진이 상주한다. 셋이 한 팀을 이뤄 피해자 지원에 나서는 구조다. 방문하면 상담사부터 만나 불안감을 다스리고 피해 상황을 간단히 진술한다. 이후 의료지원팀이 증거를 채취하고, 의료진과 피해자 간 인터뷰가 진행된다. 병원 진료도 받는다. 평상시에 병원을 갈 때와 마찬가지다. 어디가 불편한지 설명해야 의사도 진료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
채취한 증거는 국과수에서 분석한 후 수사 담당자에게만 전달된다. 진서희 의료지원팀장은 “증거물을 분석한 결과는 개인정보라 센터에도 통보되지 않는다”며 “분석 결과를 알고 싶은 피해자는 센터로 문의하면 담당 수사관에게 듣도록 안내한다”고 말했다.

◇법적 안전망 미흡…현재로선 사전 예방이 최선
약물 불법 유통 근절이 피해를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나, 아직 요원하다. GBL는 2022년 1월 임시마약류로 지정됐다. 매매를 알선하거나 사고파는 것은 물론이고 소지·관리만 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전자제품 제조에 사용되는 용제나 공업용 수지 원료 등 산업용으로 사용하는 GBL은 임시마약류에서 제외된다. 공업용 GBL을 빼돌려 성범죄에 악용할 위험이 여전하단 것이다.

GHB는 GBL보다도 처벌이 느슨하다. GHB가 속한 마약류 항정신성의약품은 중독성이 높고 의료·산업적 유용성이 낮은 순으로 ‘가’~‘라’목으로 나뉜다. GHB는 ‘라’목에 속한다. 산업적으로 쓰이는 데다 오남용 우려가 적단 이유다. ‘라’목은 소지·관리해도 징역이 5년 이하다. GBL를 소지·사용·운반·관리할 경우 징역 1년~10년에 처하는 것에 비하면 형량이 가볍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산업적으로 유통되는 GBL를 빼돌리지 못하게 유통 관리망을 만들어야 한다”며 “GHB는 최소 ‘가’목으로 올려 형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법적 안전망이 미흡한데다, 피해가 발생한 후 입증도 쉽지 않다. 현재로선 개인 차원에서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다. 피해는 음주 상황에서 자주 발생한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료는 마시지 않고, 잔을 자리에 둔 채 자리를 비우지 말아야 한다. 불가피하게 자리를 비웠다면 새 컵을 받아서 쓰는 게 안전하다. 피해가 의심되면 최대한 빨리 해바라기센터나 경찰을 찾아야 한다. 진서희 의료지원팀장은 “약물을 검출하기 위한 소변 검사가 진행되니 소변을 보지 말고, 몸을 씻지 않은 채로 오시라”며 “현장에 휴지나 속옷이 있을 경우 수집해 오시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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