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쉴 수 있다, 밥걱정 없이..상병수당

신승헌 2022. 6. 3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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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40대 남성 A씨는 몸이 아프다. 그런데 쉴 형편이 못된다. 오늘 하루 벌지 않으면 당장 내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픈 몸을 이끌고 일터에 계속 나가기도 망설여진다. 며칠 쉬면서 치료하면 나을 병을 큰 병으로 키우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A씨처럼 진퇴양난에 처한 국민을 돕기 위해 ‘상병수당’을 제도화하자는 목소리가 크다. 상병수당이란 근로자가 질병·부상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을 보전해주는 걸 말한다.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는데, 최소한 생계 걱정으로 적정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상병수당을 탄생시켰다. 상병수당은 ‘업무와 상관없이’ 질병에 걸리거나 부상을 당해도 건강보험 가입자라면 받을 수 있다. ‘휴업급여’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픽=이희정 디자이너

OECD가입국 중 韓·美만 없는 상병수당…코로나19 계기로 사회적 요구 커져 

우리나라는 2000년 1월1일 상병수당 제도를 도입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에도 상병수당을 대통령령으로 지급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상병수당 제도는 ‘네 글자’로만 존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 상병수당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국가는 미국과 우리나라뿐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상병수당에 대한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민단체와 학계에서 많은 목소리를 냈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을 수차례 발의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한국형 상병수당’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모두 제도 시행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막혀있던 물꼬를 튼 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공감대를 넓혔다. 상병수당 추진에 속도가 붙었다. 2020년 8월 복지부와 건보공단은 상병수당 추진 전담 조직을 구성했다.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한국형 상병수당 시범사업 예산 103억9000만원(전액 국고)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1월 한국형 상병수당 1단계 시점사업 추진계획을 확정·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4월11일 1단계 시범사업에 참여할 지자체를 선정한다. △경기 부천 △경북 포항(이상 모형1) △서울 종로 △충남 천안(이상 모형2) △경남 창원 △전남 순천(이상 모형3) 총 6곳이다.

마침내 첫 걸음을 떼다…7월4일부터 ‘하루 4만3960원’ 상병수당 지급

상병수당 1단계 시범사업은 다음달 4일(월) 시작한다. 시범사업 참여 지자체로 선정한 6개 지역 거주 취업자와 협력사업장 근로자에게는 앞으로 1년간 상병수당을 지급한다.

수당 지급기준은 모형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모형 1, 2는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상병수당 심사용 진단서를 토대로 건보공단이 심사·결정한 ‘근로활동불가일수’에 대해 상병수당을 준다. 모형3은 의료기관 입원 및 입원과 동일한 상병의 외래진료일수를 의미하는 ‘의료이용일수’마다 상병수당을 지급한다. 어느 경우든 하루치 상병수당은 2022년 최저임금의 60%인 4만3960원이다. 


업무 외 질병·부상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이 21일이라고 하자. 포항이나 부천에 거주하는 근로자에겐 21일 중 대기기간 7일을 뺀 14일치상병수당 61만5440원을 지급한다. 서울 종로 또는 천안에 사는 근로자에게는 대기기간 14일을 제외한 7일치 상병수당 30만7720원을 준다. 순천이나 창원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대기기간 3일을 뺀 의료이용일수(18일)에 해당하는상병수당 79만1280원을 관할 건보공단 지사에서 지급한다. 

근로활동불가일수를 심사·결정하는 데 필요한 진단서 발급비용(1만5000원)도 전액 지원한다. 진단서 발급 시 신청인이 부담한 후, 상병수당을 받을 때 건보공단에서 비용을 환급받는 식이다. 진단서 발급은 시범사업 지역 내에 있는 사업 참여 의료기관에서 하면 된다.

재정 부담 가치 충분…2025년 전국 시행 목표

보건복지부는 2025년에는 전국에 상병수당 제도를 적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3단계에 걸쳐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세 차례 시범사업을 통해 가장 바람직한 상병수당 지급 대상 규모, 평균 지원기간, 소요재정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이번 1단계 시범사업을 통해서는 질병 범위, 2단계에서는 보장수준·방법에 따른 정책효과를 분석한다. 3단계 시범사업에서는 최종 점검을 한다. 

상병수당 필요성을 설파해온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29일 1단계 시범사업에 대해 “대상자 선정 범위, 특히 ‘이 사람은 얼마 동안 케어가 필요하다’는 의료적 인증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거 같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상병수당 지급으로 인한 재정 부담과 관련해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병세가 악화하면 결국 노동손실과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면서 “사회적 총량으로 따지면 상병수당이 비용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보건복지부는 상병수당이 ‘아프면 쉴 수 있는 사회’의 초석을 놓기 위한 중요한 제도인 만큼 이번 시범사업이 안착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상병수당뿐만 아니라 아픈 근로자의 고용 안정 등을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신승헌 기자 ss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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