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허니문을 수습기간처럼 보내는 대통령

입력 2022. 6. 3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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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한국에서 대통령은 누구든 처음 해보는 일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막중한 직책의 무게를 생각하면 충분한 준비 없이 선뜻 나서기 어려운 자리다. 그럼에도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초기 실수를 최소화하며 대통령다움을 빨리 익히는 데에는 청와대 특유의 의전과 허니문 기간의 호의가 도움이 됐을 것이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며 내놓는 신상품들도 지지율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은 이때 업적이 될 만한 큰 숙제를 해치우곤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러한 관행에서 벗어나 있다. 그 원인이 집권 세력의 미숙함 때문인지 양극화된 진영정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통령 지지율은 지지부진하고 새 정부의 간판으로 세울 만한 대통령 프로젝트도 보이지 않는다. 용산 청사로의 이전과 출근길 도어스테핑, 유쾌한 소통 행보 등으로 새로운 유형의 개방적 리더십을 선보이고 있지만 이는 그저 스타일일 뿐이다.

지금 국민적 관심은 민생에 있고 정부는 정책으로 답해야 한다. 발등의 불은 인플레이션 압력과 금융시장 불안을 진정시키는 것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가 저성장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구조개혁에 착수하는 것이다. 지난달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3대 부문 개혁을 천명한 이후 부처별로 개혁과제들이 준비되고 있지만 치밀한 설계 없이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인식과 처방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첫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인력 부족 문제로 교육부를 질타하고 그다음 회의에선 공공기관의 구조조정을 촉구했지만 울림은 크지 않았다. 작은 사례를 하나 들어 보다 큰 구조개혁의 물꼬를 트려는 것으로 보이나 대통령의 지시를 구조화시키는 개혁의 설계도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대를 모았던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도 메뉴의 다양성에 비해 전체를 꿰어주는 정책 프레임이나 치밀한 개혁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나마 지난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이 구체적인 정책 패키지를 담고 있었지만 다음날 바로 프로그램 버그가 발생하는 바람에 오히려 뒷수습이 급하게 됐다.

문제의 근원은 대통령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일차적 관심은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 회복에 쏠려 있고 정치를 하게 된 동기도 거기서 찾았다. 이에 비해 한국사회가 당면한 저성장과 양극화, 사회갈등에 대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은 부족해 보인다. 지난 20여년 여러 정권이 이런저런 처방을 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던 한국 경제의 고질병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더욱이 지금은 국내외 정치경제 환경이 극도로 불확실해 국민적 지혜를 모으고 합심 협력을 도모해야 할 때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당선 이후 이런 정책 이슈에 대해 각계 원로나 전문가와 깊이 토론하며 지혜를 모으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별도의 대통령 직속 정책개혁자문기구를 가동할 생각도 아닌 듯하다. 대통령은 비서실과 내각에 포진한 엘리트 관료들의 실력만 믿고 개혁의 전권을 부여한 것으로 보이지만 기대대로 흘러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들은 현안을 챙기기도 정신이 없을 뿐 아니라 중장기 구조개혁을 끌어갈 담대한 개혁가가 되기도 어렵다.

정책개혁은 정책 개발과는 다르다. 더구나 대통령의 표현대로 구조개혁을 통한 도약 성장으로 가려면 경제산업 정책과 노동사회 정책 전반을 새로운 프레임으로 재구성하는 큰 구상이 필요하다. 부처별로 조금씩 밀린 숙제를 하는 식으로는 20여년 지속된 저성장과 양극화 구조를 타파할 수 없다. 호화로운 청사 몇 개 처분하고 과도한 성과급 좀 회수해 취약계층 복지에 쓴다고 공공부문이 개혁될 리 없다. 첨단산업분야 학과 정원을 좀 늘린다고 대학의 만성질환이 나아질 리도 없다. 행정부처 주도의 개혁은 흔히 단기 성과주의에 매몰돼 대담한 혁신으로 가기 어렵다.

개혁은 정부가 키를 쥐고 있지만 개혁의 동력은 국민적 지지에서 나온다. 개혁은 법률 한 조항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랜 고정관념과 관행, 사회적 규범을 바꾸는 것이라서 공론화를 통한 폭넓은 공감대 형성과 사회적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이익집단의 양보도 가능하다. 특히 지금 같은 대전환기에는 대통령이 개혁을 진두지휘해야 한다. 한국경제 혁신의 큰 구상과 미래지향적인 개혁의 내러티브를 직접 호소해야 한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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