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명의 퍼스펙티브] 기초연금, 대상자 줄이고 취약노인에 더 지급해야

입력 2022. 6. 30. 00:34 수정 2022. 6. 30.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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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기초연금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기초연금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노인 인구 급증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연금 지급액 외에도, 국민연금과 연계된 지급 방식 때문이다. 무슨 사연이 있어 이리되었을까?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에서 기초연금 논의가 있었다. 1999년 도시 자영자에게도 국민연금을 확대 적용할 예정인데, 자영자 소득 파악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소득 자영업자가 소득을 낮게 신고할 경우 저소득층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소득 재분배 기능으로 인해 유리알 지갑인 직장 가입자의 불만이 커질 수 있었다. 기초연금과 소득 비례 연금으로 이원화시키되 소득 재분배는 기초연금에 국한하기로 했다. 지금과 달리 당시 논의되었던 기초연금은 일정 기간 보험료를 내야 받을 수 있었다.

2002년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연금 개혁이 중요 이슈로 등장했다. “OECD 회원국 개혁 동향을 반영해 국민연금 급여율을 60%에서 40%로 낮추겠다”는 이회창 후보와, “국민연금 급여율을 낮추면 용돈 수준이 된다. 그러하니 국민연금은 그대로 두고 기초연금을 도입하겠다”는 노무현 후보 공약이 충돌했다. 당시 TV 토론 시청률이 꽤 높았다. 적은 표 차이로 패배한 이회창 후보 참모였던 안종범 교수는 자기 때문에 이회창 후보가 졌다고 한탄했다.

「 노인 70%가 받는 기초연금,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 한계
정치권의 인기 영합주의로 대선 때마다 급여 인상돼
문제가 많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 운영 폐지하고
소득인정액 기준으로 기초연금 대상자 선정 기준 바꿔야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주재로 간담회가 열렸다. 회의 참석자 대다수는 기초연금 공약을 만들었던 노무현 후보 캠프 학자들이었다. 대통령과 정책실장의 미팅이 길어지면서, 정책실장 방에서 기다리던 전문가들이 연금 이슈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격론이 오갔고, 이러한 흐름은 이정우 실장이 합류한 이후에도 이어졌다. 고성까지 오가는 분위기로 인해 동석했던 비서관이 정책실장 앞에서 이렇게 무례한 사람들은 처음 봤다고 할 정도였다.

기초연금 도입에 보수·진보 동맹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소강상태를 보이던 연금 문제에서 핵폭탄급 이슈가 터졌다. 사이버상에 ‘국민연금 8대 비밀’이라는 괴문서가 나돌면서 국민연금 존립을 좌우할 정도로 민심이 흔들렸다. 급기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 자리한 정책기획위원회에서 대책 회의가 열렸다. 정책실장을 그만두고 청와대를 나온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이 회의를 주도했다. 국민연금 현안은 송재성 복지부 차관, 기초연금은 필자가 담당했다. “세금 걷어서 주는 기초연금 도입하면, 나라가 망할 지경까지 갈 거다. 그러니 아예 싹을 잘라야 한다”고 필자가 강조했다. 조세 방식 기초연금 도입에 우호적이던 청와대 참모들의 반응이 차가워 보였다.

자리를 옮겨 점심 식사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오늘 윤 박사 발표 이해했다. 그런데 청와대 분위기는 다르다. 내가 노력해 보겠으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연구 자료를 보내 달라”. 차분하게 듣고 있던 이정우 위원장이 했던 말이다. 이후 청와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직도 모른다. 확실한 건 그 이후 노무현 정부 입장이 바뀌었다는 거다. 최우선 과제로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설정했고 기초연금은 도입 불가로 선회했다.

그런데 다른 데서 문제가 터졌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총선과 대선 공약으로 조세 방식 기초연금을 내걸면서다. 2002년 대선 토론과 정 반대 상황이 된 거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 급여율을 10%포인트 낮추면서 보험료는 6.85%포인트(9%→15.85%) 인상하는 재정 안정화 방안을 2003년 10월 국회에 제출했다. 이 재정 안정화 방안이 거듭 수정되며 2007년 7월, 그것도 보험료 인상이 무산된 반쪽짜리 개혁인 급여율 삭감만 이루어진 것도, 국민연금 재정 안정보다 기초연금 도입이 시급하다는 야당(한나라당·민주노동당)의 반대 때문이었다.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의 정책 동맹이 이루어졌다.

정치권의 인기 영합에 대상자 늘어

모든 노인에게 세금 걷어 기초연금을 주자는 야당 주장에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노인 35%에게만 지급하는 안이었다. 노인 실태 조사 결과 노인의 35%가 정부 도움이 절실한 것으로 파악되어서다. 야당은 물론이고 심정적으로 기초연금 도입에 우호적이던 여당이 이 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야 협상 차원에서 45%까지 대상자를 늘리는 안을 노무현 정부가 수용했다. 그런데 정부를 배제하고 여야가 대상자를 60%로 더 늘리는 데 합의했다. 복지부 장관이 여당 당사를 방문해 항의했다.

이것이 2007년 4월 2일 기초노령연금 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벌어졌던 일들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블랙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국민연금 재정안정법안 통과를 위한 타협책으로 마련된 기초노령연금 제정안은 통과됐지만, 정작 주인공인 국민연금 재정안정법안은 부결됐다.

이후 더 코미디 같은 일이 일어났다. 2007년 7월 반쪽짜리 국민연금 재정안정법안을 통과시키는 조건으로 기초노령연금 대상자를 70%로 늘리기로 한 것이다. 시행도 해보지 않고 국회 체면 살리자고 대상자를 10%포인트 더 늘렸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었음에도 노무현 정부의 기초노령연금은 퇴로가 있었다. 재정 상황이 어려워지면 대상자를 줄일 수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기초노령연금 성격에 대해 당시 복지부가 법제처에 확인했던 사항이다. 상황에 따라 수급자 비율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억지 논리 동원해 기초연금 도입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한 박근혜 정부는 칭찬받을 만했다. 반면 기초연금은 뽑기 어려운 대못을 박아놨다. 무조건 노인 70%에게 세금 걷어서 기초연금을 지급한다고 법에 명시해놨다. 당시 중립적인 전문가와 박근혜 정부 출범 이전까지 복지부가 그토록 반대했던 기초연금을 온갖 무리수를 두면서 도입했다. 얼마나 문제가 많았으면 집권당의 정책위 위원장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에 초대 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진영 국회의원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 도입을 반대하면서 장관직을 사퇴했겠는가? “다수 전문가와 국민연금공단 직원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연계 운영하는 박근혜 정부 인수위 안을 반대하고 있다.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어떻게 찬성할 수 있겠는가?” 진영 장관의 하소연이었다.

대선 공약 지키라는 야당 요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꼼수로 등장한 게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지급액 연계다. 성격이 다른 제도를 억지로 연계시키다 보니 무리가 따랐다. “기초연금은 2007년 국민연금 급여 삭감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다. (···) 국민연금을 통해 과다한 세대 간 이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노출된 집단에도 공평하게 세대 간 이전 혜택을 부여하기 위해 기초연금을 도입해야 하며, 두 제도 간의 연계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기초연금 도입을 위해 억지 논리를 편 일부 전문가와 관련 공무원의 주장이었다.

국민연금 삭감을 보완하기 위해 기초연금을 도입한 것이라면, 왜 그토록 어렵게 국민연금을 개혁했었겠는가? 또 전체 국민연금 가입자의 급여를 삭감했는데, 왜 노인 70%에게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가? 나머지 노인 30%에게는 어떤 보완 조치가 있었나? 더욱 이해하기 힘든 이들의 주장은 국민연금이 낸 것보다 많이 받는 제도이다 보니, 이러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집단을 위해 기초연금을 도입했다는 거다. 모두가 낸 것보다 많이 받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지속 불가능한 국민연금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미래세대에 더 큰 부담을 떠넘기는 기초연금을 도입하겠다고 하니 한심하다.

OECD, 취약노인 집중 지원해야

정치적으로 오염돼 도입된 기초연금이 대통령 선거 때마다 급여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10만원도 안 되던 기초노령연금이 박근혜 정부에서 20만원, 문재인 정부에서 30만원으로 인상됐다. 윤석열 정부의 대선 공약은 40만원으로 인상이었다. 그대로 두면 2027년 대선에서 50만원, 2033년 대선에서는 60만원 공약이 나올 수 있다.

이제 문제 많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 운영을 폐지해야 한다. 연계 운영 같은 꼼수를 동원한 재정 절감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제도 개혁으로 재정 절감을 달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의 핵심은 노후 소득 양극화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나눠주는 건 돈은 돈대로 들면서 노인 빈곤율을 획기적으로 낮추지 못한다. “대상자를 줄이고 취약 노인에게 더 지급하라”. 10여년 전부터 OECD가 제시한 기초연금 개편 권고 내용이다. OECD 권고를 실행에 옮길 방법이 있다. 노인 70%가 아닌, 일정 수준의 소득인정액 기준으로 기초연금 대상자 선정 기준을 바꾸는 거다.

“윤석열은 보수의 노무현 같다.” 여당 쪽에서 나온 말이다. 보수 집권기에 잘못 만든 제도는 보수 집권기 때 제대로 고쳐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에 좋고 윤 대통령에게도 좋은 일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 회장, 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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