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윤석열 정부의 '뜨거운 아이스'

허진 2022. 6. 30. 00: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허진 정치팀 기자

‘책임 총리’와 ‘책임 장관’이란 표현은 정치권에서 시쳇말로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같은 말로 치부된다. 듣기 좋은 말이지만 제왕적 대통령제 성격이 강한 한국 현실에 잘 안 맞기 때문이다. 분위기 쇄신용 개각에 늘 노출되는 총리와 장관이 자유롭게 인사권을 행사하고 정책을 펴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도 역대 대통령은 대선 때면 책임 총리와 책임 장관을 내세웠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다. 한덕수 국무총리의 서명이 들어간 장관 후보자 추천서 사진을 언론에 공개하는 등 여권은 책임 총리 홍보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괴리가 있는 법. 책임 총리의 행보는 시작부터 꼬였다. 가장 가까이에서 손발을 맞출 국무조정실장으로 윤종원 기업은행장을 앉히고 싶었지만 국민의힘의 반발로 무산됐다. 어느 의원의 말마따나 “고래힘줄” 같은 한 총리지만 윤종원 카드를 밀어붙이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여러 여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 윤종원 카드를 접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왼쪽)와 첫 주례 회동을 하는 모습.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보다 생생하게 현실을 보여줬다. 이 장관은 지난 23일 공식 브리핑에서 주 52시간제 개편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난 윤 대통령은 이 장관의 발표 내용에 대해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 장관은 최소한 노동 개혁에 관해선 책임 장관이 아니라는 인상을 줬다.

그렇다고 윤석열 정부에 책임 장관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장관이 브리핑을 한 날 오전에 윤 대통령은 출근길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이 없는 상황에서 검찰 간부 인사를 한 것’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책임 장관으로서 인사 권한을 대폭 부여했기 때문에 아마 우리 법무장관이 아주 제대로 잘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렇게 선택적으로 인증된 책임 장관은 진짜 책임 장관일까. 한 번 더 생각하면 아닐 수도 있다. ‘책임 장관’ 한 장관은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전진 배치하는 검찰 인사를 했다. “윤 대통령의 의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인사”를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총리도 윤 대통령이 동의할 수 있는 인사를 했다면 어땠을까. 재밌는 건 한 총리가 총리 비서실장을 뽑을 때 “대통령님이 생각하는 사람이면 좋다”고 한 뒤 검찰 출신 인사를 낙점했다는 점이다. 한 총리는 비로소 책임 총리가 된 걸까. 그런데 결국 이런 생각에 다다른다. ‘책임 총리와 책임 장관은 결국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였어!’

허진 정치팀 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