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온 한국 독립영화 중 최고? 영화 경아의딸의 세 사람.

이마루 입력 2022. 6. 3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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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의 딸> 은 세대에 걸쳐 강요돼 관념 속에서 엄마와 딸이, 여성과 여성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나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왼쪽부터)

interviewee 김정은
1992년생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2015년부터 선보인 단편영화들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경아의 딸〉은 그의 첫 장편영화다.
interviewee 하윤경
1992년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하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허선빈 역할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interviewee 김정영
1972년생. 극단 ‘한강’ 단원으로 배우생활을 시작한 후 20년 동안 연극, 영화, 드라마를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왼쪽) 김정은이 입은 셋업은 모두 COS. 볼 캡은 Matin Kim. 목걸이는 Vintage Hollywood. 하윤경이 입은 재킷과 팬츠는 모두 Publicka X. 톱은 Hidden Forest Market. 볼 캡은 Verutum. 김정영이 입은 수트는 Ava Molli. 티셔츠는 Bjoue.

Q : 6월 16일 개봉을 앞둔 〈경아의 딸〉이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왓챠가 주목한 장편상과 CGV아트하우스상 배급지원상 2관왕을 수상했습니다. 영화제의 반응은 어땠나요

A : 김정은(이하 정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라는 소재를 무겁게 그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걸 관객들이 알아준 것 같았어요. 따뜻한 이야기, 가족영화로 봐주는 시선이 좋았습니다.

A : 하윤경(이하 윤경) 사람들이 영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우리가 많은 고민을 하며 조심스럽게 만든 영화라는 걸 알아준다는 기분이었어요.

A : 김정영(이하 정영) 반응이 한마디로 ‘따수웠죠’(웃음). 여성 관객이 많았지만 젊은 남성부터 중년 남성도 꽤 있었다는 게 고무적이었어요. 특히 연수가 횡단 보도를 건너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굉장히 좋은 영화를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소감이 기억에 남습니다.

Q : 고등학교 교사인 연수(하윤경)는 성관계 동영상이 유출되는 이별 범죄를 당합니다. 그리고 이 영상의 존재를 알게 된 엄마 경아(김정영)와의 관계와 삶에 걷잡을 수 없는 파동이 일어나죠. 두 배우가 출연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A : 윤경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감독님의 고민이 정말 많이 느껴졌어요. ‘디지털 성범죄’는 소재로만 사용되면 안 되는 주제잖아요. 그런데 장면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대사를 쓰며 얼마나 많이 수정하고, 진심으로 썼는지 느껴졌어요.

A : 정영 대본이 한 번에 읽혔어요. 지금 시점에 할 만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감독님의 단편영화 〈야간근무〉를 봤기에 확신도 있었어요. 여자들 이야기를 어둡게만 쓰지 않으리라는. 결정에 큰 고민은 없었습니다.

Q : 영화는 새 오피스텔로 이사한 연수가 엄마 경아와 다정하게 영상통화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요. 갑자기 경아가 남자랑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딸 연수에게 집 안 곳곳을 비출 것을 요구하죠

A : 정은 이 모녀의 관계와 전사, 각자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너무나 가깝고 사이좋은 모녀이지만, 엄마가 딸을 통제하고 딸은 그게 큰일이 아니라는 듯 순응하는 관계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사건의 발단이 된 영상이 촬영한 날이라는 점에서 복선이기도 합니다. 잘 보면 연수가 동영상에 나온 옷과 같은 옷을 입고 있죠.

Q : 방을 보여달라고 하는 순간 김정영 배우의 표정이 스릴러처럼 확 바뀌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A : 정영 저도 딸과 아들이 있는 엄마지만 엄마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끔 무섭게 굴잖아요. 그렇게 받아들였어요. 특별히 이상한 엄마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Q : 저는 연수의 전 남자친구인 상현(김우겸)이 구제불능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수에게 ‘너도 우리 아들 사랑하지 않았냐’며 합의를 요구하는 상현 부모님의 행동도 전형적인 가해자 같았고요. 그런데 상현이 악마가 아니고 그저 지질한 남성이라는 평도 있더군요. 감독의 의도나 현장에서의 합의는 어땠나요

A : 정은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이런 분석을 많이 봤어요. 권위적인 아버지와 그에 순응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남성들은 더 이상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귀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지금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대요. 그래서 그에 대한 분노를 이별 범죄로 표출한다고요. 상현이는 시험도 떨어지고 취업에 실패했잖아요. 명예퇴직 이후 꽤 괜찮은 카페를 차린 아버지, 교사로서 사회적으로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연수에게 느끼는 열등감이 있었겠죠.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나 그 가족이 생각보다 정말 평범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김우겸 배우를 비롯해 상현의 부모 모두 아주 소박한 호감형 인물로 캐스팅했고요. 악인 같아 보이지 않지만 명백한 악인이죠.

A : 윤경 그렇게 표현해야 사람들이 영화를 봤을 때 ‘내 아들이 저럴 수도 있을까’ ‘내가 저런 가해자의 시선을 가진 부모가 될 수도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A : 정영 영화 포스터 카피가 상현이 엄마 말일 수도 있겠네요. '나는 모르는 너의 얼굴'.

A : 윤경 정말 마음에 드는 카피예요. 사실 등장인물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거든요.

(오른쪽) 김정은이 입은 티셔츠는 Pangaia. 베스트는COS. 목걸이는 Vintage Hollywood.

Q : 세 분도 어머니 혹은 딸의 낯선 얼굴을 느꼈던 순간이 있나요? 세 사람이 생각하는 모녀관계는 무엇일지

A : 정은 원래는 엄마가 딸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의 나, 또 다른 자아라고 여겨서 내가 겪은 고통을 똑같이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통제와 간섭을 하는 거라고요. 그런데 최근 딸도 엄마를 통제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좀 들어요. 엄마의 삶이 답답하고, 바뀌길 바라서 ‘엄마는 대체 왜 그러냐’며 지금 시대의 가치관을 대입하곤 하죠.

A : 정영 우리 엄마처럼 되지 말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제가 제 딸을 비슷하게 대하는 것을 발견할 때 깜짝깜짝 놀라요. 모녀관계는 평생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엄마 입장에서 딸은 내 자식이니까 한없이 품어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딸 입장에서 엄마는 너무 어려운 존재거든요. 평생 이해하려 해도 닿지 않는 부분이 있죠. 제 딸도 내게 이런 것을 느낄 테고요.

A : 윤경 엄마가 오히려 딸 같기도 해요. 나약한 엄마의 모습을 볼 때 나도 모르게 보호자처럼 엄마를 챙길 때가 생기잖아요.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돼주기를 엄마들 또한 어느 순간 기대하고요. 좋게 말하면 끈끈하지만 또 다르게 말하면 서로 얽매여 있는 관계 같아요.

Q : 대본을 봤을 때 가장 욕심났던 혹은 우려됐던 장면은

A : 정은 아주 잠깐이지만 경아가 영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성관계 영상이 노출될 때, 그 장면을 어느 정도로 묘사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두 분은 어떠셨나요(웃음).

A : 윤경 꼽기 어려워요. 사실 연기하다 보면 이 정도는 내가 잘할 수 있다 싶어서 좀 소홀해지는 장면이 분명 있거든요. 그런데 〈경아의 딸〉은 매 장면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어요. 연수가 받는 고통을 어느 정도로 표현하는 게 좋을지를 포함해서요.

A : 정영 연수가 상현과 행복했던 시기에 찍었던 영상을 경아가 보는 장면이요. 유출된 동영상만 보고 타인의 사랑을 평가했던 건데, 좋았던 시기에 꿈꾸듯 행복해하는 딸의 모습을 보는 엄마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을 많이 했어요.

Q : 문란하다는 것은 여전히 여성에게 치명적인 낙인입니다. 교사인 연수를 통해 10대 학생들의 연애와 성 또한 드러나는데, 여학생 하나(박혜진)도 여전히 비슷한 고민을 해요. ‘남자친구가 하고 싶어 하는데 소문 날까 봐 두렵다’라고. 다음 세대의 이야기까지 넣은 이유는

A : 정은 아마 경아도 이전 세대에서 받은 구시대적 가치관을 딸에게 대물림한 것이겠죠. 그래서 상처를 줬고요. 연수의 직업을 교사로 설정한 이유는 가장 자연스럽고 가깝게 다음 세대와 지낼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런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인물처럼 보이길 바랐고요.

A : 윤경 나름 깨어 있는 젊은 선생님이고 싶지만 결국 연수도 엄마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과도기적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하나가 수업을 빼먹고 거짓말하니까 남자친구랑 있으려고 거짓말한 거냐고, 부모님에게 전화해봐도 되느냐고 하잖아요. 그런데 전 그 말을 뱉고 연수가 알았을 것 같아요. 나 또한 엄마 세대와 다르지 않다는 걸. 스스로 경험한 바 있기에 나보다 어린 여성이 이왕이면 조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다들 있잖아요. 그걸 느끼며 엄마를 좀 더 이해할 수도 있었겠죠.

Q : 경아는 피해자라고 규정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가정폭력을 겪고, 동네에서는 ‘여자가 바람을 피웠다’는 소문에 휩싸이기도 했죠

A : 정영 그럼에도 그에 대한 고민 없이 딸에게 그런 고통을 주기도 하고요. 다 그렇게 살지 않나 싶어요.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딸에게 일찍 다니고, 늦은 시각에 택시를 타지 말라고 하고, 그렇게 방어만 잘하면 무리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우리 시대의 평범한 엄마죠.

Q : 연수는 엄마에게 나는 항상 엄마 편이었는데 어떻게 엄마는 나를 비난할 수 있느냐고 이야기하고, 인연을 끊기로 결심해요. 아주 단호합니다

A : 윤경 연수도 엄마가 이런 상황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까 혼자 괴로워하면서 숨겼겠죠. 하지만 엄마가 이렇게까지 반응하고 등 돌리는 데서 온 배신감은 있었을 거예요. 인연을 진짜 끊겠다기보다 절박하고 복합적인 상황에서 우선 엄마를 보지 않는 쪽을 택한 것 아닐까 해요. 엄마가 내게 상처를 줬으니까, 나 또한 엄마에게 효과적으로 상처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죠. 연수가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말인 “나 엄마 딸로 살기 싫어”라면서요. 전 그것도 너무 착하다고 생각했지만요(웃음).

Q : 김정은 감독은 “내가 성관계 영상을 가장 보지 말았으면 하는 사람이 누굴까 생각했더니 엄마였다. 거기에서 〈경아의 딸〉이 시작됐다”고 밝힌 적 있어요. 크게 공감했습니다. 많은 여성이 첫 성관계 이후 엄마에게 죄책감을 갖기도 해요

A : 윤경 연수도 스스로 용서되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 탓이 아니다’ ‘내 탓이 아니다’라는 대사가 영화에서 여러 번 나오지만, 사실 이 과정에서 영상을 찍은 나를 탓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 ‘그런 건 왜 찍었냐’는 엄마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죠.

Q : 연수가 동영상 촬영 사실 자체를 몰랐다면 어땠을까요. 연수를 완전무결한 피해자로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 이유는

A : 정은 한때 정말 사랑하는 사이였잖아요. 연인인 상대방을 믿었고, 합의하에 영상을 촬영했고요. 하지만 그게 유포되는 순간, 가해자가 아닌 여성에게 온갖 혐오스러운 발언과 낙인이 찍혀요. 순결한 피해자만 존중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합의하에 찍었어도 잘못한 것은 유포한 가해자라는 걸 명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설정했습니다.

A : 윤경 연인과 사랑을 나눌 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상상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데 ‘애초에 그런 걸 왜 찍어’라는 생각이 한편 스치죠. 저도 그랬고요. 그걸 깨달은 순간 내 마음 한구석에도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존재하는구나 싶어서 좀 부끄럽더라고요. ‘왜’가 존재할 수 없는 문제인데 성범죄 사건을 볼 때도 ‘그러니까 왜 술을 마셨어’ ‘왜 늦은 시간까지 같이 있었어’ 같은 생각이 일단 들잖아요. 그 뜨끔한 순간을 사람들이 의식하면 좋겠어요.

Q : 경아와 연수, 각자의 삶에서 만난 이들과 일터에 대한 이야기 가지도 촘촘하고 섬세하게 펼쳐집니다. 모녀관계뿐 아니라 굉장히 풍부한 이야기와 배경이 있어요

A : 정은 세대별로 다양하게 여러 인물을 배치하려고 노력했어요. 선의로 연수를 도와주는 인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인물, 중간 지점에 있는 인물도 있고. 상처를 줬다가 나중에는 연대하기도 하고, 상황을 모르는 주변 인물들이 은연중에 내뱉는 말이 2차 가해나 상처가 되기도 하는 것을 통해 주제의식을 드러내려고 했어요.

A : 윤경 심리적으로는 되게 엮여 있는 터라 경아와 연수가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같이 등장하는 장면이 적다는 것을 저도 촬영하면서 느꼈어요.

A : 정영 셋이 현장에 다 같이 있던 날이 2~3일 정도였던 것 같아요. 연수가 엄마에게서 독립해 살고 있고, 나중에는 ‘잠수’를 타니까. 나는 오히려 운규 할아버지(임형태)와 둘이 많이 촬영한 것 같은데(웃음).

Q : 경아가 요양보호사로 돌보는 남성 노인이죠. 운규 할아버지의 딸이자 변호사인 상순(이채경)과 경아 사이에 관계가 생기며 경아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A : 정영 실제 많은 중년 여성이 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가 요양보호사잖아요. 그에 대해 많이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딸 캐릭터가 도드라진다고 느꼈어요. 딸이 경아에게 묻거든요. “왜 이렇게 우리 아버지 극진하게 모셔요?”라고 말할 때 경아는 “내 일이잖아요”라고 답하죠. 실제 직업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경아에게 남성은 항상 잘 보필해야 하는 존재이기에 그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을까 해요.

A : 정은 운규는 어떤 면에서 경아의 죽은 남편을 대신하는 존재예요. 사별 후 남편의 대체재로 그를 돌보면서 계속 자기희생을 이어오는 거죠. 딸 상순은 결혼제도를 거부하고 본인의 커리어에 집중하는 인물처럼 보이죠. 경아나 경아의 친구 미자(이지하)와는 또 다르게 같은 동년배의 다른 여성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여성이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게 경아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요.

김정영이 입은 비즈 재킷과 스커트는 모두 Miu Miu. 하윤경이 입은 니트 톱과 레이어드한 블루 컬러 셔츠, 플리츠스커트, 레더 벨트는 모두 Miu Miu.

Q : 공장 직원들을 대상으로 식당을 하는 미자는 경아와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미자의 발언이 무의식중에 경아에게 상처를 주죠. 장기간 가정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남편을 죽였다는 뉴스에 “아무리 그래도 남편을 죽이냐. 무섭다”라고 반응하고, 경아가 무고하게 동네 사람에게 비난받을 때도 침묵한 걸 알 수 있어요. 여성 또한 충분히 2차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가 아닐는지

A : 정영 우리가 사는 게 그렇잖아요. 허물없는 사이니까 딴에는 위한다고 하는 말이 상처가 되거나, 지금 일을 당한 건 상대방인데 내 속상함을 먼저 표현하거나, 믿고 속내를 털어놓았다가 그게 가해가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그런 애랑 왜 노느냐고 하겠지만 또 그 친구 말고는 딱히 뭐가 없어요. 같은 동네에서 수십 년 동안 알고 지내며 자식 이야기까지 할 상대가(웃음). 그래도 경아가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했을 때 미자는 “그렇게 상처인 줄 몰랐다. 다들 하는 말이길래 숟가락 얹었다”고 사과하죠. 영화 후반부에서 경아에게도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는 지점이 희망적으로 느껴졌어요. 정은 모두가 연수의 동료 교사 같은 이상적인 연대자가 돼줄 수는 없죠. 미자는 경아와 비슷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요. 어느 순간 나름대로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미자를 통해 경아도 연수에게 사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Q : 동영상을 삭제해 주는 일을 하는 ‘디지털 장의사’ 업체 대표, 연수와의 약속을 잊을 정도로 사건에 다소 무심해 보이는 담당 변호사.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된 실무를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그리고 싶었나요

A : 정은 활동가나 지원센터에서 일하는 분들은 디지털 장의사 업체 자체를 이미 안 좋은 시선으로 보더라고요. 디지털 장의사와 업로드하는 웹하드 업체 사이에 유착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고, 어쨌든 디지털 장의사도 돈벌이기 때문이죠. 국가에서 영상 삭제를 지원해 주지만 기다리지 못하고 사설 업체에 의뢰하는데 실제로 비싸거든요. 그래도 그들을 악마화하지는 않았어요. 실제 만났던 디지털 장의사 중에 청소년은 무료로 삭제 지원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고요. 국선 변호사 또한 1인당 배당받는 사건이 너무 많다 보니 세밀하게 진행하기 어렵잖아요. 실제로 많은 피해자가 실망하기도 하고요. 그런 현실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Q : 해당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본 당사자로서 디지털 성범죄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A : 윤경 링크 하나 보내는 데 몇 초밖에 걸리지 않잖아요. “교탁 앞에 서면 수업 내내 애들은 나만 보잖아. 사람 속은 아무도 모르니까”라는 연수의 대사가 함축적인 표현 같아요. 누가 나를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고, 나는 모르는 사람들인데 모두 날 아는 기분이 들잖아요. 맞아서 난 상처처럼 치료해서 낫는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게 가장 끔찍하죠.

A : 정은 영상물이 남아 있는 한 피해자의 고통이 영구적일 수도 있어요. 끝없이 재유포되고 소비자가 계속 있는데 거기에 불특정 다수가 동참한다는 게 가장 무서운 것 같아요.

A : 정영 저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소라넷 사건을 보기 전까지 디지털 성범죄가 얼마나 조직적으로 다양하게 소비되고 유통되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GV 때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힘이 됐죠. 그런 영상이 존재하더라도 소비하지 않는다는 의식이 공유되고, 처벌도 강화해야 돼요.

A : 윤경 처음에는 사람들이 ‘소라넷’도, ‘N번방’도 안 믿었잖아요. 너무 끔찍하니까. 저게 실제일까, 저렇게까지 하겠냐고 했죠.

Q :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이 어떤 걸 느꼈으면 하나요

A : 정영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해라!

A : 정은 저놈을 매우 쳐라(웃음)! 연수의 일상이 회복돼 가는 과정 그리고 모녀관계의 회복을 관객들이 응원하며 봐주길 바랍니다.

A : 윤경 저는 우리 영화가 특별한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아서 좋다고 생각해요. 특별한 이야기처럼 보이면 특수한 사람들의 이야기 같으니까요. 연수는 정말 자기 일을 잘하고 싶었던 청춘이고, 누군가를 너무 사랑했던 여자고, 또 너무 예쁜 딸이거든요. 평범한 사람도 이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피해자를 선입견 없이 바라보길 바랍니다.

A : 정영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눈 오는 밤’은 윤경이 직접 부른 곡이기도 한데요.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등장인물들이 좀 더 힘을 내서 계속 살 수 있길 응원해 주면 좋겠어요. 세상이 조금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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