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 속 시원한 계곡에서 무더위 쫓는 休~
백두대간 소백산 자락의 내륙 도시 경북 영주에는 한여름 무더위를 식힐 곳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선비가 사랑한 피서지’ 죽계구곡이다. 대나무가 많은 시내라고 해 이름 붙은 죽계천은 소백산 국망봉과 비로봉 사이에서 발원해 영주 순흥마을을 휘감아 돈 뒤 서천·내성천을 거쳐 낙동강에 합류한다. 죽계구곡은 초암사 앞 제1곡을 시작으로 배점분교 삼괴정 근처에 자리한 제9곡에 이르기까지 약 2㎞에 걸쳐 흐르는 계곡 절경을 말한다.
이곳은 자연과 역사적 이야기가 공존한다. 퇴계 이황 선생이 계곡의 절경에 심취해 물 흐르는 소리가 노랫소리 같다고 해 각 계곡에 걸맞은 이름을 지어주며 죽계구곡이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 때 문신 안축(1287~1348년)도 이곳의 아름다움을 죽계별곡이라는 작품으로 남겼다. 단종 복위운동에 실패해 참형 된 영주 선비의 애절한 한도 서려 있다.
계곡 밑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 울창한 푸른 숲, 그 사이로 보이는 하얀 바위들이 모여 빚어놓은 풍광으로 어느 지점에서든 주저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옛 선비부터 오늘날 탐방객까지 많은 발길이 이어진다. 비경을 품은 깊은 숲속 암반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옛 선비의 정취가 느껴지고 무더위는 저만치 물러난다.
제1곡 금당반석엔 조선 영조 때 순흥부사를 지낸 신필하가 죽계1곡(竹溪一曲)을 새겨놓았고 계곡수가 넓게 고여 흐르는 물밑 금당반석엔 제일수석(第一水石)이란 글씨가 보인다. 2곡 바위벽엔 퇴계가 이름 붙였다는 청운대 글씨가 새겨져 있다. 3곡을 지나 4곡은 소에 떨어지는 물길이 하늘에서 여의주를 물고 내려오는 용의 모습을 닮았다 해서 용추비폭이라 불린다. 5, 6곡을 지나 7곡쯤에 이르면 푸르름의 극치를 이룬다.
죽계구곡에서 3~4㎞ 떨어진 순흥마을에 접어들면 선비촌과 소수서원을 가로지르는 죽계제월교(청다리)를 지나친다. 죽계구곡에 풍류가 넘친다면 죽계제월교에는 가슴 아픈 순흥의 역사가 있다.
소수서원이 있던 자리에는 숙수사라는 절이 있었다. 단종을 아꼈던 숙부 금성대군이 유배를 왔던 곳이다. 금성대군은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 실패했고 세조는 불온한 세력의 씨를 말렸다. ‘순흥 일대는 불바다가 됐고 사방 10리에 개와 닭의 울음소리마저 그쳤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 일대에 거주하는 이들은 젖먹이까지 도륙당해 소수서원 자리에서 7㎞ 떨어진 냇가까지 핏물이 흘렀다고 한다. 그곳 지명이 피끝마을이 됐을 정도다.
이후 중종 38년(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서원을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명종 때 퇴계가 풍기 군수로 부임한 뒤 조정에 건의해 소수서원으로 최초 사액됐다. 소수(紹修)는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닦게 하였음’이라는 뜻이다.
소수서원에서 죽계천을 건너면 선비촌이다. 5만9400㎡(1만8000평)의 부지에 영주 각 지역의 고색창연한 옛집들과 정자 등을 본떠 한데 모아 지은 대규모 민속마을이다.
선비촌 바로 위에 대한민국 선비문화를 대표하는 복합문화체험공간 ‘선비세상’이 오는 9월 3일 개장한다. 한옥·한복·한식·한지·한글·한음악 6가지 K문화를 기반으로 선비정신을 폭넓게 체험할 수 있는 한문화테마파크다.
정식 개장에 앞서 7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임시운영에 들어간다. 임시운영 기간에 방문을 희망하는 일반인은 7월 25일부터 영주시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예약해야 한다. 1일 입장객은 1500명 이내로 제한된다.
선비세상의 6개 테마를 주제로 첨단매체를 활용한 전시와 장원급제 행렬을 최대 규모 18m로 구현한 오토마타(기계장치를 통해 움직이는 인형이나 조형물)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선비의 이상향을 주제로 한 몰입형 미디어아트와 한지뜨기, 다도체험, 한글놀이터, 어린이 만화·영상관 등 다양한 콘텐츠와 체험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임시운영 기간 중 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스페셜 이벤트도 진행된다. 선비세상 퍼레이드 공연과 힙 선비 크루의 풍류한마당, 뮤직콘서트 등을 선보인다.
KTX 이음 타면 서울~영주 1시간 40분
풍기 특산물 인삼·인견… 여름에 제격
죽계구곡과 소수서원, 선비세상, 선비촌이 있는 순흥으로 가려면 중앙고속도로 풍기나들목에서 빠져 나와 931번 지방도를 이용하면 된다. 지난해 초 개통한 중앙선 KTX 이음을 이용하면 서울 청량리에서 영주까지 1시간 40여분 만에 이동할 수 있다.
순흥의 먹거리는 묵밥이다. 읍내리의 30년 전통 메밀묵밥집이 유명하다. 풍기읍엔 평양냉면을 잘하는 서부냉면이 있다. 선비촌과 무섬마을 고택 등에서 전통한옥 체험을 할 수 있다.
풍기 특산물로 인삼과 인견이 꼽힌다. 풍기나들목 인근 봉현면에 인삼과 인견 제품을 판매하는 대규모 쇼핑센터와 관련 제품 생산공장이 집합된 ‘영주일반산업단지’가 있다.
풍기 인삼은 육질이 단단하고 향이 강하며 유효 사포닌 함량이 높다. 수삼과 홍삼, 홍삼 가공제품인 홍삼농축액, 홍삼에 벌꿀을 입힌 홍삼정과, 홍삼절편, 홍삼진액, 홍삼뿌리제품 등 다양한 가공식품으로 생산된다. ‘2022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가 오는 9월 30일부터 10월 23일까지 개최된다.
인견은 나무나 종이 등을 화학 용제로 녹인 뒤 실로 뽑아내는 방식으로 만든 섬유다. 여름에 특히 시원하며, 땀이 나도 달라붙지 않는다고 한다.
영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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