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사형제 폐지가 선진국 조건 아냐".. 내달 공개변론 앞두고 헌재에 변론요지서 제출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법무부가 다음달 열리는 사형제도에 대한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을 앞두고 사형제를 유지해야 할 이유를 담은 변론요지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최근 기존의 사형제 합헌 판단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변론요지서를 대리인인 정부법무공단을 통해 헌재에 제출했다.
변론요지서에서 법무부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도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바, 이는 사형제를 존치하는 것만으로 그 나라가 후진적이거나 야만적이라고 볼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며 "사형제 폐지가 선진국의 조건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형제 폐지'를 회원국 가입 조건으로 내건 유럽연합(EU)에 비교적 최근에 가입한 국가들의 경우 국민의 인식 변화보다는 경제적 요인 등 국익 차원에서 사형제 폐지를 결정한 경우가 많다고도 주장했다.
또한 법무부는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답변이 77.3%에 이른 2021년의 한 국내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국민적 바람,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를 소박한 법감정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법무부는 "사형은 야만적 복수가 아니라 오히려 정의에 합치된다"며 사형의 대체 형벌로 자주 거론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도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아울러 이번에 헌법소원을 청구한 A씨는 헌재 심판 도중 이미 법원에서 존속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기 때문에 사형제에 대한 헌재 결정이 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어 기본권 침해의 자기관련성 등 '헌법소원 적법요건'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편 사형제도에 대해 세 번째 위헌심사를 진행 중인 헌재는 다음달 14일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존속살해 및 강제추행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A씨가 사형을 형의 종류로 정한 형법 제41조 1호와 법정형에 사형이 포함돼 있는 형법 제250조 2항(존속살해) 등에 대해 청구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의 공개변론을 진행한다.
헌재 심판정에서 사형제도가 논의되는 건 지난 2010년 헌재의 두 번째 합헌 결정 이후 13년 만이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A씨를 대리하는 변호인과 이번 사건의 이해관계인인 법무부장관을 대리하는 정부법무공단 측 의견진술에 이어 양측이 추천한 참고인들이 각각 사형제의 폐지와 존치 필요성을 주장할 예정이다.
A씨는 1심 재판 도중 위 조항들에 대해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기각하자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앞서 헌재는 1996년 7(합헌)대 2(위헌) 의견으로, 2010년 5(합헌)대 4(위헌) 의견으로 각각 사형을 형의 종류로 규정한 형법 제41조 1호와 법정형에 사형이 포함돼 있는 형법 제250조(살인죄) 등에 대해 합헌 결정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우리 헌법이 사형제도에 대해 직접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헌법 제110조 4항의 해석상 간접적으로나마 사형제도를 인정하고 있고, 사형의 범죄예방효과에 대한 기대가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생명권의 본질적 침해라거나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헌법 제110조 4항은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군인·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에 관한 죄 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 직접 사형을 언급하고 있다.
또 헌재는 살인죄의 법정형에 사형을 규정한 것에 대해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는 범죄행위에 대해 행위자의 생명을 부정하는 사형을 그 불법효과의 하나로서 규정한 것은 행위자의 생명과 그 가치가 동일한 하나의 혹은 다수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의 선택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 비레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헌재가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9명의 재판관 중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현 재판관 중 사형제 폐지 입장을 밝히거나 적극 검토 의견을 낸 재판관은 유남석 헌재소장을 비롯해 이석태·이은애·문형배·이미선 재판관 등 모두 5명이다.
헌재에 따르면 A씨 측은 ▲비상계엄하 군사재판에서 단심제를 할 수 있는 경우와 그 예외를 정한 헌법 제110조 4항은 기술적 성격의 조항으로 사형제의 헌법적 근거가 될 수 없고 ▲사형제가 다른 형벌에 비해 효과적인 범죄 억제력이 있다거나 사형제의 존치가 극악범죄의 예방에 기여한다는 것은 확실한 근거가 없는 막연한 추론이며 ▲사형이 집행된 경우에는 후일 오판임이 판명돼도 시정할 방법이 없고 ▲범죄인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함으로써 사회를 보호하는 기능은 종신형 또는 감형 없는 무기징역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달성될 수 있기 때문에 사형제는 위헌이며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법무부는 ▲사형제의 폐지 여부는 사법부가 아닌 국민과 입법자에 의해 결정될 문제이며 ▲헌법은 적어도 문언의 해석상 사형제를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하고 있고 ▲사형이 범죄의 해악성에 비례해 부과되는 한 객관적 정의감정에 근거한 응보의 발로로서 오히려 정의에 합치되며 ▲사형의 범죄 억지력이 통계에 의해 밝혀지지 않는다고 해서 부정될 성질의 것이 아니며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이 사형을 대체할 수 없고 ▲오판 가능성은 사법제도가 가지는 숙명적 한계로 심급제도, 재심제도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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