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1억 넘게 중간착취.. 노동부는 삼권분립 황당 답변"
[손가영, 유성호 기자]
▲ 법원과 등기소에서 전산장비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하청 노동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파업 돌입 기자회견을 열어 법원의 부당 노동행위를 알리며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
ⓒ 유성호 |
법원 콜센터에서 민원 전화 받는 사람, 재판 자료를 일일이 스캔해 올리는 사람, 법정 실물화상기가 작동 안하면 손보러 뛰어가는 사람, 모두 법원의 일상 업무를 보는 이들이지만, 소속은 법원이 아니다. 짧으면 1~2년, 길면 5년마다 사장만 바뀌는 협력업체 직원들이다. 이른바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하청노동자'다.
2020년 8월 기준 17개 협력업체에 860여명이 종사한다. 전문적인 서버 관리부터 승강기 관리, 특수경비까지 직종도 다양하다. 최근 이들 사이에서 "진짜 사장 나오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18년차 전산운영자 김창우(42)씨와 24년차 최근배(48)씨가 그들 중 하나다. 김씨는 대전·충남 9개 지역 등기소의 전산장비 유지·보수를, 최씨는 현재 대법원 전산 장비 유지·보수를 맡고 있다. 김씨는 공공운수노조 산하 전국법원등기전산지회장, 최씨는 전국법원사법전산운영자지부장이다.
두 개 노조는 오는 1일 파업에 돌입한다. 올해 거듭된 임금협상 결렬로 쟁의권을 확보했다. 이들은 대법원에 중간착취 근절과 원청 책임 인정, 그리고 정규직 전환을 요구한다(관련 기사: 사법부 역사상 최초 하청노동자 파업 "법원갑질 못 참겠다" http://omn.kr/1zkia ).
<오마이뉴스>는 지난 27과 28일 최 지부장과 김 지회장을 만나 전산직 하청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는 이유를 들었다.
청사 내 모든 전산장비 유지·보수는 이들 몫... "진짜 사장 누구냐"
이들은 등기소와 법원 청사 내 전산장비의 기본적인 유지·보수를 책임진다. 컴퓨터, 프린터, 스캐너, 실물화상기와 프로젝터 등이다. 등기소 경우 무인발급기도 추가로 관리한다. 등기소 전산 하청노동자는 전국 39명, 법원 전산 하청노동자는 전국 124명이다.
컴퓨터 등 전수 점검은 1년에 두 번씩 한다. 서울 기준, 한 번 할 때마다 3개월 정도가 걸린다. 장비 장애는 수시로 발생해 전산실로 '콜'이 들어올 때마다 판사실, 각 과 사무실, 법정을 바쁘게 오간다. 운영체제 업그레이드 설치도 이들 몫이다. 규모가 큰 서울 소재 법원의 경우, 각 법원에 근무하는 전산직 하청노동자들이 전부 모여 법원을 순차로 돌아가면서 함께 설치하기도 한다.
"전산 공무원 일도 우리가 같이 해요. 재고 현황 관리·보고도 하고요. 법원 재산을 하청노동자들이 관리해요. 규모가 작은 지방 법원엔 전산계장이나 실무관 없이 저희만 근무하는 곳도 있고, 특히 법원 지원의 경우는 저희 1명만 있어요. 이 경우 전산계장 업무를 대행해요. 접속 허가가 필요한, 내부 재판사무시스템 전산망에서 처리하는 일들이에요. 공무원들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지시도 그들에게서 받고, 매일 일일근무현황이 보고돼 출·퇴근 관리도 되고 있어요." (최근배 지부장)
코로나 시기 화상회의가 늘면서 업무량도 대폭 늘었다. 이들은 원래 음악회, 송년회, 토론회, 업무회의, 성폭력 예방 교육까지 법원의 각종 행사에 장비 설치 및 장애 대기로 지원을 나갔다. 코로나19로 인해 화상회의가 늘어나면서, 그에 따른 장비 관리 업무까지 가중됐다. 회의 전날 오후 7시∼9시 사이에 웹캠을 설치하고, 당일에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대기하는 일이다.
최 지부장은 그동안 자신이 일하는 업체가 네 번 바뀌었다고 한다. 그는 "전문적이거나 고유한 기술력을 가진 업체들이 아니었다"면서 "입찰 제안서 잘 만들어 프레젠테이션 발표만 잘 하면 점수 받고 와서 중간 임금 착취만 하고 나간다, (그런데도) 법원이 굳이 중간 업체를 껴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 물었다. 그래서 "진짜 사장이 누구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 전국법원 사법전산운영자지부 최근배 지부장이 2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법원 전산장비 유지보수 하청 노동자 파업 돌입 기자회견에 참석해 법원의 부당 노동행위를 알리며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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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전산직의 경우 2020년까지 5년 간 임금이 일방적으로 동결된 적도 있다. 이 과정에서 오래 일한 직원이 퇴사하면 최저임금 수준의 신입 직원이 자리를 메웠다고 한다. 최 지부장은 "임금을 삭감해놓고 '계약서에 사인 할래 안 할래' 묻는 식이고, 일부 직원은 지방으로 전보시키기도 했다. 저도 갑자기 천안에 발령을 받아 서울에서 천안까지 출퇴근한 적이 있다"며 "임금이 더 높은 고연차를 내보내고 '최저임금 신입'으로 채우려는 전략이라고 현장에선 다들 말했다"고 전했다.
"10년을 넘게 일해도 임금은 왜 최저 수준일까?", 의문이 들었던 김 지회장은 직접 정보를 찾아 나섰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기획재정부로부터 얼마를 받아오는지, 법원행정처는 하청업체에게 얼마를 주는지, 하청업체는 또 얼마를 인건비로 책정하는지 등을 알아야 했다. '등기전산장비 유지보수 용역비 산출 내역서'를 대법원에 정보공개청구했다.
그러나 "공개될 경우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법인의 경영상 비밀에 해당하므로 공개할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공명정대해야 할 대법원이 이래도 되는가?", 김 지회장은 이런 의문을 품으며 행정심판까지 직접 청구한 후에야2015~2020년 내역서를 받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사실이 '할인율'이다. 지난 2020년,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기재부로부터 33억1800만원을 받으면, 법원행정처는 여기에 할인율을 적용해 21억6000만원만 용역업체에 대금으로 지급했다. 김 지회장은 "21여억원 중 10억원을 이윤으로 챙겼고, 나머지 10억여원을 인건비 등으로 썼다"면서 "이 과정에서 용역비 산출 내역서에 인건비 월 380만 원 이라고 적힌 금액은 실제 190만 원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결국 중간에서 법원행정처가 11억 5800만 원을 챙기고, 업체가 10억여원 이익을 보는 구조인 셈이다.
김 지회장은 공공기관 관련 노조에서 일한 관계자들에게 할인율에 대해 물었으나 "처음 보는 개념"이라는 답만 들었다. 그는 법원행정처에 "할인율이 뭐고, 나머지 금액은 어디에다 쓰느냐"고 물었으나, "다른 용처에 사용한다"는 답 외엔 설명을 듣지 못했다. 올해 등기소 전산 유지 사업을 맡는 업체가 바뀌면서, 김 지회장은 업체와 대법원에 다시 내역서를 공개해달라고 요구했으나 "공개할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공보관실은 지난 28일 기자들에 보낸 입장문에서 "2022~2023년 법원 전산장비 유지·보수 사업예산은 129억 9800만원이며 127억 3804만원(98%)에 사업이 낙찰됐다"며 "사업 예산 범위 내에서 조달청의 경쟁 입찰을 거쳐 사업자를 선정하며, 협력업체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0년 할인율이 확인된 용역사업인 '등기소 전산 유지·보수 사업' 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 전국법원 등기전산지회 김창우 지회장이 2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법원 전산장비 유지보수 하청 노동자 파업 돌입 기자회견에 참석해 법원의 부당 노동행위를 알리며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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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직 하청노동자들이 '사법부 간접고용 노동자 보호 점검'을 촉구한 민원에,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삼권분립 원칙상 한계가 있다"고 답했다. "공공부문 용역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는 헌법기관에도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사법부 등 헌법기관에 행정부 대책을 적용토록 하는 건 삼권분립 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 지회장은 "노동부는 '삼권분립' 운운하며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대법원은 사각지대·무법지대가 됐다"면서 "전산직도 전국 뿔뿔이 흩어져 있고, 콜센터와 판결문, 소송 자료 스캔 등의 업무를 맡는 하청노동자들도 다 잘게 쪼개져있다. 하청노동자들은 단체 행동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최 지부장은 '고도의 전문성'을 명목으로 법원이 유지·보수 업무 전산직까지 무기계약직 전환에서 제외한 데 대해 "같은 일을 하는 국회사무처의 전산직은 지난해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며 "대법원이 왜 이렇게 대우하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했다.
"법원은 매일 소송으로 누가 진짜 사장인지, 하청이 얼마나 사회에 남용되고 있는지를 판단하면서, 정작 내부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습니다. 이게 맞는 건가요?" (최근배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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