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무덤 한전②] 고물가에도 전기요금 찍어누른 文정부..정치권 입김 있었나
5년 내내 동결한 전기요금, 대선 끝나니 전격 인상
국내 최대 전력공기업이 사상 최대 적자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전 사태'는 사실상 이전 정부가 자초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정부가 전기 생산 방식부터 요금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는 현 구조의 부작용이 이번에 드러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탈원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비싼 에너지 사용을 늘리고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탈원전 비판을 우려해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가운데서도 한전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을 정부에 수없이 요청했지만 정부는 그때마다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동결에 또 동결'…정부의 전기요금 찍어누르기에 한전 '뇌사상태'
현재 전력시장 제도에 의하면, 한전이 전기요금을 인상 또는 인하하기 위해선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산업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물가 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재부 장관과도 사전협의를 해야 한다. 전기요금은 한전이 발표하지만 요금 조정 권한은 사실상 정부가 손아귀에 쥐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전기요금 결정 과정에 물가 안정이나 국민 부담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성화됐다.
2020년 12월 도입된 연료비 연동제는 지금까지 6번의 조정단가 결정에서 4번이나 물가당국으로부터 유보 통보를 받았다. 연료비 연동제는 정부가 전기 생산에 들어간 연료비 변동분을 적기에 전기요금에 반영하기 위해 도입한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체계'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액화천연가스(LNG)·석탄·석유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이 치솟았던 올 1·2분기에도 어떠한 대안도 없이 잇따라 동결하면서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
실제로 지난 27일 국민의힘 정책의원총회에서 정승일 사장은 문재인 정권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10차례 요청했지만 그 중 한 차례만 승인을 받을 수 있었으며, 전기요금 인상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한전의 적자가 불어났다고 증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여파로 한전은 문재인 정부 5년 중 3년을 적자(총적자 5조2000억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부채는 42조원 증가한 146조원을 기록, 부채율은 무려 223%까지 올랐다. 지난해 5조9000억원의 사상 최대 영업적자를 낸 데 이어 올 1분기에만 7조8000억원의 적자를 내며 기록을 갱신했다.
전기요금 동결 거듭해온 기재부…배후에 정치권 입김 있었나
한전의 반복된 전기요금 인상 요구에도 거듭해서 동결이 이어졌던 원인은 기획재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산업부는 전기 요금 결정을 두고 인상 불가피성을 주장해왔지만 기재부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두면서 전기요금 협의 때마다 두 부처 사이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에너지 수급과 한전의 누적적자를 고려한 산업부와 물가를 잡아야 하는 기재부가 팽팽히 맞선 것이다.
기재부가 표면적으로는 물가 안정과 국민 부담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배후에 대선·지선·선거 등 선거를 고려한 정치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일례로 지난해 연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그해 9~11월 실적연료비는 ㎏당 467.12원으로 기준연료비인 289.07원에 비해 61.6% 상승했다. 연료비 조정단가를 킬로와트시(㎾h)당 29.1원 높일 요인이 발생한 것이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물가 안정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올해 1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하는 결정을 내렸다.
홍남기 당시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서민 생활물가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발언했다. 이억원 당시 기재부 1차관 역시 '2022년 경제정책방향' 브리핑에서 "겨울철을 앞두고 서민 물가 측면에서 전기요금 인상은 부담이 굉장히 크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재부 수장의 기조와 정면으로 위배되는 결정을 스스로 내렸다. 그해 12월 27일 정부는 "내년(2022년) 4월 이후 전기요금을 ㎾h당 총 11.8원 올리겠다"고 공표했다. ㎾h당 111원 수준인 현행 단가의 10.6%에 해당하는 인상 폭이다. 지난 수년간 원유·유연탄 등 연료비가 폭등하는 가운데서도 요금 인상을 외면했던 청구서가 '3월 대선'이 끝나자마자 국민들에게 밀어닥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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