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동안 캐러밴 끌고 호주 전역을 다니는 부부 [캐러밴으로 돌아보는 호주 여행기]
[이강진 기자]
▲ 황량한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해는 유난히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
ⓒ 이강진 |
호주 내륙 한복판,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바위가 있는 관광지다. 이곳에서 계속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가면 서부호주(Western Australia)로 갈 수 있다. 오래전에 보았던 서부호주의 사막 지대와 서해안 파도를 보고 싶다. 그러나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계획이 바뀌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집까지 거리를 알아보았다. 대략 4000km 운전해야 한다. 일단 이곳에 오면서 지냈던 앨리스 스프링(Alice Springs)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야영장을 빠져나온다. 호주 특유의 황토색으로 뒤덮인 구릉을 차창 밖으로 훔쳐보며 한가한 도로를 달린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건물과 주유소가 보인다. 쉴 때도 되었다. 차를 세운다.
가게에 들어서니 몸을 간신히 가누는 할아버지가 나를 쳐다본다. 커피를 주문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커피 이름을 알아듣지 못한다. 건물 앞 의자에 앉아 있는, 조금 젊은 동네 할머니를 불러 도움을 청한다. 할머니가 큰 소리로 커피 이름을 알려준 후에야 알아듣는다. 귀가 안 들리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콩글리시 발음에 익숙하지 않은 이유가 더 클 것이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 한국 사람이 콩글리시 발음으로 커피를 주문했을 리가 없을 것이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어렵게 타 준 커피를 마신다. 주유소 옆에는 큰 건물이 있다. 숙소로 쓰던 건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거의 폐허가 되어 있다. 가게 주위에서 서성이는 동네 사람도 나이가 많이 든 할아버지 할머니가 대부분이다. 머지않아 동네 자체가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이 시원하게 터지는 큰 도시 앨리스 스프링 야영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쉬고 싶은 지역을 살펴본다. 비포장도로를 따라가면 거리도 짧고 새로운 동네를 거쳐 갈 수 있다. 그러나 지난번 비포장도로를 달린 후에 캐러밴 내부까지 흙먼지를 뒤집어쓴 기억이 생생하다. 캐러밴도 비포장도로에 적합하지 않다. 고민 끝에 포장된 도로를 따라가기로 했다. 물론 거리도 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앨리스 스프링을 떠나 테넌트 크릭(Tennant Creek)으로 향한다. 이곳에 올 때 운전했던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린다. 짧지 않은 500km 이상 운전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도시를 벗어나니 오른쪽으로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어제 늦도록 고민했던 도로다. 망설임이 잠시 밀려온다. 포장된 도로를 따라갈까 아니면 비포장도로를 택할까. 망설임을 뒤로하고 포장된 길로 계속 운전한다. 어느 쪽을 택하든 인간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다.
중간에 휘발유도 넣으면서 한참 운전했다. 도로 오른쪽으로 내려오면서 보았던 악마의 바위(Devils Marbles)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이 널려 있는 곳이다. 한 번 더 보고 싶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그래도 바위가 있는 샛길로 운전대를 돌린다. 자동차에서 내리지는 않고 천천히 운전하며 바위들을 한 번 더 둘러본다. 사진 찍고 싶은 풍경이 지나친다. 지난번에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때에 따라 색이 변하는 바위들이다. 두 번 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다.
다윈(Darwin)에서 내려올 때 일주일 묵었던 테넌트 크릭(Tennant Creek) 야영장에 도착했다. 지난번에 들렀다고 하니 반색한다. 지난번에 지냈던 장소가 좋으냐고 묻는다. 같은 장소에 캐러밴을 설치한다. 주위 환경이 익숙하다. 따라서 신선함이 조금 떨어지지만 익숙하기에 편안하기도 하다.
하룻밤 묵고 아침 일찍 다음 장소를 향해 떠난다. 목적지는 또다시 500km 정도 운전해야 하는 카무윌(Camooweal)이라는 장소로 정했다. 퀸즐랜드(Queensland) 관문에 있는 동네다. 끝없는 일직선 도로를 다시 운전한다. 졸음이 쏟아진다. 쉬어가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 로드 트레인(Road Train) 기사들이 잠시 쉬어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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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작은 동네에 있는 큼지막한 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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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이 끝나고 교복을 입은 채로 오후를 즐기는 학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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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걸으니 집이 보이기 시작한다.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집이 모여있다. 큼지막하고 깨끗한 집 입구에 판다는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가격은 도시에 있는 집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하다. 그런데도 흥정 가능하다는 문구까지 써 놓았다. 내가 사는 집을 팔고 이곳에 정착한다면 남은 돈으로 평생 먹고사는 데 지장 없을 것이다.
▲ 시골 작은 동네에 오래된 교회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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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끝낸다. 하늘을 보니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지평선 너머로 지는 해, 매일 보아도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이다. 지평선이 잘 보이는 야영장 건너편 넓은 주차장으로 나갔다. 같은 야영장에서 묵고 있는 중년 부부가 큼지막한 카메라에 석양을 담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다윈을 향해 가는 길이라고 한다. 사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일정한 장소가 없다. 지난 6년 동안 캐러밴 끌고 호주 전역을 다니며 생활하는 유랑객의 삶을 택한 부부다. 생활비는 여행하면서 가끔 일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며 돈 걱정은 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는 것 같다. 부부의 얼굴에는 현재의 삶에 만족한 웃음이 가득하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한참 벌어 저축해야 할 나이에 집도 없는 떠돌이 생활, 내일을 걱정하며 바쁘게 지내던 나의 시절과 비교된다. 사람 팔자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평소의 생각이 떠오른다.
▲ 작은 동네에서 구멍 가게도 겸하고 있는 우체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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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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