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죄의식 굴레 벗고 자유롭게..박찬욱 영화의 변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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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고상한 인물을 묘사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박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이 숭고한가 묻는다면, 죄의식을 가지고 괴로워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태주를 흡혈귀로 만들고 강우를 죽인 장본인이기에 어떻게든 책임을 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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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 대부분이 죄의식으로 괴로워한다. 고상한 인물을 묘사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살면서 저지르는 실수와 악행을 잊거나 묻어버리고 넘어가지 않는 모습이야말로 인간답다고 생각한다. 박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이 숭고한가 묻는다면, 죄의식을 가지고 괴로워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헤어질 결심’에도 숭고해 보일 여지가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송서래(탕웨이)는 중국 고전 ‘산해경’을 한국어로 번역한다고 설정돼 있다. 산의 주름에서 출발해 바다의 물결로 끝나는 꿈 같은 여정을 암시한다. 안내자는 점잖고 언중한 형사 장해준(박해일)이다. 송서래를 사망 사건의 잠재적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는데 감정적으로 계속 흔들린다.
자기 의지와 다르게 드라마틱한 상황에 휩쓸리는 과정은 ‘박쥐(2009)’의 상현(송강호)과 많이 닮았다. 친구인 강우(신하균)의 집을 드나들다가 그의 아내 태주(김옥빈)에게 격정적으로 끌린다. 그는 무력감에서 탈피한다. 끓어오르는 욕망과 분노에 충실히 반응한다. 장해준도 비슷하다. 더듬이처럼 예민한 감각을 내려놓고 송서래와 꾸준히 감정을 교류한다.

상현은 뒤늦게 가책에 짓눌린다. 욕망의 관성을 억제하지 못하는 태주에게서 육식동물의 기운을 체감한다. 본질은 살인이다. 신선한 피를 갈구하며 알고 지낸 사람들을 해한다. 흡혈귀이기 전에 성직자인 상현은 묵인하지 않는다. 그는 의식을 잃고 투병하는 친구 효성의 몸에서 죽지 않을 만큼만 피를 취한다. 자살자의 피를 마셨다며 흡혈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태주를 흡혈귀로 만들고 강우를 죽인 장본인이기에 어떻게든 책임을 지려고 한다.
장해준의 헤어질 결심은 조금 다르다. 그는 송서래를 향한 마음을 정리하는 동시에 경찰로서 책임을 회피한다. 영화 ‘안개(1967)’의 무진을 연상하게 하는 이포로 전근한 뒤에는 아내 정안(이정현)의 말처럼 시들어간다. 또 다른 살인사건, 즉 재기할 기회만 애타게 기다린다. 그곳에 송서래가 있는 줄도 모르고.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우리 일, 무슨 일이요? 내가 당신 집 앞에서 밤마다 서성인 일이요?" "당신 생각났어요."
장해준이 헤어질 결심을 하고 솟구쳤던 회의와 죄의식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 언어불통의 벽마저 붕괴해 송서래의 세계에 깊숙이 갇혀버린다. 순간 이포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해 꿈꿀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다. 안개에 가려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 뿐이다. 박 감독은 "안개의 양면성을 모두 취하고자 했다"고 했다.
"뿌옇게 서린 안개는 시야를 가리기도 하지만 멀리서 보면 은은해서 운치가 있다. 후자가 두 주인공 주위를 서서히 감싸길 바랐다. 어슴푸레하고 흐릿한 기운 속에서 현실과 내면을 동시에 직시하는 모습을 원했다."

두 사람의 종착지는 바다다. 또 한 번의 ‘붕괴’가 기다린다. 박 감독은 "무너지고 깨어지는 의미를 ‘사라진다’로 받아들여 달라"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멸하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박쥐’에서도 바다에서의 파국을 그렸다. 죽음을 앞둔 상현의 얼굴에는 죄의식을 넘어 존재할 이유를 찾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헤어질 결심’의 송서래와 장해준은 다르다. 특히 전자는 죄의식을 드러낸 적이 없다. 새로운 꿈이 무너져 세상과 헤어질 결심을 할 뿐이다. 고상하지도 숭고하지도 않다. 축축하고 어두운 사랑의 기운만 안갯속에 뒤섞여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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