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큰잎나무

2022. 6. 29.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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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개방한 서울 용산미군기지를 둘러봤다.

플라타너스(platanus)는 잎이 크다는 뜻의 학명이고 양버즘나무, 버즘나무 등으로 세분되는데 현존 세계 최고의 가로수 가족이다.

거리와 공원에 플라타너스를 비롯해 오동나무, 마로니에, 목련, 튤립나무 등 그늘 깊고 풍성한 큰잎나무를 겹겹이 심자.

차에서 내려 푸른 잎이 터널을 이룬 큰잎나무 그늘 아래를 걸을 때에서야 비로소 '걷고 싶은 도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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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


새로 개방한 서울 용산미군기지를 둘러봤다. 해방 직후 미군이 심어 맘껏 자라난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인상적이다. 플라타너스(platanus)는 잎이 크다는 뜻의 학명이고 양버즘나무, 버즘나무 등으로 세분되는데 현존 세계 최고의 가로수 가족이다. 양버즘나무 원산지인 북아메리카는 물론 아시아와 유럽도 플라타너스 가로수에 진심이다. 크고 아름답고, 어디서나 잘 자라고, 무엇보다 이름처럼 잎이 크다. 잎이 크다는 건 다양한 효능을 보증한다. 남보다 넓은 잎으로 광합성을 하니 무럭무럭 자란다. 광합성은 기후위기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부산물로 신선한 산소를 내뿜는다. 큰 잎 뒷면 솜털은 미세먼지를 잔뜩 붙잡았다가 비에 씻어 하수도로 내보낸다. 그뿐인가. 낮이면 큰 잎에서 수증기를 발산하니 살아 있는 가습기이고, 잎 자체로 완벽한 그늘막이다.

오해도 받는다. 속성수라 저어하지만, 140년 전 심은 인천 자유공원 플라타너스도 건재하다. 빨리 자라는 건 오히려 도시에 걸맞다. 뿌리가 땅으로 올라와 보도를 망가뜨린다지만 오죽 땅속에 발 뻗을 곳이 없으면 땅 위로 올라오겠나. 잘 쓰러진다는 속설도 좁은 보도 지하로 뿌리내리기 어렵고, 주변 공사로 뿌리가 자주 절단된 까닭이 크다. 봄이면 날린다는 꽃가루도 기실 버드나무와 포플러 씨앗 얘기이고, 방울에 뭉쳐진 씨앗은 정작 무거워 날지 못한다. 간판을 가리고 낙엽이 많다는 지적은 유효하지만 보도를 넓혀 간판과 나무의 거리를 띄우고, 청소노동자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는 건 인간의 몫이다.

기후위기로 여름 기온이 높아진 데다 에어컨 실외기까지 더해져 한낮에 도시를 걷는 게 힘겹다. 파라솔 몇 개로 바뀔 순 없다. 거리와 공원에 플라타너스를 비롯해 오동나무, 마로니에, 목련, 튤립나무 등 그늘 깊고 풍성한 큰잎나무를 겹겹이 심자. 차에서 내려 푸른 잎이 터널을 이룬 큰잎나무 그늘 아래를 걸을 때에서야 비로소 ‘걷고 싶은 도시’가 시작된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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