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복붙'과 '복불복'
패러디는 광고에서 자주 쓰이는 기법이다. 광고 자체가 사회의 패러디라고도 할 수 있다. 광고는 시대의 양상을 베끼고 소비자의 언어를 따라 한다. 광고계에서는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회자되는 걸출한 패러디 작품이 종종 있다. 팬택의 피처폰 ‘SKY’ 광고를 패러디한 팔도 ‘왕뚜껑’ 광고는 그중 하나. 한 남자가 휴대폰을 목에 걸고 클럽에 들어와 건들건들 춤추다가 여자에게 다가가 “같이 들을까?”라고 속삭였던 2003년 ‘SKY 뮤직폰’ 광고를 기억하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이걸 왕뚜껑 광고가 패러디했다. 휴대폰 대신 왕뚜껑을 손에 들고 춤을 췄다. 남자가 벽에 기대 서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속삭인다. “같이 뚜껑 열까?” 그리고 이어지는 카피는 영리하고 재치 넘친다. ‘스카이, It’s different’를 ‘왕뚜껑, It’s delicious’라고 바꿨다.
당시 큰 웃음과 깊은 인상을 남겼던 두 브랜드의 관계는 꼭 10년 후에 다시 한 번 소환됐다. 2013년 배우 이병헌씨가 ‘단언컨대 메탈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라는 카피를 남긴 팬택의 스마트폰 광고를 왕뚜껑은 개그맨 김준현씨를 통해 다시 패러디한 것이다. ‘단언컨대 뚜껑은 가장 완벽한 물체입니다’라고.
패러디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든다. 왕뚜껑 광고는 촬영 장소, 음악, 모델 의상 등 거의 모든 것을 따라 했다. 하지만 이 광고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두 광고의 유사성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차이성 때문이다. 결코 혼돈되거나 경쟁 관계가 될 리 없는 두 제품 사이의 멀고 먼 거리, 두 모델의 극명한 간격. 우리가 탄복하게 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누가 스마트폰 광고에서 컵라면 광고를 읽어낼 생각을 했단 말인가? 광고인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임팩트란 이런 것이다. 덕분에 패러디한 광고와 패러디 당한 광고가 도원의 의형제처럼 둘 다 윈윈(win-win)의 고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비슷해 보이는 행위라도 행위의 방식과 양상에 따라 어떤 것은 패러디가 되고 어떤 것은 표절이 되며 또 어떤 것은 오마주가 된다. 알다시피 패러디는 특정 작품을 ‘공공연하게’ 가져다 쓰는 풍자의 행위이며, 표절이란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자신의 것에 ‘몰래’ 가져다 쓰는 비열한 행위이고, 오마주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자에게 ‘바치는’ 존경의 행위다. 이 셋은 모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돼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몰래 가져다 쓰는 비열한 행위를 해놓고 애초에 자신의 내부에서 나온 것이라고 우겨대는 ‘뻔뻔한’ 행위를 더하기 때문이다. 표절작이 당대 최고의 작품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기도 하는데, 어느 눈 밝은 이에 의해 표절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그 성공의 높이만큼 추락의 깊이도 깊다. 그래도 사과하지 않고 끝까지 표절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도 더러 있다. 그건 남들을 속이기 이전에 이미 자신을 속여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자들은 영혼이 궁핍하고 영감은 결핍된 자들이다. 반대로 패러디나 오마주는 범람에서 나온다. 내 작품을 다른 작품과 잇는 ‘범람형’ 영감은 흥미와 재미를 배가시키고, 원작과 함께 시너지의 풍요로운 향연을 베푼다.
어찌된 영문인지 패러디나 오마주보다 표절이 넘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대학교수들의 논문 표절은 더 이상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고위 관료의 자제가 그 표절 논문의 공동저자에 포함되고, 장관의 딸은 입시 스펙을 위해 남의 논문을 표절하고 대필까지 한 의혹이 불거져도 아무 상관이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유명 대중가요 작곡가의 표절 논란은 그저 사소한 가십처럼 느껴질 정도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이런 일들이 교육과 법 앞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거다. 교육과 법 앞에서도 모든 이들이 평등하지 않고, 개인과 집단의 윤리와 양심의 크기도 같지 않다. 누군가는 지탄을 받고, 누군가는 여전히 당당하다. 복붙하고도 복불복이 되는 사회, 이것이 과연 공정일까?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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