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삼 (3) 학교는 빠져도 부흥회는 참석.. '사랑의 매'도 일상

장창일 2022. 6. 29.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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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회 가겠다고 결석을 하던 나는 참 별난 학생이었다.

결석했다고 그렇게 혼나면서도 거제에서 부흥회가 열리면 어김없이 참석했다.

사실 이 부흥회에 참석하기 전 거제 축복산기도원 부흥회에 갔던 일이 있었다.

자꾸 부흥회 때문에 결석을 하니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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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에서 부흥회 열리면 어김없이 참석
부흥회 은혜받고 등교하면 꾸중 이어져
훗날 목사 된 뒤 은사들 초대 식사 대접
거제고등학교 규율부장이던 이종삼(오른쪽) 목사가 1974년 친구인 진상권 구미 양무리교회 목사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부흥회 가겠다고 결석을 하던 나는 참 별난 학생이었다. 결석했다고 그렇게 혼나면서도 거제에서 부흥회가 열리면 어김없이 참석했다.

고등학교 2학년 늦가을로 기억한다. 거제제일교회에 부흥사인 신현균 목사님이 오셨다. 민족복음화운동본부를 비롯해 10여개 부흥단체를 설립하고 수많은 부흥사를 양성하셨던 신 목사님은 그 시절 부흥 사경회의 유명 강사였다. 그 신 목사님의 부흥회를 놓칠 수 없었다.

사실 이 부흥회에 참석하기 전 거제 축복산기도원 부흥회에 갔던 일이 있었다. 기도원 원장 박 권사님이 나를 유심히 보시더니 “자네는 목사가 돼야 한다”고 하셨던 일이 있었다. 목사가 되라는 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신 목사님은 거제제일교회에서 닷새 동안 말씀을 전하셨다. 마지막 날 집회에서 목사님은 “민족 복음화를 위해 일꾼이 필요한데 목사가 되려는 사람은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셨다. 나는 무언가에 끌리듯 일어섰는데 축복산기도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듬해 3학년이 돼서도 기도원을 따라 다녔다. 경북 김천의 용문산기도원에서 열린 부흥회에도 열흘 동안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기억에 남은 게 이 정도일 뿐 나는 꽤 여러 부흥회를 찾아다녔다. 문제는 학교를 빠지고 부흥회에 다녔다는 점이었다.

부흥회에서 은혜받고 학교로 돌아가면 선생님들의 꾸중이 이어졌다. 사랑의 매를 드셨던 선생님들도 적지 않았다. 은혜받은 뒤 매를 맞는 일상이 반복됐다. 하지만 목사가 되기로 서원한 뒤에 벌어진 일들이라 억울하지 않았다.

자꾸 부흥회 때문에 결석을 하니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셨다. 그 선생님이 부지불식 간에 휘두른 회초리가 코에 스치면서 코피가 난 적도 있었다. 체벌이 일상이던 시절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께 혼나는 게 억울하지 않았다.

은혜받은 뒤 혼나는 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자꾸 결석하는 나를 바로 인도하려고 훈육하셨던 선생님들께 나쁜 감정이 생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점점 목사가 되는 좁은 길로 들어선다는 믿음과 확신이 생겼다. 부흥회에 참석할 때마다 하루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입학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렇게 목사의 길로 다가갔다.

훗날 거제에 여러 병원을 세운 뒤 그 시절 선생님들을 먼저 기억했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고교 은사들을 거제 굿뉴스병원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꽤 여러분을 모셨지만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이제는 세 분만 남으셨다.

그중 한 분은 굿뉴스병원 행정원장으로 계신다. 고교 선생님 중에는 내게 세례를 받고 갈릴리교회에 출석하셨던 분들도 계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부흥회 참석한다고 결석이 잦던 학생이 목사가 된 뒤 병원 여러 개를 운영하는 의료재단 이사장이 돼 은사들에게 받은 사랑을 보답한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어디 선생님들뿐인가. 거제가 내게 준 사랑은 컸다. 나를 품었고 길러낸 자리가 거제다. 일생 거제에 터를 닦고 사는 것도 어쩌면 필연이 아닐까.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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