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나라의 문명선도를 생각한다

입력 2022. 6. 29. 00:36 수정 2022. 6. 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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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는 흡사 신들린듯하였다. 그의 손끝은 모두를 완전히 빨아들여 숨을 멎은 채 듣게 만든다. 조성진에 열광하였던 세계는 또 한 명의 천재적 연주자의 탄생을 목도한다. 세계 최고의 인기 아티스트 BTS의 미국 백악관 방문과 바이든 대통령과의 대화는 마치 차별 금지와 인류 형제애를 향한 보편가치의 인류대사(人類大使) 역할을 연상케 한다.

이제 막 종식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코로나19 대감염병의 경우 한국은 2022년 5월 기준 세계 6위의 종합 회복력 순위를 기록하여 세계 최상위권으로 통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문명에 이어 문화예술과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한국인들의 세계선도 역할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20세기 중엽 이후 가꿔온 평화와 번영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 한국은 장기평화와 세계전쟁 반복
평화의 시대, 발전과 부흥은 경이적
최고 수준의 통합 지식외교가 원천
초당파 지식·기술·문화외교로 가야

유사 이래 한국은 정녕 특이하게도 ‘준(準)항구평화’와 ‘세계전쟁’의 장구한 주기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세계 전쟁들 사이의 준항구평화 동안에는 늘 문화와 문명과 지식의 도저한 르네상스를 보여주었다. 폭발하는 그 문화부흥은 언어·사상·과학·외교·천문·기술의 거의 전 부문을 망라하였다. 특히 평화외교가 그러하였다. 지금 우리는 두 세대에 걸친 소극적 평화 정도에도, 문화적 문명적 잠재력의 분출을 목도하고 있다.

예겸(倪謙)이라는 인물이 존재한다. 당대 중국 최고 지식인으로서 조선을 지식으로 압도하고자 파견된 지식외교·문화외교의 정예 대표였다. 그러나 그를 맞은 정인지·성삼문·신숙주·안평대군의 지식과 문예의 깊이와 수준은 놀라웠다. 끝내 예겸은, 정인지와의 최고 지식을 동원한 수차 대화 이후, “그대와 하룻밤 대화하는 것이 10년 동안 글 읽는 것보다 낫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세종대였다. 그때가 어떤 때인가?

이순신은 또 어떤가? 그는 훗날 세계의 휘황한 평가가 아닐지라도, 이미 전쟁을 함께 치른 당대 제국의 도독으로부터 “하늘과 땅을 경영하는 재능과, 하늘을 꿰메고 태양을 목욕시킨 공로”(經天緯地之才 補天浴日之功)로 칭송받는다. 그는 이순신의 능력을 제갈량과 진평(陳平)에 유비하며, 만국의 높은 이름으로 언명한다. 숱한 파쟁과 모함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중심을 지켜 나라를 수호한 이순신은 이후 동아시아에 장기 평화질서를 정초한 세계인이었다.

이승만은 고종에 저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종과 민영환의 제안을 수용하여 나라를 살리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그의 국제정치와 국제법, 기독교에 대한 지식과 통찰은 미국인들조차 놀랄 수준이었다. 그는 끝내 외교의 달인이 되어갔다. 그와 동료들은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기도 전에 미국 고위인사의 입에서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라는 말을 끌어내어, 적국 일본과의 단절을 넘어 미국과의 연대를 성공시킨다. 당대 국제정세 판독에서 이승만을 앞서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국제질서에의 적응이 생존과 번영을 결정하는 세계 소용돌이의 한 중심, 경계국가 한국인으로서의 세계책임과 의무를 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맞아 김대중은 고뇌 끝에 김영삼과 숙의 하에 이홍구를 주미대사로 파견한다. 즉 이홍구는 진보·보수, 여야, 전(前)·현(現)정부의 합의로 파견된, 전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사였던 것이다. 놀랍게도 이미 김영삼은 대선 승리 후 김대중에게 각료추천을 제안한 바 있었다. 제1차 북핵위기 때는 절대적인 안보위기 극복을 위해 김대중이 제안한 카터 전 대통령의 북한파견을 흔쾌히 동의하였다. 당대 지식과 미국내 네트워크에서 이홍구를 앞서는 사람은 없었다. 최고 지식인을 등용한 김대중의 위기극복 외교는 철저히 초당파적이었다. 그리고 대성공이었다.

나라를 위해 당대 최고의 지식인·문장가·장군·외교관을 ‘당파를 넘어’ 등용했었던 ‘상황’과 ‘지혜’를 거듭 생각해본다. 정치는 절대 홀로 할 수 없으며, 특별히 외교는 한 파당이 독점해서는 결코 안된다. 과거를 둘러싼 법률적 사실적 드잡이는 말할 것도 없고 첨예한 여야 갈등에 더해, 집권 직후부터 시작된 여권 내부의 정책 혼선과 권력 갈등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지 두렵다. 인사문제와 인재등용은 언급불능의 수준이다.

촛불을 독점하지 말고, 탄핵에 찬성한 보수 62석+중도 38석과 함께 ‘통합정부’를 꾸려야한다고 아무리 호소해도, 촛불과 광장에 정면으로 반하는 승자독식과 권력독임을 또다시 재연해선 안된다. 누구나 최초 집권이지만, 금번은 대의(代議) 경험이 전무한 지도자의 집권이자 0.73%포인트의 박빙 승리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문명선도는 당대 최고의 지식과 실력을 동원할 수 있는 그릇의 크기에 달려있다. 경청과 노겸, 협치와 통합이 길이다. 이제 최고와 함께 하는 최고의 지식외교·기술외교·문화외교·문명외교로 나아가자. 그리하여 세계 지식과 기술, 문화와 문명의 선두와 보편을 세계와 함께 창출하고 공유하자. 최고의 인재등용을 통해 세계 최고 담론을 흡수하며 겨루고, 참여하며 발양할 수 있는 최고의 지식외교·문명외교를 펼쳐보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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