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시각각] 최장수 경제수석 사공일의 당부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할 때마다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다. 국정 현안을 소상하게 설명한다. 복잡한 국정이 명쾌해진다. 바로 교통정리가 되니까 자동차가 교차로를 술술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최근 두 사안에서 매끄럽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경찰청 간부 인사와 노동개혁 방안이다. 윤 대통령은 두 사안 모두 “보고받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역대 정부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혼선이 발생하자 경찰청은 “관행대로 했다”고 주장했고, 윤 대통령은 “국기문란”이라고 일축했다. 대통령 재가를 받지 않은 채 인사가 발표돼선 안 되지만, 진상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발표한 노동개혁 방안도 일반적 관행에 따라 언론에 공개됐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아직 정부 공식 발표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두 해프닝을 보면서 만기친람(萬機親覽)이 떠올랐다. 온갖 국정을 임금님이 모두 챙긴다는 옛말이다. 결국 지금도 대통령이 국정을 어디까지 챙겨야 하는지의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대통령이 일일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모든 일을 챙길 수는 없다. 최근 두 번의 사례를 보면서 더욱 확실해진 원칙이 있다. 첫째 원칙은 대통령이 모든 일을 챙길 수는 없다. 둘째 원칙은 대통령이 꼭 챙겨야 할 일은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 모든 일 챙길 수 없어
우선순위 가려 핵심만 집중해야
규제혁신이야말로 직접 챙길 일
이 중에서도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이 꼭 챙겨야 할 일은 규제혁신이다. 규제혁신전략회의는 윤석열 정부 110개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다. 이 회의는 기업의 규제 애로사항을 찾아내 타파하기 위한 민관합동협의회로 규정됐다. 윤 대통령은 이 회의를 주재하기로 했다. 경제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는 이를 위해 당장 다음 달 중으로 경제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첫 번째 규제혁신 성과를 끌어내기로 했다. 다음 달 중순 1차 회의에서 단기 과제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규제혁신전략회의에 올릴 안건을 마련하기로 했다.
경제규제혁신 TF는 추경호 부총리가 직접 팀장을 맡고 관계 부처 장관들이 참여해 ▶현장 애로 ▶환경 ▶보건·의료 ▶신산업 ▶입지규제 ▶그림자 규제 ▶인증 제도 등 분야별 중요 과제를 점검하는 조직이다. TF는 분야별 작업반을 꾸려 기재부 1차관 주재로 격주 회의를 개최하고, 월 1회 개선안을 발표하게 된다. 정부는 민간의 규제혁신 참여를 최대한 늘리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렇게 겉모습만 보면, 다 잘될 것처럼 보인다. 천만의 말씀이다. 공무원들은 보고의 달인이다. 그 겉모습에 넘어가선 안 된다.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 뽑기,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 뽑기, 문재인 정부의 붉은 깃발 뽑기는 모두 공무원들의 화려한 보고 쇼에 취해 실패로 귀착했다. 이 대목에서 최장수 경제수석을 지낸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의 당부를 옮긴다. 사공 전 장관은 며칠 전 필자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을 향한 당부를 쏟아냈다.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진흥확대회의 얘기부터 꺼냈다. 박 대통령은 1962년부터 이 회의를 이끌었다. 재임 기간에 열린 152차례 중 147번을 직접 주재했다. 경제 10위 국가의 신화가 이 회의를 통해 구체화했다.
사공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규제 개혁 성패도 직접 주재 여부에 달려 있다고 했다. 예컨대 매월 셋째 목요일 오전 10~12시로 시간을 고정해 놓고 윤 대통령이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부처별 안건은 사전에 보고하고 15분간 지난번 회의에서 있었던 추진 상황 보고를 반드시 하도록 해야 한다. 사공 전 장관은 “구체적인 진도표를 확인하고 절대 흐지부지해선 안 된다”며 “이런 방식이 리더십의 차이를 만든다”고 말했다. 요컨대 윤 대통령은 규제혁신 전략회의 사령탑이 돼야 한다. 5년간 꾸준히 해야 한다. 그 정도 일관되게 해야 임기 말쯤에나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게 규제 개혁이다. 이것만 제대로 챙기면 윤 대통령은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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