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음식 시키기 힘들어도.. "저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임유진 기자]
잔잔히 흘러가는 강물과 바람, 반짝이는 모래사장. 1981년 대청댐이 지어지기 전 대전 대덕구 미호동 풍경이다. 지금은 상수원보호구역과 개발제한구역 이중규제 속에 있지만 여전히 작은 아름다움이 살아있다. 이곳 주민들은 미호동복지위원회를 만들어 '정다운마을쉼터'를 여는 등 공동체를 일구었고 지금은 에너지전환해유 사회적협동조합이 그 노력을 받아안았다.
▲ 미호동에서 천연수세미를 재배하는 두미영(54) 씨 |
ⓒ 임유진 |
두미영(54)씨는 대전 대덕구 미호동에 사는 여성 소농이다. 대전 시내권에 살다 미호동에 정착한 지 5년이 됐다. 그가 주로 재배하는 작물은 수세미다. 얼마 전 미호동넷제로공판장 뒤편 텃밭에 수세미 모종을 나눔하러온 미영씨에게 그의 '수세미 성공 신화'를 들었다. 수세미 씨앗을 세 개 심었는데 300개의 열매가 열렸다는 수세미 풍년 이야기.
"집 옆 마당에 봄이랑 겨울이라는 강아지가 살아요. 강아지 집 지붕 위쪽에 수세미씨앗 세 개를 심었는데, 줄기가 지붕을 타고 어마어마하게 뻗더니 300개의 열매가 열렸어요. 수세미는 땅이 좋고, 햇빛 좋고, 줄기가 뻗어나갈 수 있는 지지대만 있으면 얼마든지 퍼질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 미영 씨가 직접 기른 수세미 |
ⓒ 임유진 |
▲ 2020년 수세미 300개가 열렸다는 겨울이와 봄이네 집 지붕 |
ⓒ 임유진 |
2020년의 일이었다. 그는 솥단지에 수세미를 삶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껍질을 벗겨내 설거지용 천연 수세미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에게 박스 단위로 나눔하고도 수세미는 남았다.
다음해 미호동에 넷제로공판장이 만들어졌고 그곳에서 미호동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지역 주민의 콩, 말린 호박, 된장, 고추장과 나란히 미영씨의 수세미도 넷제로공판장에 입고됐다.
"판매금액은 4만~5만원 됐던 것 같아요. 한 동네 사는 영아님, 순화님에게도 수세미 모종 나눔해서 우리 같이 수세미 심자고 권유하며 다녔어요. 수세미가 우리 동네 특산물처럼 되면 좋겠다는 상상도 해보면서요."
미영씨의 수세미 사랑은 남다르다.
"소비자가 희고 예쁜 걸 원하면 생산자들도 하얗게 표백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수세미는 누리끼리한 색을 지닌 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하얘지는 거고요. 동네 사람들한테도 우리는 표백하지 말고 자연 있는 그대로 판매하자고 얘기해요."
▲ 미영 씨의 텃밭에서 수세미 모종을 나눔하고 있다. |
ⓒ 임유진 |
미호동에서의 새로운 삶
미영씨가 남편, 아들과 함께 미호동에서 살기 시작한 때는 2017년이다. 대전 시내권 직장을 다니는 남편이기에 대전 근교 농촌을 알아보다 미호동을 우연히 알게 됐다. 연고가 있진 않았지만 "시골에서 직접 간장, 고추장, 된장 담그면서" 지내고 싶던 그의 꿈을 실현할 동네였다.
그의 집 주위에는 나무가 한가득이다. 그 나무에서 보리수, 앵두, 자두, 사과, 감, 대추 등을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올 봄, 보리수가 많이 열렸다. |
ⓒ 임유진 |
▲ 미영 씨 집 뒤편에 자리한 텃밭 |
ⓒ 임유진 |
초반에는 묘목시장에서 나무를 사와 열매를 채집하는 생활을 하다가, 동네 부녀회장님이 배추를 심으라고 밭 두 고랑을 내어주어 그곳에 배추를 직접 심고 그해 김장도 해봤다. 지금은 집 뒤편 땅에 깻잎, 고추, 상추, 토마토, 땅콩, 오이, 가지, 대파, 해바라기 등등 이것저것을 심은 텃밭도 직접 일구고 있다. 농사가 그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때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다.
"3년 전에 대파가 엄청 비싸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 우리집 대파가 많이 자랐어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한테 대파 뽑아가시라고 하고. 그런 게 너무 좋았어요. 나눠주는 순간. 줄 수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미호동의 삶이 그의 가치관을 점점 깊게 하는 건 아닐까 짐작해본다. '일 안 해?' 이렇게 눈치주는 사람은 아직도 있지만, 경제활동을 전업으로 하지 않을 뿐 미영씨의 삶에는 무수한 일들이 있다. 올 여름에는 매실을 수확해 매실청을 담그고, 고추를 수확해 고추장을 담그는 등 먹을거리를 조금씩 자급자족 중이다.
"많은 것을 가진다는 건, 누군가의 것을 빼앗은 것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식량도 어디에선 남아돌고 어딘 굶주리고 있는 지금의 현실도 그런 맥락인 것 같아요.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심은 내려놓아야겠다, 그런 생각이 점점 짙어져요."
▲ 미영 씨가 얼마 전 수확한 마늘 |
ⓒ 임유진 |
미호동넷제로공판장과의 인연
미영씨는 넷제로공판장에 작년엔 천연수세미를 냈고 요즘은 오디잼을 만들어 입고 중이다. 넷제로공판장과의 인연은 작년 초 열린 미호동넷제로 주민디자인학교에서 시작됐다. "그때 수업 중에 글쓰기 시간이 있어, 어릴 적 집에서 딸로서 차별받는 상황을 썼었어요." '나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던 그곳에서 동네 주민들의 이야기도 함께 듣게 됐다.
"집에서 존재감 자체가 없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할 얘기가 없다고. 눈물만 나온다고 얘기하시고. 그때 많이 울컥했어요.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딸로서 겪은 애환을 들으면서 안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고, 사람들과도 전보다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 경험은 동네 주민과 관계를 회복하고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전에 동네에서 다같이 놀러갔었는데 술 마시고 흥에 취해 노래하고 춤 추시고... 그런데 저는 잘 어울리지를 못했어요. 술도 아예 못 마시고. 그러다 넷제로공판장 활동에 참여를 열심히 하니까, 저에 대한 동네 사람들 시선이 좀 달라졌다는 걸 느낀달까요."
이후 그는 주민들과 함께 환경을 주제로 한 인형 그림자극단 활동에도 동참했다. '미호동723'이란 극단 이름도 제안, 채택됐다. "미호동을 오가는 버스가 단 두 대 거든요. 72번과 73번. 또 아들이 버스기사니까, 버스에 대한 애정도 담았고요."
▲ 인터뷰하러 간 미영 씨 집에서 그가 내어준 국화차. 집 옆에 난 국화를 따다가 직접 만들었다. |
ⓒ 임유진 |
"예전에는 남들보다 느리게 사는 저를 자책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미호동에 살면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걸 자연스레 터득하게 돼요. 더 적게 소유하고 소비할수록 사유하는 것은 풍성해지잖아요. 저는 미호동에 사는 지금이 정말 좋아요."
'넷제로'에 대한 생각을 물으니, 그는 삶의 태도를 이어 말한다.
"미호동에 살다 보면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 게 쉽지 않잖아요. 예전에는 냉장고에 뭐라도 막 채워놔야 될 것 같았는데, 지금은 밭에 가면 뭐든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해요."
▲ 미영 씨와 겨울이와 함께 찍었다. |
ⓒ 임유진 |
▲ 여름날 감나무의 빛깔. 자기만의 속도로 영글고 있는 연두색 감이 보인다. |
ⓒ 임유진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에너지전환해유' 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꺼져라, 대법원!"
- 사법부 역사상 최초 하청노동자 파업 "법원갑질 못 참겠다"
- "학교에서 인강 시청 허용해주세요" 제안 후.... 제대로 토론이 붙었다
- 한국을 아주 형편없는 나라로 묘사했던 그의 진짜 의도
- '윤핵관' 장제원, 왜 김종인을 띄우나
- '경찰국 신설' 여론전 뛰어든 이상민 "좌동훈·우상민 들어봤지만..."
- "비판 했다고 방송국에 전화... 실세가 할 일인가" 장성철, 장제원 직격
- 민주당과 함께 선 박경석 "장애인이동권, 말 아닌 법으로 실현되길"
- 또 강행 한동훈의 검찰인사, 민주당·정의당 "명백한 내로남불"
- '국민만 봉' 된 한전 적자 타령, 문제는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