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맛, <우리는 SF를 좋아해>

김초혜 2022. 6. 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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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감각.

에디터로 일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점 중 하나는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하기 전 한 사람과 만날 준비를 하는 과정 역시 참 좋아합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인터뷰이의 삶에 대해 먼저 찾아보곤 하죠. 그리고는 질문지를 작성합니다. 질문의 순서를 배열할 때는 곧 하게 될 대화를 상상하면서 가장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진심이 오갈 수 있도록 심사숙고합니다. 막상 지면에 써야 하는 질문과 순서가 다를지라도요. 때로는 이미 예측 가능한 답변을 알고 있으면서도, 독자에게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묻는 것도 있는데요. 이럴 때 뜻밖의 답변을 만나면 매우 기쁩니다. 준비되지 않은 물음표가 오가는 순간이니깐요. 아마도 대화의 맛이겠지요.

인터뷰의 매력은 무궁무진합니다. 상호 협의된 하에 한 사람의 세계로 풍덩 빠질 수 있는 이 특별한 대화는 어쩌면 고함량 비타민 같다고나 할까요. 또 어쩌면 일방적인 형태이긴 하지만요. 인터뷰 기사를 쓰는 걸 좋아하고 또 읽는 것도 좋아하는 제가 이번에 고른 책은 〈우리는 SF를 좋아해〉입니다.

인터뷰집 〈우리는 SF를 좋아해〉는 SF 평론가 심완선이 김보영, 김초엽, 듀나, 배명훈, 정소연, 정세랑 등 작가 여섯명을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눕니다. 작가들이 SF 장르 책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서로 다릅니다. 덕분에 한국의 SF 계보를 한눈에 보는 느낌이랄까요. 인터뷰어는 SF를 꾸준히 사랑해온 작가들에게 작품 세계 전반과 글쓰기 루틴에 관해 묻습니다. 속 깊은 질문과 속 깊은 답변은 한 사람의 세계에 대해 깊이 공감하게 하는데요. 그 뜨거운 대화 속에 틈틈이 섞여 있는 짧고 솔직한 답변은 독자를 피식 웃게 합니다. 타인의 진실한 대화를 훔쳐보는 기분이랄까요.

「 “글을 쓰는 작업을 여러 가지 하시잖아요. 기간을 생각하면 한꺼번에 여러 글을 쓰고 계실 텐데 병행하는 요령이 있나요? ‘이 생활도 오래 해보니까 이 정도는 알겠다!’든가" "마감까지 미루다가 막판에 저를 괴롭히기? 그냥 마감이 생기면 쓴다고밖엔" 듀나 -184p 」

〈킹덤〉 〈좋아하면 울리는〉 〈오징어게임〉 〈보건교사 안은영〉 등 전세계가 한국인의 상상에 주목합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한국에서 펼쳐지고 있으니깐요. 김초엽 작가의 〈스펙트럼〉은 〈벌새〉를 만든 김보라 감독의 이미 차기작으로 결정되었고요. 또 다른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은 스튜디오드래곤과 계약해 영상화될 예정입니다. 또 배명훈의 신작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이번 책은 작가 에이전시 블러썸크리에이티브와 CJ ENM이 영상화를 위한 스토리 발굴을 위해 기획한 프로젝트의 ‘언톨드 오리지널스(Untold Originals)’의 일환으로 나온 첫 번째 책인데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가 열리면서, 새로운 스토리 발굴이 절실해진 겁니다. 일반적으로 원작 발표 후에 2차 저작물을 제안하고 검토하는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책이 쓰이는 순간부터 영상화를 염두한 거지요. ‘그냥 커피’와 ‘T.O.P’의 차이처럼요. 이렇게 쓰인 책은 보다 또렷한 캐릭터와 스펙타클한 볼거리 등 기존 발매된 책과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어떤 특징이 있는지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있을 거 같아요.

〈우리는 SF를 좋아해〉를 읽는다는 건 어쩌면 앞으로 세계로 뻗어 나갈 한국인의 상상에 미리 주목해두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작가의 작업 시간, 공간, 방식이 아주 자세하게 묘사된다는 거예요. 오랜 성실함으로 글을 써온 이들이 긴 시간을 버티면서 생긴 힘과 우직한 해결법은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자극적이고 진실합니다.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의 세계를 그리며 살아가는 작가들.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며 지탱해온 이들의 창조적인 일상은 미뤄두었던 버킷리스트를 뒤척이게 합니다.

「 “사실 저는 작가로서 재능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해요. 내가 어떻게 쓰는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글이 ‘뚝딱, 짠!’하고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내가 알아요. 온갖 삽질과 무수한 수정과 기적 같은 우연으로 작품이 나오지요. 하지만 내가 나를 확신하지 않아도 세상에 나온 내 소설은 확신하고, 그 확신이 계속 있었으면 해요. ‘내 소설은 세상에 존재해도 괜찮다.’ 하는 확신이요” - 김보영 30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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