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日기업 포함 '자발적 기금' 징용 보상..대위변제 급부상
일본 전범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 판결에 따른 현금화 절차가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대위변제(代位辨濟)’가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일본 측도 배상금 지급을 위한 ‘강제 집행’이 아닌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한다면 일본 기업이 대위 변제를 위한 기금 마련에 참여할 수 있다는 쪽으로 입장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기였던 지난 4월 방일한 한‧일 정책 협의단이 일본 측 정부 인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대위변제에 대한 언급이 오갔다. 한‧일 기업의 출연금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재원으로 징용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원하는 대신 현재 진행 중인 현금화 절차는 중단하는 방안이었다.
일본 측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강제징용)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아이디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내용과 방식에 따라서”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판결에 따른 배상 의무 이행이 아닌 자발적 모금이나 출연을 통해 징용 피해자를 지원하는 형식이라면 당시 판결의 피고였던 일본 기업들도 참여를 검토해볼 수 있다는 취지로 반응했다는 것이다.
한·일 기업 '자발적' 출연금 통한 '대위 변제'
하지만 자발성이 전제된 한·일 기업의 출연금을 배상에 활용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대법 판결을 전제로 한 강제적 배상은 아니지만, 임박한 현금화 조치를 해결하기 위한 완전히 새로운 통로가 열리는 것일 수 있어서다. 정책협의단 역시 대위변제에 대한 일본 측의 '조건부 호응'을 작지만 분명한 태도 변화로 해석했다고 한다. 전임 문재인 정부 때만 하더라도 일본은 ‘한국의 선제적 해결책 제시’만을 고집했지만, 이제 현실적 대안에 대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 가능하기 때문이다.
2개월 뒤 터지는 시한폭탄 '현금화 조치'
한‧일 간 민감한 과거사 현안은 오는 7월 10일 일본 참의원 선거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남은 ‘외교의 시간’은 불과 한 달 남짓이다. 이 시기를 놓쳐 현금화가 현실화할 경우 한‧일 관계는 돌이키기 힘든 파국으로 몰릴 것이라는 근본적 위기감을 양국 모두 공유하고 있다.
관련 사정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정책협의단의 방일을 통해 강제징용 문제, 특히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 자산의 강제 현금화를 막는 것이 일본의 최우선 관심사라는 점을 확인했다”며 “일본 측은 일본 기업의 자산을 강제로 현금화해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한국이 명확하게 언급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고 말했다.
"현금화는 막아야" 한·일 공감대
특히 일본 전범 기업들이 대위변제에 참여한다면, 징용 가해자인 일본 기업이 낸 재원으로 피해자들에 보상한다는 ‘실질적 배상’의 의미가 있다. 일본 기업의 거부로 대법 판결 이행이 이미 3년 이상 지연되고 있다.
다만 이 경우 일본 기업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자발성 못지 않은 핵심은 피해자들을 위한 사법정의 실현이다. 대위변제 자체가 결국은 배상 책임을 일본 기업에 부여한 대법 판결을 우회하는 방식의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이미 확정 판결을 통해 배상받을 권리를 확보한 피해자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차피 현금화는 막을 수 없다.
피해자 설득 없인 '땜질 처방' 전락
정부 관계자는 “강제징용 문제가 다급한 현안이 된 건 현금화 문제 때문이고,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강제징용 피해자를 설득하지 않고는 현금화 조치를 동결하거나 중단할 방법이 없다”며 “다방면으로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현금화 조치가 임박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현재로선 대위변제 외에 현실적 해결책을 마련하는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한‧일 정부 간에 외교적 해법에 의견 일치를 봐도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는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이에 정부는 우선 늦어도 다음달 초까지는 외교부 1차관이 주재하는 민관 합동위원회를 출범해 의견 수렴 절차를 가질 예정이다. 이를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와 관련 시민단체 등 각계 의견을 청취한 뒤 정부 측 공식안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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