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배상" "면죄부 안돼"..대위변제, 징용 피해자 엇갈렸다
정부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으로 대위변제에 무게를 두는 것은 명분과 실익을 확보할 수 있고, 일본과의 협상이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선 2018년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이 배상을 외면하며 지연되고 있는 사법 정의를 정부 주도로 실현한다는 상징적 명분이 있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 국내 자산에 대한 현금화 절차가 중단되면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외교적 실익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전제는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들의 동의다. 향후 구상권을 청구하는 장치가 마련된다 해도, 피해자들 입장에선 일본 기업이 내야 할 배상금을 왜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실제 피해자들의 의견을 직접 들어본 결과 법원 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의 배상금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쪽부터 방식을 따지지 않고 빨리 보상받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쪽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일본 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①“죽기 전에 배상받고 이젠 끝내길”
다만 한국 정부 주도로 대위변제가 이뤄진다면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신 할아버지는 “이제 지칠대로 지쳤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나이를 먹었다. 내가 죽기 전에 이 소송이 끝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일본 기업의 배상금이든 한국 정부가 조율해 대신 주는 돈이든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가 될 수 있다면 이제 이 싸움을 그만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
신 할아버지는 또 “대위변제든 지원금이든 한국 정부가 노력을 한다면 많은 피해자들의 고통과 억울함이 조금은 풀릴 수 있지 않겠냐”며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피해자가 살아있을 때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시에 신 할아버지는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 이외에도 일본이 강제징용에 대해 반성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상금도 주지 않는 일본이 이제 와서 우리에게 사과하거나 사죄하진 않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한국 정부가 일본을 설득하고 피해자를 위로해줬으면 여한이 없을 것 같다”면서다.
②“대위변제가 ‘화해의 길’ 될 수 있길”
그는 2013년 7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고, 1·2심을 승소해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소송에는 박씨를 포함해 총 14명이 참여했는데, 법적 다툼이 길어지며 당초 소송에 참여했던 피해 당사자는 모두 숨을 거뒀다. 박씨는 “피해자와 유족들이 각종 서류를 끌어모으고 소송에 나서는 동안 한국 정부는 책임을 외면한 채 아무런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랬던 정부가 혹시라도 대위변제를 통한 해법 마련에 나선다면 그 자체만으로는 반길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 정부가 주도해서 주는 돈을 받으면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지 말라거나 소송을 취하하라고 하는 등 요구조건이 있지 않겠느냐”며 “돈을 주고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다그치는 식이라면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적극성을 보여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배상이 이뤄지는 것은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그 배상이 ‘화해의 길’로 이어질지 아니면 피해자를 우롱하는 입막음이 될지는 배상의 구체적인 내용, 그리고 일본의 태도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③“돈만 주고 끝? ‘역사의 죄인’ 될 것”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인 이철권씨는 “현실적으로 상당수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은 배상금 수령을 가장 큰 목표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하지만 강제징용 문제는 피해자와 유족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이기 때문에 단순히 돈으로만 환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는 정부의 속내는 알고 있지만 왜 강제징용 피해를 당한 한국이 전범국인 일본의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정부가 방안을 마련해 대신 배상하고 일본 기업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강제징용이라는 아픔과 이를 대하는 일본의 파렴치한 대응은 역사적으로 기록해야 할 부분”이라며 “한국 정부가 졸속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돈을 언제 줄지, 얼마를 줄지 이런 건 관심도 없고 그 돈을 받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어 “우선 피해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정서적 접근이 필요하고, 강제징용 피해 사실과 그에 대한 해법을 역사적으로 기록해 우리 자식과 손자들이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일본 기업 대신 한국 정부가 주도해 마련한 방안으로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경우 나중에라도 일본의 전범 기업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며 “말로는 배상금을 대신 지급한다고 하면서 정작 일본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덮고 넘어가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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