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테니스 '볼 키즈'를 위한 시선

김용권 2022. 6. 28.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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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권 사회2부 부장


2022 윔블던 챔피언십. 1877년 시작된 세계 최고 권위의 윔블던 테니스대회가 27일 개막됐다. 영국 윔블던의 올 잉글랜드 론 테니스 앤드 크로켓 클럽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세계 테니스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나도 그중에 속한다. 워낙 인기가 높아 24년 전 관광 안내책엔 이런 설명이 있었다. “윔블던 센터코트의 입장권 구하기는 너무 어렵다. 차라리 실력을 키워 직접 선수로 출전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1998년 6월, 그곳 윔블던에서 세계 최고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본 적이 있다. 정말 행운이었고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 피트 샘프러스와 고란 이바니셰비치, 팀 헨만, 마르티나 힝기스, 야나 노보트나 등의 게임을 직관했다. 영국 연수 중이었던 나는 여자 복식에 출전한 김은하 선수와 감독을 우연히 만나 며칠간 윔블던 잔디 코트의 향취를 느껴봤다. 언덕에 앉아 스크린으로 센터코트의 경기를 지켜본 것은 색다른 재미였다.

그 감독님의 ‘현장 해설’도 일품이었다. 아쉽게 이름을 잊었지만 그 감독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후 윔블던은 물론 US 오픈, 프랑스 오픈, 호주 오픈 때마다 TV 생중계를 자주 보고 있다. 이달 초엔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한 라파엘 나달의 경기를 안방서 지켜봤다. 4강전에서 나달과 접전을 벌이던 알렉산더 즈베레프의 부상 장면을 보고는 몹시 마음 아팠다. 마치 내가 부상당한 것처럼.

그에 못지않게 여전히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장면이 있었다. ‘볼 키즈’(볼 보이)에 대한 얘기다. 네트 양쪽에 있는 2명의 볼 키즈는 무릎을 꿇은 자세로 경기를 돕고 있다. 한 경기는 2∼4시간 진행된다. ‘볼 보이’라고 불리었던 이들은 경기 내내 같은 자세로 공을 처리한다. 4대 메이저 대회는 물론 세계 대부분 테니스대회가 같은 상황으로 알고 있다.

“굳이 왜 저런 자세로 있도록 할까?” 오래전부터 의문이 들었다. 어떤 이는 ‘경기 흐름을 빠르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TV 중계 카메라의 각도 때문이라고 했다. 대부분 그저 ‘전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자세는 누군가에게 ‘벌’을 받거나 ‘굴복’하는 모양새다. 볼 키즈는 대부분 10대 청소년이다. 어린 나이에 이런 자세로 두세 시간을 무릎 꿇고 있다면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인권’에도 상처를 주는 행위라 판단된다.

개선할 방법은 없나? 간단한 생각이 떠올랐다. ‘작은 의자’다. 지금 위치에 접이식 의자만 놓아준다면 볼 키즈의 건강과 마음을 지켜주는 일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테니스는 신사 스포츠, 사랑의 스포츠다. 점수를 부를 때도 ‘Love’라고 하지 않는가? 볼 키즈는 경쟁률이 높고, 그들이 스스로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US 오픈의 경우 80명 모집에 500명 이상 몰린다고 들었다. 그러나 희망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불편을 감수하라고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볼 키즈를 굳이 무릎 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들에게 ‘의자 제공’ 등 개선할 계획은 없는가요?” 최근 이 같은 질문을 담은 이메일을 4대 메이저 대회를 주관하는 4개국 테니스협회에 보냈다. “당신네 협회에서 먼저 이를 개선한다면 테니스 역사에 큰 의미를 줄 것이다. 다른 대회에서도 이를 따르리라 확신한다”는 내용과 함께. 물론 대한테니스협회에도 같은 이메일을 보냈다. 대한테니스협회엔 “K팝과 K뮤비 등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우뚝 선 상황에서 대한민국에서 이 같은 일을 먼저 실행한다면 ‘K컬처’의 명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는 글을 추가했다.

볼 키즈는 테니스대회에 없어서는 안 될 ‘스태프’들이다. 이들로 인해 빠르고 원활한 경기가 진행될 수 있다. 각 국가 테니스협회의 현명하고 멋진 답신을 기다려 본다. 작은 배려가 인권의 시작이다.

김용권 사회2부 부장 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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