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별 작곡가 4명이 풀어낸 별신굿.."한국판 재즈" 매진

김정연 2022. 6. 2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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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국 단장

‘2022 관현악 시리즈 전통과 실험·동해안’ 공연이 열린 지난 2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M씨어터. 600여 관객석이 꽉 들어찼다. 국악 관현악 공연으로는 이례적인 매진이다. ‘동해안 별신굿’을 테마로, 세대별 작곡가 4명과 그에 맞춰 거문고(허익수), 대금(류근화), 가야금(이지영), 아쟁(남성훈) 등 협연자를 모은 이 날 공연은 지난 2월 부임한 김성국(51) 서울시국악관현악단장 아이디어였다.

지난 22일 만난 김 단장은 “동해안 별신굿은 재즈의 즉흥연주 같은 장르”라며 “약속된 체계는 있지만, 그 안에서 자유롭게 연주자 기량에 따라 달라지는, 뜯어볼수록 놀랍고 보물찾기 같은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동해안 별신굿은 선원들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해안가 마을 전체가 굿을 하며 펼치던 국악의 한 장르다. 부산 기장부터 강원 고성까지, 동해안 전역에서 전해진다.

별신굿

별신굿 장단은 ‘덩기덕쿵더러러러~’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서양식 기보로 치면 40마디 정도 이어지는 긴 장단이 계속 변주되며 이어진다. 김 단장은 “예를 들어 서양 왈츠는 ‘쿵짝짝’ 한 단위가 반복된다. 이걸 별신굿으로 풀면 똑같은 3박 틀 안에서 ‘덩기덕쿵기덕쿵더더덕덕쿵딱덩기덕쿵기덕쿠웅딱저긍정정 저긍정정저저정저저정저저정정저정저저저정~’으로 무한히 변주된다”며 “소리의 크기, 밀도를 가지고 놀면서 타악기만으로 내는 장단을 해외에서도 흥미로워한다”고 전했다.

김 단장은 “제 아이들이 대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인데, 애들의 줄임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런 세대변화가 재밌더라”라며 “같은 별신굿도 세대마다 느끼는 게 다를 것 같은 궁금함에 정혁(24), 손다혜(37), 토머스 오스본(44), 김대성(55) 작곡가를 (세대별로) 섭외했다”고 밝혔다. 20대인 정혁 작곡가는 천안함 사건(2010년)을 다룬 곡을 썼다. 자칫 곡 외적인 부분으로 입방아에 오를 수도 있는 테마지만, 김 단장은 “그가 (사건 당시 사망한 장병들과) 비슷한 세대라 더 공감대를 갖는 것 같았다”며 “나도 작곡가로서, 작가의 개성과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대로 공연에 올렸다”고 말했다. 50대인 오스본(미국) 작곡가는 “거문고 연주자 허익수와 협업하고 싶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김 단장은 “서양인이 국악과 국악기를 바라보는 시각을 오스본의 독특한 컬러로 들을 수 있는 곡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음악 선생님이 건넨 황병기 명인의 가야금 연주 테이프를 듣고 ‘이걸 만들어야겠다’고 처음 결심했다. 중앙대 작곡과에 입학해 25년 동안 국악 외길을 걸었다. 국악 교육과정 축소 논란 등 최근 국악이 외면받는 데 대해 그는 “우리 스스로 평상시 존중하고 잘 키워야 글로벌 시대에 세대를 이어가며 전해지고 더 좋은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다”며 “그걸 경험할 기회가 교육과정에서 사라지는 건 대단히 아쉬운 일”이라고 밝혔다.

황병기

김 단장은 “어릴 때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어머니는 헨델’이라고 배웠는데, 이는 서양음악에서 모차르트, 베토벤을 빼고, 일본음악, 중국음악을 교과과정으로 두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또 “알게 모르게 교육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게 중요하다. 이게 받쳐지지 않으면 우리 음악도 문화도 세계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유학 차 다녀온 중국을 예로 들어 “중국은 아침체조, TV 등 일상에서 전통음악이 흔하게 들린다”며 “자신들의 문화가 중심에 있다고 확고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부러웠다”고 말했다.

다양한 콘텐트 붐이 일지만, 국악계는 위기감을 느낀다. 김 단장은 “판소리 등 특정 장르는 주목받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 국악 관현악은 대중이 잘 모르고 관심 없다”며 “오히려 해외에서는 국악을 새로 발견하는 단계이고, 점점 더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팬데믹 전) 여행이 자유롭던 시기에는 방학 동안 해금·대금·가야금 등을 들고 해외에서 버스킹 연주를 다니는 학생이 많아지는 추세였다고 한다. 그는 “과거 안숙선, 황병기처럼 새로운 스타 연주자가 나오면 국악에 대한 관심도 좀 달라질 것 같긴 하다”고 덧붙였다.

김 단장은 “단장으로 있는 동안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을 압도적인 대한민국 1등, 들으면 딱 아는 악단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9월에는 서양 악기를 더해 ‘믹스드 오케스트라’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그는 “‘국악 작곡’을 해왔다고 생각하지 않고, ‘작곡’을 하는데 한국 악기가 중심이었을 뿐이다”라며 “다양한 악기와 연주자로 새로운 재료,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재밌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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